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만난 물고기 - 이찬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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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만난 물고기
이찬혁
자신이 하는 음악의 의미를 알고 싶어 하는 선이라는 이름의 소년이 여행을 떠났습니다. 가기 전에 그는 예술가는 세상을 바꾸는 힘이 있다느니 자신이 한 말을 지키는 사람이라느니 하는 동료들의 대답을 듣습니다. 선이는 여행을 하며 수많은 사람을 만납니다. 그들은 서커스단원, 패션 디자이너, 스트리트 댄서 등 예술가라는 범주 안에 들어 있었습니다. 그중에는 매력적이거나 예술가의 면모를 가진 사람들도 많았다고 하지만 현실 앞에서 꿈은 소용없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많았죠. 여행이 1주년을 맞을 때쯤, 선이는 배의 갑판 위에서 해야라는 이름의 한 소녀를 만납니다. 소녀는 출입 통제가 된 갑판 위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죠. 파도가 그녀를 덮치려고 하자 선이는 그녀를 구합니다.
선이는 이후 해야와 함께 여행에 나섭니다. 해야는 복잡한 고민을 하는 선이와 다르게 단순했습니다. 예술가는 자기가 한 말을 지키는 사람이라는 생각에 빠져있는 선이에게, "난 지금 토마토를 먹을 거야"라고 말합니다. 토마토를 먹은 뒤 "이건 지킨 거야"라고 다시 말을 하죠. 선이는 해야에게서 사랑을 넘어 내면의 결핍을 채울 수 있다는 희망을 봅니다. 선이에게 있어 해야는 음악 그 자체였습니다. 해야의 말과 생각은 선이를 깨어있게 했죠. 해야와 함께하는 시간에는 자유로운 가사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어느 날은 해야가 얼룩말을 타고 횡단보도를 건너는 게 소원이라고 했습니다. 자유를 갈망하는 듯한 얼룩말의 야생성이 자유가 공평하게 통제되는 횡단보도를 건너는 모습을 보고 싶다고 합니다. 얼마 후 선이는 해야의 소원을 이뤄주기 위해 죄수복을 가져와 해야와 같이 입은 뒤 그녀를 업고 자유롭게 횡단보도를 건넙니다.
선이가 해야와 함께할 수 있는 시간이 얼마 남지 않음을 느낄 무렵, 선이는 해야와 함께 그녀의 고향 바다를 찾아갑니다. 어두운 하늘 아래, 선이는 해야와 함께 배를 타고 바다로 나갑니다. 해야는 선이에게 이렇게 말을 합니다.
"너는 내가 사라진다고 생각할지도 몰라. 어쩌면 죽는다고 생각할 수도 있어.
그런데 그런 게 아니야. 나는 내가 동경했던 바다를 만날 거야.
그리고 내 이름을 기억해 줘. 그리고 토마토를 먹었을 때처럼 나는 작품이 될 거야."
이렇게 말한 뒤 해야는 바다에 뛰어듭니다. 이후 선이는 샤워를 할 때마다 그날의 장면과 감정을 떠올리며 괴로워합니다. 그는 매일 해야와 관련된 꿈을 꾸었고, 그 감정을 토대로 노래를 만들어갑니다. 어느 날, 선이는 마침내 노래를 완성하였고, 늘 근심이 가득했던 얼굴이 오랜만에 미소를 띠면서 소설을 마치게 됩니다.
소설 “물 만난 물고기”는 남매 혼성 듀오 악동뮤지션의 이찬혁이 집필한 소설입니다. 이찬혁은 정규 3집 ‘항해’의 발매와 함께 앨범에 수록된 곡과 동명의 소설을 출간하였고, 노래를 통해 다 전달하지 못했던 자기 생각과 철학을 소설에 담아내었습니다. 이찬혁은 자신을 투영한 주인공 선이를 통해 어린 나이에 가수로 데뷔하면서 자신이 줄곧 가지고 있던 질문, 예술가로 사는 것이란 무엇인지, 그리고 신념대로 살아간다는 것은 무엇인지에 대한 자신의 관점을 풀어냅니다.
이찬혁은 선이의 여행을 통해 반복적으로 예술가란 “자신이 한 말을 지키는 사람”이라고 정의합니다. 그러나 세상에서 자신이 예술가라고 칭하는 사람들은 대부분 돈을 위해 가면을 쓴 위선자거나, 자신을 예술가라 자칭하며 자신에게 심취하는 나르시시스트였습니다. 이러한 이찬혁의 비판적인 시각은 비단 다른 사람들만을 향하지 않습니다. 소설 속 선이는 이찬혁처럼 세간에 실력을 인정 받는 작곡가였습니다. 하지만 그는 자신이 만든 노래 속 가사와 너무도 다르게 사는 자신에 대한 회의감에 차 있습니다. 선이는 자신을 ‘진짜를 탐하지만, 진짜를 가지지 못한 가짜’라고 평합니다. 이러한 선이의 모습을 통해 이찬혁은 그동안 자신이 악동뮤지션의 음악을 통해 보여주던 순수하고 활기차며 긍정적인 모습이, 실제로는 조용하고 섬세하며 조금은 우울한 자신의 본 모습과 다름을 깨닫고 괴리감을 느끼고 있지 않았을까. 그렇게 조심스럽게 추측해봅니다.
그때 선이는 해야를 만났습니다. 소설에는 직접적으로 언급되지 않았지만, 해야는 예술가 그 자체인 인물입니다. 선이는 해야가 하는 말은 모두 노래가 되고, 보이는 움직임은 모두 춤이 되고, 입는 옷은 모두 패션이 되는 것을 경험합니다. 그리고 해야는 선이가 고대하던 예술가의 정의와 정확히 부합하던 사람이었습니다. 해야는 자신이 할 수 있는 것만 말했기 때문이죠. 이러한 모습은 그녀가 토마토를 먹는 장면에서 명확하게 볼 수 있습니다. 해야는 예술가의 정의에 대해 고민하는 선이에게 토마토를 집으며 "난 지금 토마토를 먹을 거야"라고 말합니다. 토마토를 먹은 뒤 "이건 지킨 거야"라고 다시 말을 하죠.
선이는 해야에게서 사랑을 넘어 내면의 결핍을 채울 수 있다는 희망을 봅니다. 선이에게 있어 해야는 음악 그 자체였습니다. 해야의 말과 생각은 선이를 깨어있게 했죠. 해야와 함께하는 시간에는 자유로운 가사가 쏟아져 나왔습니다. 선이는 너무도 자유로운 해야를 통해 자신도 자유를 얻는 듯한 느낌을 얻습니다. 하지만 선이의 이런 의존적인 모습을 보며 해야는 도리어 자신이 선이의 자유를 빼앗고 있다고 생각하고, 선이가 진정한 자유를 느낄 수 있도록 선이를 떠납니다. 그리고 선이를 위해 참고 있었던 자신의 오랜 꿈인 바다가 되는 것을 이루기 위해 바다로 자신의 몸을 던집니다.
해야는 자유를 상징하는 인물입니다. 해야가 자유로울 수 있었던 이유는 그녀가 세상에 메이지 않으며 스스로를 세상을 스쳐 지나가는 나그네와 같이 여겼기 때문입니다. 해야는 세상에 속한 존재가 아니었습니다. 해(海)야는 물고기였고, 고래였으며, 바다 그 자체였습니다. 그렇기에 해야에게 세상의 일상은 그저 바다로 돌아가기 위한 여정에 불과하였습니다. 그래서 해야가 바다에 몸을 던지는 장면은 자신의 목숨을 끊는 잔인한 장면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해야의 꿈이 이루어지는 순간이자 자신이 왔던 고향으로 돌아가는 아름다운 장면이었죠. 그래서 작가는 해당 장면을 비극적이거나 슬픈 장면으로 그리지 않고, 마치 자신의 사명을 다하고 승천한 예수님과 같이, 자기 일을 다 이루고 이상(理想)에 도달하는 숭고한 모습으로 그립니다.
그러나 웃는 얼굴로 바다로 뛰어든 해야와 달리 선이는 해야가 몸을 날리는 순간 패닉에 빠지고 맙니다. 선이는 해야를 아무리 자유로워도 세상에서 벗어날 수 없다고 생각했지만, 해야는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도 자유로운 존재였기 때문이죠. 선이는 예술가는 규칙이나 문화, 법률로부터 자유로운 존재라 생각했고, 해야는 그런 점에 부합하는 예술가라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해야가 보여준 예술가는 그 이상의 존재였습니다. 바로 세상에 속하지 않은 존재였죠. 이찬혁은 소설을 통해 바라보는 자신의 이상향이 해야와 같은 존재임을 나타냅니다. 세상을 나그네처럼 여기고 자유롭게 살 수 있는 사람.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다 살았으면 세상을 떠나는 순간에도 웃을 수 있는 사람. 세상에 속하지 않은 자유로운 예술가를 이찬혁은 꿈꾸고 있는 게 아닌가 싶습니다.
하지만 해야가 바다에 몸을 던진 후에 선이는 살아야 했습니다. 해야가 준 감정과 경험을 노래로 만들기 위해서라도 선이는 살아야 했습니다. 그리고 선이가 노래를 완성했을 때, 그는 마침내 해야가 누리던 자유를 얻을 수 있었습니다. 저는 해야가 고향인 바다를 떠나 세상을 여행했던 이유는 선이와 세상 사람들에게 자유를 누리는 법을 알려주기 위함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듭니다.
선이처럼 우리도 세상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가 세상을 살면서 나의 존재성을 세상에 묶어버리면, 우리는 자유를 누릴 수 없습니다. 우리가 돈에 우리의 존재를 묶으면 우리는 돈에 묶이고, 관계에 우리의 존재를 묶이면 관계에 묶이며, 명예에 우리의 존재를 묶이면 존재에 묶기에 됩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 우리가 자신의 존재를 어디에 묶고 있는지 알아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의 존재를 묶어야 할 궁극적인 이상(理想)이 무엇인지에 대해 고민하고 사는 것이 인생의 의미가 아닐까 저는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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