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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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의 기원
정유정
1 악
이 책은 첫 장을 넘길 때부터 마지막장을 닫을 때까지 악인의 시선에서의 악에 대해 말해준다. 상대방의 ‘두려움’이 그들에게는 ‘짜릿함’으로 느껴지는, 겁을 먹은 사람에게 맥박이 뛰고 끌리는 이들에게는 살인은 단지 놀이에 불가하다.
이렇게 소름 끼치는 그들의 행동에 대해 본인들이 외치는 정당함에 연민의 감정이 느껴져 혼란스럽기까지 하다. 자신의 한 아들과 배우자를 잃고 남은 유일한 아들에게 옭아맨 엄마와 정신과의사인 이모가 처방해주는 수년간의 약의 고통, 이복형에 대한 알 수 없는 질투 그리고 자신의 인생의 전부였던 수영을 그만두게 된 과거 아래에서 지낸 주인공이다. 약을 끊고 자유를 얻은 채로 ‘개병’이 돋는 것을 며칠 간의 '화창한 휴식'이라고 말하는 그에게서 알 수 없는 공감이 느껴졌다.
하지만 그러한 연민과 그들의 광기에 대한 경멸의 감정 사이에서도 확실한 것은 이들은 악행 후에는 어떠한 슬픔과 후회를 느낄 수 없다는 것이다. ‘도덕이라는 것은 말이 되는 그림을 그려 보이는 것’이라는 유진의 말에서 볼 수 있듯이 그들에게 도덕이란 인간관계에서 마땅히 지켜내야 하는 ‘옳음’이 아니라 그들이 입맛대로 고른 물감과 도화지에 어떠한 방식으로 만들어낼 수 있는 그림인 ‘허구’와도 같다. 그들은 나에게서 끌어낸 공감처럼 적당히 짜맞춘 자기변론을 내세우면서 그들은 우리 사이에서 함께 살아간다.
2 내면의 악
이 책을 읽은 후에는 이 작가가 악행에 대해서 집요하게 파고든 이유와 후에 남았던 무력한 감정들을 해석해야 했다.
“평범한 비둘기라 믿는 우리의 본성 안에도 매의 ‘어두운 숲’이 있기 때문이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계에 존재하는 타인의 ‘악’의 존재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의식하지 못한 내면에도 ‘악’은 존재하지 않을까? 어쩌면 악랄한 범죄자만이 가지고 있을 것 같은 악이 우리의 무의식너머에 존재한다는 것을 모두가 인지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각자 부정하고 은폐하고 있지만 그 아무리 고결한 사람이라도 이성에 반하는 ‘금지된 행위에 대한 환상’, 잔인한 욕망과 원초적 폭력성에 대한 환상’ 을 지니고 있을 것이다.
작가의 여러 인터뷰를 보면 이러한 악을 똑바로 응시해야 그에 대해 맞설 수 있다고 말한다. 악에 대한 저항은 그에 대한 인지와 이해에서 시작될 수 있다. 악이 인간이 선택할 수 없는 본성이라면, 그것과 공존할 수밖에 없는 현실이라면 악이 어떻게 존재하고 어떠한 시점에서 점화되는지 그리고 그 끝은 어디로 향하는지를 인식해야 한다.
3 종의 기원
작가가 말하는 종의 기원을 두가지로 해석할 수 있었다. 악의 관점과 그 악에 대항하는 관점이다.
악의 관점은 비둘기의 세상에 태어난 매이자 피식자로 살아가도록 학습 받고 억압받으며 성장한 포식자들의 악의 본질에 대한 기원이다. 살인이란 본인의 생존을 위하여 경쟁자를 제거하는 도구 중 하나일 뿐이며 이렇게 진화해나간 조상들의 악의 실체에 대한 유전자는 우리에게 남아있을 것이며 이 사실은 누구에게나 어디서든 존재할 수 있는 악에 대해서 인정하게 만든다.
악에 대항하는 관점은 악과의 공존 속에서도 살아남은 악에 대적할 수 있는 가능성에 대한 기원이다. 두번째 해석은 아마도 악의 필연성과 공존에 대한 무력감을 해소하기 위한 억지로 이끌어낸 나의 해결책이라고 볼 수도 있겠다. 최상단의 포식자의 악과 내면의 어두운 숲의 악이 들끓고 있는 두려움과 혼란 속의 세상에서도 살아남은 생존자들에게는 자신을 악의 영원한 피해자로 두지 않을 방도, 그리고 악을 지배하는 적응 구조를 지니고 있었을 것이다. 이 또한 우리에게 남아있기에 악에 파괴되지 않고 살아가고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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