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레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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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실과 진실은 다르다. 사실은 프레임에 의해 진실로 변모할 뿐만 아니라 거짓 또한 프레임에 의해 진실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그러므로 사실보다 중요한 것은 그 사실들을 자신의 프레임과 자신의 도덕체계에 맞게 재구성 하는 것이다. 프레임에 맞지 않은 사실은 모두 여과시켜 튕겨내기 때문이다. 세상에는 정답이 없기에 불확실한 세상 속에서 스스로와 내 주변의 모든 것을 이렇다 저렇다 규정짓고 판단하지 못하게 된다면 살아가기 힘들 것이다. 이런 불분명하고 흐린 세상 속에서 올곧게 줏대있게 결정하고 살아가기 위해서는 나만의 세상을 바라보는 마음의 창인 프레임이 정의가 되어야 할 것이다.
사람들은 그러지 않으려고 해도 세상이 자기중심으로 돈다고 생각하는 ‘자기중심 프레임’을 가지고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본다고 흔히들 말한다. 그리고 자신에게 유리한 쪽으로 생각하도록 만들어 진다. 그러면서 자신이 옳다고 생각하는 프레임, 그런 프레임에 의해 모든 것을 판단하고 의사를 결정하게 된다. 가령 얼마 전 세간의 관심을 모은 한강 실종 대학생 사건을 보면 알 수 있다. 이전에 올라온 cctv 영상과 속속히 등장하는 목격자의 증언 그리고 유튜브 플랫폼에 올라온 의혹이 담겨있는 영상의 정황을 바탕으로 각자 자신들만의 프레임으로 해당 사건에 대해 판결을 내리고 있었다. 심지어 많은 사람들은 <그것이 알고 싶다>에서 한강 실종 대학생 사건을 다룬다는 예고만을 보고 본 방송이 송출되기도 전에 자신들이 내린 판결과 <그것이 알고 싶다> 취재진이 재구성한 사건이 같을 것이라 추측을 하였으며 정작 방송에서 범죄 심리학자, 법의학자와 같은 전문가들의 소견이 자기들만의 판단과 반대되는 결과가 나오자 받아들이기를 거부를 넘어 혐오하는 듯이 보였다. 한강 실종 대학생 사건에서 다양한 매체를 통해 접한 정보를 바탕으로 문제가 발생한 원인을 어떤 상황 때문이라고 보는 ‘상황 프레임’으로 판단을 하고 있던 것이 아니라 한강 실종 대학생의 친구에만 집중하는, 어떠한 문제가 발생하게 되면 나 자신으로부터 문제를 되돌아보는 것이 아니라 내 주변 사람들에게 탓을 하는 것은 ‘사람 프레임’으로 판단하고 있었던 것이 아닐까 싶다. 그랬었기 때문에 정작 여러 전문가들의 ‘상황 프레임’을 바탕으로 내려진 결론을 받아들지 못 하는 게 아닐까.
최인철 교수는 ‘프레임은 정치, 경제, 역사, 문화 그리고 인간관계 등 언제 어디에서도 존재하고 한 사람에게 한 개로 정해져 있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일 경우가 농후’하다고 한다. 이는 상황에 따라 상반되는 프레임을 동시에 가질 수 있다는 의미로 생각을 많이 들게 하는 문구였으며 바로 여기서 ‘내로남불’이라는 단어가 생기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네가 어떻게 그래?” 라고 하면서 정작 나 자신에게는 관대한, 똑같이 벌어진 결과에 대해서 나는 이런 저런 상황에 대한 핑계를 대며 어쩔 수 없다 하고 네가 벌인 일은 너라는 사람 자체가 잘못 됐다라고 한다. 이런 상황은 근래에 SNS상에서 그리고 내 주변에서 자주 보이는 바람, 불륜에서 볼 수 있다. 인생의 동반자, 짝꿍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해당 사람을 좋아하고 치근덕대는 사람에게 더럽다라고 하지만 자신이 짝꿍이 있는 사람을 좋아하는 것은 영화에서 나오는 로맨스라고 생각하는 것이 그러하다. 즉 많은 문제들을 ‘사람 프레임’을 벗어나 ‘상황 프레임’으로 보는 관점 변화만으로 연애 문제를 비롯한 인간관계 심지어 도덕적인 문제가 해결 될 수 있을 것이다.
내가 어떤 프레임을 가지느냐에 따라 정해진 길이 없는 세상 속에서 어떤 인생을 사느냐가 결정이 될 것이며 프레임을 이용할 것인지 혹은 이용당할 것인지는 나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는지에 따라 결정 될 것이다. 내 존재 자체만으로도 혹은 내가 하는 행동으로 누군가에게 프레임이 되어 다른 사람에게는 상황으로 다가갈 수 있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코로나라는 상황에서 벗어 날 수 없듯이 사람은 상황에 지배를 받는다. 즉 내가 원한다면 다른 사람에게 상황을 만들어 그 사람을 원하는 대로 움직이게 할 수 있다고 유추할 수 있는 것이다. 마치 칭찬은 고래를 춤추게 한다라는 속담이 있듯이 말이다. 쟤네는 왜 저렇게 행동하는 걸까? 라고 그들을 내게 다가 온 상황 프레임으로 받아들이는 것이 아니라 내가 그들이 그렇게 할 수 밖에 없도록 내가 그들에게 상황이 되면 되는 것이다. 함께 상대에게 사사건건 휘둘리지 말고 올바른 내 프레임을 갖추고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 나만의 확고한 기준을 갖추고 그에 맞게 행동을 한다면 어떠한 관계에 대해서 내가 상처 받는 일은 줄어들게 되는 것이다. 상처받지 않기 위해 프레임을 갖는다는 것이 아니다. 나의 확실하고 명확한 프레임을 통해 관계에 있어 열쇠를 상대의 손아귀가 아닌 내 손아귀에 쥘 수 있다는 것을 깨달아야한다. 그리고 나라는 상황 프레임이 안 먹히는 그때는 사람 프레임으로 판단하여 그 사람과 내 인생을 분리하면 되는 것이다.
‘프레임을 마음가짐이라는 결심의 대상이라기보다는 설계의 대상이다,’라고 표현한다. 원효대사가 해골 물을 마시고 깨달았다는 일체유심조는 세상을 어떤 프레임에서 보느냐에 따라 행복이 결정될 수 있다는 힌트를 주고 있다. 사람은 진짜 현실을 사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생각한 현실을 실제로 여기며 살기에, 나의 프레임이 무엇인가에 따라 세상이 달리 볼것이기 때문에 프레임의 궁극적 목적이 지혜롭고 행복한 삶을 만드는 데 있다면 프레임의 변화를 시도해보는 것은 어떨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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