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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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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노세민
댓글 0건 조회 5,713회 작성일 21-07-01 21: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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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장

노세민


최근 잦은 출장으로 인해,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혼자 있는 시간이 많아졌다. 평소엔 항상 연구실 선후배 동기들과 지내며 해야 할 일들을 하며 바쁜 일상을 지내는 통에 스스로의 미래나 삶의 초점에 대해 생각해볼 시간이 없었다. 최근 진로에 대한 고민의 결단을 내리는 시기여서 그런지, 앞으로 나아가야 할 것들에 대한 기대감과 어렸을 때만 해도 전혀 생각하지 못한 것들을 고민하면서 잡 생각이 많아졌다.

 

최근, 한달 남짓 프라하 여행에서 만난 여행 동기이자 첫 솔로 해외 여행에 큰 도움을 주었던 동생을 만났다. 그 당시, 이 동생은 나와 같이 전자공학을 전공했다. 하지만 이 친구의 꿈은 전자공학이 아닌 ‘사진’에 있었고, 군 복무 중 자신의 취미를 발전시켜 직업으로 가지고자 하는 마음과 현실속의 갈림길에 서 있었다. 1년 동안 유럽 곳곳을 누비며, 조그마한 DSLR을 가지고 자신이 좋아하는 사진을 찍으며 점점 사진에 대한 꿈을 키워 나갔다. 언젠가 숙소 앞 노을이 내려다 보이는 공원에서 와인 한잔을 기울이며 나에게 자신의 꿈에 대한 고민을 털어놓은 적이 있다. 자신의 꿈은 이미 사진작가로 결정하였고, 지금 다니는 대학을 자퇴하고 싶지만 부모님의 반대에 부딪혀 행복한 프라하에서 홀로 고민에 잠겨 있었다. 마치, 영화 ‘세얼간이’의 주인공을 보는 듯 했다. 내가 한국으로 귀국한 후, 그 친구는 부모님의 반대를 이겨내고 사진작가를 위한 꿈을 프라하에서 새롭게 시작했다. 사진에 필요한 포토샾과 디자인학을 홀로 공부하고, 숙소에 들리는 여러 여행객들의 스냅사진을 무료로 찍어주며 자신의 포트폴리오를 완성해갔고 나와 한번씩 하는 연락속에서 사진에 대한 자신감과 꿈에 대한 열정은 무럭무럭 커져감을 느낄 수 있었다. 결국 동생은 1년 동안 자신의 커리어를 쌓고, 자신이 다니던 대학을 자퇴하였고 압구정에 내로라하는 웨딩 사진 업체에 입사하였다. 첫 사진작가로서 메인 작가는 아니지만 보조작가 활동을 통해, 현업을 익혀 나갔고 어느덧 3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얼마전, 연대에 출장을 다녀오며 그 친구와 잠시 점심을 먹고 서로의 일상을 공유했다. 서로 경상도식 사투리로 ‘요즘 일은 어떻노’ 로 별 의미 없이 건낸 말에, 동생이 한 말은 꽤나 충격적이었다. 일반 직장인들이 푸념하는 ‘쉽지 않지’ 라는 말 보다, ‘사회적 지위’라는 단어가 들어갈 만큼 아주 자세하고 상세한 푸념이었다. 사진작가를 꿈꾼지 어느덧 4년이라는 시간이 지난 후, 그 친구에게 새로운 걱정은 ‘사회적 지위’ 였다. 한 살 아래인 동생도 24살의 풋풋한 나이를 지나 28에 가까워지고 30에 다가서면서 주변 친구들은 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 공기업에 입사하며 남에게 떳떳하게 명함 한 장 건낼 수 있다는 시기가 자신에게는 큰 걱정을 안겨준다고 했다. 딱히 좋은 대화는 아니었다. 우리가 벌써 사회적 지위라는 것들을 신경써야 할 만큼 나이가 먹었다는 사실과, 열정만으로 가득했던 동생의 입에서 주눅과 걱정들이 쏟아지는 사실은 받아들이기 쉽진 않았다.

 

출장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에 버스에 앉아 오늘 했던 대화를 곱씹으며, 사뭇 내가 건냈던 말에 대해서도 나름 고민을 했다. 1, 2년 전만 해도, 내 주변 사람들이 포기에 대한 것들을 고민할 때 나는 스스럼 없이 힘든 생활들을 겪고 난 후의 미래에 대한 것들을 강조하며 힘을 북돋아 주었다. 하지만 그 날, 내가 했던 말은 ‘포기하고 취미로 하는 것도 나쁘지 않아’ 였다. 사뭇 내가 평소에 했던 말과는 분명히 달랐다. 예전에 나는 항상 그 순간에 집중하기 보다는 그 순간의 미래에 집중했다. 미래만을 보고, 고등학교, 대학교까지 항상 치고 올라가고 순간순간을 참고 이겨내야 한다는 집념을 바탕으로 살아왔다. 최근, 나랑 함께 꿈을 키우고 동반자 생활을 해왔던 친구가 연구생활을 그만두었다. 3월달, 그 친구가 처음 나에게 고민을 상담했었다. 그 후 한 학기가 지난 이후 그 친구는 여전히 고민에 빠져 있었고, 마음 속으로 이미 내려진 결단에 대해 직시하지 못하고 힘들어했다. 그 친구와 여러 얘기를 하던 도중, 한 가지 머릿속에 박힌 단어는 ‘고통’ 이었다. 아무리 이 순간을 이겨내고 무언가를 취득한다는 것은 뿌듯하고 좋은 일이지만 그 과정이 오로지 고통이 대부분이라면 결과에 대한 의미도 퇴색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물론 지금까지의 나의 생활은 고통이 전부는 아니었지만 여러 주변 사람들과의 대화를 통해 나도 어느 순간 미래에 대한 집착에서 슬슬 벗어나 지금 순간의 행복에 초점을 두고 있다는 것을 느꼈다. 하지만, 단순히 석사 졸업을 앞둔 시기에서 잡 생각들이 많아지며 드는 건지는 모르겠지만, 분명한 건 앞으로 내가 집중하고 초점을 맞추어야 하는 순간은 지금인지 미래인지에 대한 생각에 대한 고민은 앞으로도 이어져 갈 것 같고, 그 결단에 대한 후회는 없길 바라는 생각을 가지며 출장을 마무리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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