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삶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 - 류시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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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성호
댓글 0건 조회 4,183회 작성일 21-08-02 19:37

본문

삶이 나에게 가르쳐 준 것들

류시화


  류시화 작가는 젊은 시절부터 자아실현과 삶이라는 명제를 탐구하고자 인도 등지를 여행하고, 수행과 명상을 즐기며 사고의 깊이를 확장시키는 작가입니다. 작가의 아버지는 낚시꾼이자 명상가로 살면서 가족의 생계나 자식 교육에 관심을 두지 않고, 오로지 내면의 평화로움을 탐구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류시화 작가가 인간 본질에 대한 탐구를 위해 거침없이 글을 작성할 수 있었던 것은 아버지로부터 물려받은 기질 때문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작가의 이런 얽매임 없는 자유로운 태도는 쉽게 읽히지만, 결코 가볍지 않은 작가 특유의 문체를 만들었고, 많은 독자에게 사랑을 받았습니다. 이 책은 자전적인 산문집이다 보니 작가의 어린 시절의 경험, 아버지에 관한 이야기, 인도로 떠난 계기와 스승들과의 만남, 그리고 여행에서 만난 사람들과 그 여정을 통해 얻은 삶에 대한 성찰 등, 류시화라는 작가와 그의 정신세계의 원료를 이해할 수 있는 내용이 책에 담겨 있습니다.

  본문에 소개된 산문들을 보면 작가는 우리 모두가 지구라는 별을 여행하다가 떠나는 지구별 여행자라고 이야기합니다. 산문들 중 지구별을 주제로 하는 이야기를 모아 작가의 인생관을 엿보고, 이 지구별 여행을 잘하기 위해 어떤 것들이 필요한지 한번 정리해 보았습니다.



시인의 여행


  우리는 모두 각자 다른 별에서 지구로 온 여행자들입니다. 류시화 작가는 본인을 시와 음악과 그림을 좋아하는 북극성에서 온 여행자 중 하나라고 말합니다. 우리는 모두 물리적인 육체를 가지고 지구에 왔기 때문에, 부모를 만나고 어린 시절을 거치면서 지구의 언어를 배워야 합니다. 우리는 여행 중에 생존하기 위해 돈이라는 것을 벌어 필요한 의식주를 해결해야 합니다. 돈과 직업은 생존을 위해 필수적이지만, 여행자인 우리에게 그 이상의 가치는 없습니다. 때때로 여행자들은 여행을 함께할 동료를 찾아 결혼이라는 것을 합니다. 물론 독신 생활을 고집하는 여행자들도 있습니다. 또 결혼을 통해 새로운 꼬마 여행자가 이 지구에 도착합니다. 그러나 지구에 여행자가 점점 많아지면 직업을 얻기 어려워지고, 여행은 둘째치고 생존 그 자체가 어려워집니다.

  그래서 차츰 우리는 우리가 여행자임을 잊고 생존에 몰두하기 시작합니다. 작가는 우리들이 여행자로서의 정체성을 잊어버리는 순간부터 인생의 고통이 시작된다고 이야기합니다. 우리들은 생존을 위해 권력 투쟁을 하고, 서로 사기를 치고, 남을 현혹해 그들 위에 군림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떠나게 되어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시간도 많지 않습니다. 우리는 지구별을 떠날 때 지구별에서 얻은 어떤 물질도, 어떤 명성도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여행자들은 여전히 생존에 목매고 있는 다른 여행자들을 구원하기 위해 종교라는 제도를 만들었습니다. 하지만 사람들은 습관적으로 세속에 안주하고 싶기 때문에, 종교라는 제도를 심리적인 위안의 수단과 자신만의 공동체를 만들기 위한 배타적인 제도로 바꾸었다고 합니다.



지구별 사랑


  류시화는 사랑하는 사람을 소울메이트, 즉 영혼의 동반자라 말합니다. 서로의 성숙한 삶을 위해서 지구별을 함께 여행하는 친구 여행자인 거죠. 수많은 별 중에 지구에서, 억겁의 시간 중에 찰나의 인생에서 두 사람이 만나 불같은 사랑을 경험하는 것은 우주의 신비이며 인생의 기적입니다. 이 지구별에서 사람들을 가장 가슴 두근거리게 하고 잠 못 이루게 한 게 사랑이었으니, 옛날 사람들은 지구를 '정성(情星)', 즉 사랑의 별이라고 불렀습니다. 사랑은 지구별에서 경험할 수 있는 가장 큰 선물입니다. 하지만 두 여행자에게 주어진 시간도, 여행의 경로도 동일하지 않기 때문에 모든 사랑에는 이별에 따라올 수밖에 없습니다. 

  사랑의 만남이 주는 축복이 큰 만큼, 사랑의 이별이 주는 눈물 또한 큽니다. 부모의 반대로 사랑하는 여성을 품지 못하고 먼발치에서 바라만 보았던 유목민, 공주를 사랑했지만 신분의 차이로 사랑을 이루지 못한 수도승, 사랑하는 사람이 죽은 뒤 그와의 우정을 노래한 여성 시인. 류시화 작가는 다양한 이별의 이야기를 통해, 지구별은 우리에게 사랑의 순간을 마련해 놓았듯이 이별의 순간 또한 잊지 않았음을 말합니다. 끝으로 류시화 작가가 묻습니다. 사랑이 두려워 피해 다닌다면 우리의 삶은 과연 무엇을 위한 것인가? 지구별 여행의 가장 큰 목적 중 하나는 사랑입니다.



죽기에 참으로 좋은 날


  비에 계절이 끝나고 작가는 녹음이 우거진 숲 건너편 산을 바라봅니다. 그리고 그 산 아래쪽에 보이는 구멍가게를 봅니다. 그리고 그 구멍가게의 주인 할머니를 봅니다. 할머니는 늘 구부정한 자세로 구멍가게 안에 앉아있습니다. 구멍가게의 지붕에 눈이 덮이는 겨울에도, 빗물이 그 앞의 도로로 휩쓸려 내려가는 여름철에도 할머니는 같은 장소에서 같은 자세로 같은 곳을 바라봅니다. 어느 날 할머니가 보이지 않습니다. 작가는 할머니가 아프신지, 혹 눈을 감으셨는지 걱정이 됩니다. 그러나 작가는 문뜩 할머니가 없어도 세상은 변하지 않음을 봅니다. 숲은 여전히 우거지고, 산을 그 자리를 지킵니다. 마당에는 꽃이 피고, 구멍가게도 그 자리에 있습니다. 지구별 여행자들은 이 땅에 잠시 머무르는 것이기 때문에, 그들이 떠나도 세상은 크게 변하지 않습니다.

  이 사실을 깨달은 작가는 두려움을 느낍니다. 죽음을. 죽음 저편의 세계를. 그가 죽음을 알지 못하고 죽음 너머의 세계조차 전혀 알지 못한다는 사실을 두려워합니다. 하지만 다시 깨닫습니다. 우리가 우주의 여행자고 지구별에 잠시 들른 것이라면, 죽음 역시 하나의 정거장이며 그다음에는 또 다른 여행이 기다리고 있다는 것을. 그리고 이 여행들에는 같은 운명을 등에 지고서 함께 여행할 형제가 필요하다는 것을.



  류시화 작가의 산문에는 그의 세계관이 녹아있습니다. 명상과 사색을 중시하는 그의 글에는 불교와 도교, 힌두교적인 색채가 짙습니다. 작가는 신은 높은 산 위나 깊은 바닷속에 있지 않고, 우리 내적의 가장 깊숙한 곳에 숨어있다고 말합니다. 작가가 가진 사상은 기독교적인 세계관을 가진 저와 일부분은 전혀 다르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큰 틀에서 작가가 말하는 지구별 여행자 이야기는 저에게 큰 성찰을 주었습니다. 인생은 빈손으로 와서 빈손으로 떠나는 나그넷길인데, 그 사실을 잊은 채 우리는 아웅다웅 서로 다퉈가며 살아갑니다. 하지만 또 우리는 지구별에서 만난 동료 여행자들과 서로 사랑하고 아끼며 이 여행을 풍요롭게 만듭니다. 그리고 세상을 떠난 이후에도 죽음과 그 이후의 여행을 기대하면 눈을 감습니다. 나에게 주어진 60년 남짓 남은 지구별 여행. 이 여행을 통해 나를 이 땅에 보내주신 분의 뜻을 따라 서로 사랑하고 아끼며 여러 사람과 함께 동행하는 여행을 만들어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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