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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와 철학자와 시인 - <코끼리와 시인>의 최인훈, <총, 균, 쇠>의 제레드 다이아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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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태인
댓글 0건 조회 3,298회 작성일 21-09-01 22: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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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을 살다 보면 아이러니한 것들이 많이 보인다. 예를 들면 이런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환경 보호를 위해 에코백과 텀블러를 사용해야 한다는 인식이 있다. 환경보호의 물결을 타고 일회용품인 플라스틱 컵을 사용하는 대신 텀블러를 사용하면 카페에서는 커피 값의 10% 정도를 할인해주는 카페들이 많아지고 있다. 하지만, 실제로 텀블러가 플라스틱 컵보다 환경파괴를 더 많이 하는 사실을 알고 있는가. 텀블러를 최소 1000번을 사용해야 플라스틱 컵을 사용하는 것보다 낫다고 한다. 커피를 매일 3년동안 같은 텀블러에 마셔야 겨우 환경을 보호할 수 있다는 말이다. 환경을 보호하자고 만든 에코백도 마찬가지로 그것을 생산하기 위해 환경을 파괴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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환경 보호가 마케팅으로 사용되었던 앞의 예시들과는 조금 다를 수 있겠지만, 실제로 과학과 공학을 연구하는 사람들의 세미나에서도 비슷한 주장을 많이 볼 수 있다. 예를 들어, 본인들이 어떤 물질을 개발했는데 이 물질은 자연에서 잘 분해되어 환경을 보호할 수 있다고 주장하는 논문이 있다. 그 논문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그 물질 자체는 자연에서 잘 분해되는 물질은 맞다. 하지만 넓은 범주에서 보면 환경을 보호할 수 있다는 그 물질은, 물질 자체를 생산하는데 훨씬 더 많은 유해한 물질이 사용되어 환경을 파괴한다. 재생 에너지에 대한 내용이나 신소재에 관한 새로운 연구 중에 이와 비슷한 논조의 주장을 많이 하는데, 알고 보면 어불성설인 경우가 많다. 연구자의 각자 사정에 의해 어쩔 수 없는 주장을 해야 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어쨌든 배보다 배꼽이 더 큰 경우가 비일비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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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아이러니하고 우스운 일들이 많이 발생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과학과 공학을 하는 사람이 갖추어야 할 역량에 대해 이야기하기 전에 최인훈의 시 <코끼리와 시인>을 먼저 소개하며 글을 시작하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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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끼리와 시인

- 최 인 훈



장님들이 코끼리를 만져보았다.

한 장님은 코끼리는 기둥같이 생겼다고 말했다.

다른 장님은 코끼리는 큰 배처럼 생겼다고 말했다.

나머지 장님은 코끼리는 가는 뱀처럼 생겼다고 말했다.

이 장님들은 저마다 코끼리의 다리, 배, 꼬리를 만져보고 그렇게 말한 것이다.


​우리가 잘 아는 이야기다.

만일, 이 코끼리를 '삶'이라 부르기로 하자.

개별 과학이란 것은 저마다 자기가 택한 테두리 안에서 삶을 본다.

모든 것을 보지 않는다는 것이 개별 과학이 본질이다.

아무리 정밀할망정, 과학은 전체적인 접근을 스스로 삼간 데서 오는 부분성을 벗어나지 못한다.

만일 과학이 이 사실을 잊어버리고 그것 자체가

전체적인 인식인 것처럼 생각한다면 그 과학은 이 이야기의

장님들과 마찬가지로 지나친 것을 주장하는 것이 된다.

철학자라고 하는 사람을 코끼리 앞에 데려왔다고 하자.

그는 뜬눈으로 코끼리를 보는 사람에다 비유할 수 있다.

그는 덩치 큰 짐승이라고 볼 것이다.

철학자는 '삶'을 전체적으로 관련시켜서 본다.

그런데 또 한 사람이 와서 코끼리를 보았다고 하자.

그는 코끼리가 먼 나라에서 와서 먹이를 먹지 못하여 병들어 있고

눈물을 흘리고 있는 것을 보고 자기도 눈물을 흘렸다고 하자.

이 사람을 우리는 시인이라 부른다.

그는 코끼리를 관찰하거나 생각한 것이 아니고 느낀 것이다.

그는 코끼리가 되었던 것이다.

이것이 이 세상에서 시인이라 불리는 사람들이 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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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에게는 <광장>으로 유명한 최인훈의 이 시에서 나타난 통찰력은 놀랍다. 한 사람이 수학, 과학, 예술, 철학 등 수많은 분야를 마스터했던 근대 이전이 시대와는 다르게, 현재는 한 사람이 매우 국소적인 분야를 다룬다. 시대가 발전하고 각각의 학문의 깊이가 매우 깊어 졌기 때문이다. 한 학문에서 여러 파생 학문들이 나오고, 각각의 파생 학문에서도 수많은 주제가 생기니 한 사람이 한 분야를 통달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까운 시대가 되어버렸다. 이런 시대가 되면서 우리는 각자의 테두리에서 삶을 보기 시작했다. 상아탑에 들어와 하나의 분야를 깊게 공부하면 공부할수록, 우리는 숲이 아니라 나무를 보게 된다. 많은 논문에서 자신들이 연구한 것이 뛰어나다고 주장하지만, 넓은 의미에서 보았을 때 그렇지 않은 이유이다. 우리 과학을 하는 사람들은 이처럼 좁은 분야에 파묻혀 넓은 것을 보지 못하는 경우가 많다. 나무만 보고 숲을 보지 못하니 코끼리를 기둥이라고, 큰 배라고, 혹은 뱀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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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인훈 시인은 말한다. 전체적인 접근을 삼간 과학은 결코 합리적일 수 없다고 말이다. 부분적인 것으로 전체적인 것을 설명하려면 잘못된 설명이 되어버린다고 말이다. 그렇기에 우리는 연구를 할 때 이러한 부분에 항상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어야 한다. 그는 또한 이야기한다. 많은 지식을 습득하는 것도 중요하겠지만, 그보다 더 의미 있는 것은 그 지식이 왜 중요한지 깨닫는 것이다. 우리가 과학을 공부하는 이유는 지식 그 자체에 있는 것이 아니라, 그 지식이 왜 중요한지에 대해서 이해하고 그것을 자신의 삶과 연결해서 생각하는 방법을 깨우치는 것에 있다. 즉, 우리는 훌륭한 과학자가 되기 위해서 눈을 감은 채 코끼리를 상상하는 것이 아니라, 한 발 뒤에서 뜬 눈으로 코끼리를 쳐다보아야 한다. 더욱이, 그 코끼리에 공감하는 역량을 갖춘다면 더할 나위가 없으리라. 이것이 과학을 공부하는데 철학이 중요한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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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런 관점에서 <총, 균, 쇠>를 쓴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매우 훌륭한 과학자이다. 그가 <총, 균, 쇠>를 집필하게 된 흥미로운 일화가 있다. 생태학자로서 파푸아뉴기니에서 조류를 연구하고 있던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그 곳의 지도자인 얄리를 만나서 대화를 하던 도중에 이런 질문을 받았다 “당신네 백인들은 그렇게 많은 화물들을 발전시켜 뉴기니까지 가져왔는데 어째서 우리 흑인들은 그런 화물들을 만들지 못하는 겁니까?” 제레드 다이아몬드는 간단한 이 질문이 꽤 많은 것을 꿰뚫고 있다는 것을 파악했다. 그는 얄리의 질문에 대답하기 위해 25년간 연구를 진행했다. 결국, 그는 유럽과 북아메리카 사람들이 다른 민족들, 가령 오스트레일리아나 아메리카, 아프리카 남단 등의 원주민들보다 잘 살게 된 이유는 ‘민족의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환경적 차이’라고 대답했다. 즉, 어떤 민족이 우월해서 그 민족이 잘 살게 된 것이 아니라, 그 민족이 있었던 지정학적 위치 때문에 발생한 우연적인 사실이라는 것이다.


<총, 균, 쇠>를 읽는 많은 사람들은 책의 결론에 대해 단지 ‘민족의 생물학적 차이 때문이 아니라 환경적 차이 때문이라는 사실’에만 집중한다. 하지만, 제레드 다아이몬드가 책을 집필하게 된 궁극적인 목적은 인종차별주의에 대한 도전이었다. “유럽인들은 유전적으로 아프리카인이나 오스트레일리아 원주민보다 지능이 높다고 생각했고, 이러한 사실이 오늘날의 인종차별의 원인이 되었다. 공식적으로는 인종차별을 금지하지만, 많은 서양인들은 여전히 무의식적으로 인종차별적인 설명일 받아들인다.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마 인종차별적인 생물학적 설명이 정확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것이야말로 내가 이 책을 쓰는 가장 중요한 이유다”라고 이야기했던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말에서 우리는 그가 뜬 눈으로 코끼리를 보고, 더욱이 코끼리의 아픔에 공감하는 철학자이자 시인의 마음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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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이아몬드는 <총, 균, 쇠>에서 연구를 하는 사람이 가져야 할 올바른 자세를 제시한다. 단지 과학적 사실을 밝히는 것만이 아닌, 인종차별주의나 세계의 불평등과 같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 바로 과학이 해결해야 하는 목표라는 것이다. 25년에 걸친 그의 방대한 연구는 ‘환경과 지정학적 위치’라는 핵심적인 결론을 도출하는 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종차별과 같은 문제를 해결하고자 했던 그의 삶에서 더 큰 가치를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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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가 이렇게까지 발전을 할 수 있었던 데에는 과학의 발전이 매우 큰 역할을 했다. 그리고 우리는 지금 그 어느 시대보다 과학이 비약적인 속도로 발전하는 시대에 살고 있다. 우리가 과학 그 자체만 발전시킨다면 과학은 결국 고삐 풀린 망아지가 되어버릴 것이다. ‘맨하탄 프로젝트’나 ‘아우슈비츠의 생체실험’, ‘일본의 마루타 실험’은 철학이 없는 과학이 낳아버린 비극이다. 우리는 소설가이자 사상가인 ‘최인훈’과 세상의 문제에 공감하는 학자인 ‘제레드 다이아몬드’의 삶에서 이러한 비극을 막기 위한 힌트를 찾았다. 우리 연구자들은 텍스트와 더불어 컨텍스트를 보려는 노력을 끊임없이 해야 한다. 더욱이, 세계의 비극에 공감을 하는 시인의 자세를 가진다면 금상첨화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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