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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바닥에서 - 막심 고리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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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기룡
댓글 0건 조회 3,620회 작성일 21-08-30 1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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밑바닥에서

막심 고리카


만병의 근원, 스트레스. 끊임 없는 스트레스로 온 몸에 긴장 상태를 유지하며 살다 보니, 스트레스가 얼마나 해악인지를 피부로 느끼고 있다. 경직된 목, 움츠러들고 굳어가는 승모근, 앙상하게 말라가는 팔과 다리, 의젓하게 펴고 다니려 해도 이제는 잘 펴지지 않는 등과 거북목이 된 나를 거울로 보고 있다 보면, 서글픈 감정이 솟아 오른다. 수축해버린 어깨와 목 근육들은 치통까지 유발하며 온 이가 깨진 듯한 통증을 주고 있다… 이러한 극한의 스트레스를 조금이라도 덜어보고자 내가 시도하는 방식은 매우 별나다. 바로, 나보다 더 힘들게 살아가는 사람들을 보며 위안을 삼는 것. 혹자는 남들과 비교하며 희비를 교차하는 것이 한심하다고 생각할지도 모른다. 하지만 어쩌겠는가, 당장의 나에게 그나마 정신적으로 위로가 되는 방법인 것을.

최근에는 ‘다큐 시선 – 빈민촌의 일상’ 편을 짤막하게 시청하였다. 누구에게나 힘든 세상이지만, 빈민촌의 사람들에게 세상은 벼랑 끝자락에서 하루하루 사는 것과 같았다. 복도에는 항시 바퀴벌레가 죽어 있고, 낡아 빠진 운동화 한 켤레는 그나마도 누가 훔쳐 갈까 좁은 방 안에 보관한다. 방은 다리조차 쭉 펼 수 없는 참담한 크기에, 재개발로 인해 조그마한 방조차도 언제 뺏길지 모르는 불안감에 살고 있다. 이를 보고 있다 보면, 나의 힘듦과는 차원이 다른 또 다른 세상을 마주하는 듯한 느낌이 든다. 그분들의 삶은 스스로 아무리 노력해도 빠져 나올 수 없는 깊은 늪 속에 빠져 있다. 정부는 어째서 대북 지원은 주구장창 해 주면서 당장의 우리 나라 국민은 이렇게 처참히 외면하는지, 도대체 사람들을 돕는다는 구호기구들은 누구를 돕고 있는지 의구심이 만연한다.

 

‘밑바닥에서’ 작품은 1800년 후반 ~ 1900년 초반 당시 러시아 하층민들의 삶을 여과 없이 보여주는 작품으로, 내가 본 다큐 시선 프로그램처럼 사회의 사각지대에 놓인 빈민층들의 모습을 그리고 있다. 빈민들이 옹기종기 모여 사는 하숙소에서 벌어지는 이야기를 통해 작가는 무엇을 보여 주고자 했을까.


1.     하숙소 : 장소적인 상징성


작품의 배경이 되는 19세기 말 ~ 20세기 초는 러시아에서 자본주의 문제점이 나타나며 빈민들과 사회적 하층민이 증가하던 시기였다. 일거리가 없어 빈민으로 전락한 열쇠공, 죽음을 앞둔 그의 아내 안나, 근엄한 모습을 잃어 버린 몰락한 남작, 살인 및 강간 전과로 가득한 도박꾼, 알코올 중독에 빠진 배우… 저마다의 사정을 가지고 사회의 하층민으로 전락한 다양한 인물들은 모두 ‘하숙소’ 라는 좁은 공간 안에서 각자의 목소리로 처절하게 아우성 치고 있다. 그런 의미에서 하숙소는 다양한 집단에서 ‘밑바닥’까지 전락한 빈민층들의 모습을 보여 주는 당시 사회의 빈민층을 보여주기 위한 작가의 시선을 담는 틀이자 그릇이라고 볼 수 있다.

 


2.     루카, 그가 남기는 여운


어느 날 하숙소에는 본인을 순례자라고 칭하는 루카라는 인물이 등장한다. 희망 없이 살아가던 하숙소의 빈민들은 루카를 통해 위로와 희망을 얻고 이전과는 다른 감정과 생각으로 살아가고자 한다. 그러나 하숙소에서 갈등이 극대화되며 살인이라는 참극이 벌어지자, 루카는 연기처럼 홀연히 사라져 버린다. 암흑 속의 촛불과 같던 루카가 사라지자, 잠시나마 희망을 가지고 있던 사람들은 결국 자신들의 삶에 조금도 변한 것이 없었기에 루카에 대해 갑론을박을 벌이게 된다. 작가는 루카를 통해 2가지 상반된 시선을 의도했다고 생각한다. 첫 번째로, 선한 루카의 관점이다. 루카는 빈민가 사람들에게 지금의 희망 없는 삶이 당연하지 않음을 깨닫게 해 주는 긍정적인 존재였다. 이를 통해 빈민가 사람들은 무력감에서 탈피하여 자신의 삶을 개선하기 위해 고뇌하기 시작했다. 반대로 두 번째는, 사기꾼 루카의 관점이다. 그는 번지르르한 말로 사람들을 현혹하는 부정적인 존재였다. 무력감에 빠져 있던 사람들에게 새로운 삶을 살도록 자각하는 멘트들은 수 없이 던지고 다녔으나, 실제로 해결해야 할 사태가 터졌을 때 그는 도망쳤다. 어디까지나 세치 혀로 사람들의 마음만을 현혹한 사기꾼이었던 것이다.

 

주변을 보면 이러한 ‘루카’와 같다고 느껴지는 사람들이 많다. 앞에서는 좋은 말, 격려하는 말을 입으로 수없이 놀리며 공명정대함을 외치는 사람들. 정말로 그들이 외치는 공명정대함을 일관 되게 보여준다면 첫 번째 언급한 선한 루카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내가 최근에도 느꼈던 ‘현실의 루카’들은 본인들이 주장하는 공명정대함을 어디까지나 자신의 이익을 위해 사용했다. 본인들이 만들어 놓은 공명정대함의 프레임은 내가 보기에 전혀 공평하지 못 했다. 사람 대 사람으로서 정이 떨어지는 순간들이다. 교묘하게 자신의 이익을 챙기면서 공정함을 외치는 꼴을 보고 있자면, 차라리 사람 앞에 대놓고 욕을 하는 양아치들이 낫다고도 생각이 든다. 정말, 진심으로, 우리는 선한 루카가 되려고 해야 하지, 본인의 편의를 위해 사기꾼 루카가 되어서는 안 된다.

 


3.     안나와 배우의 죽음


루카로 인해 영향을 받았던 사람들이 자신들의 삶에 대해 고민하면서 빈민가에도 긍정적인 변화의 바람이 일어나려고 한다. 그러나 쇠약했던 안나의 죽음, 그리고 갑작스러운 배우의 자살 소식이 전해 지면서 찬물을 끼얹듯이 분위기는 가라앉고 작품은 마무리 된다.

 

희망찬 결말을 통해 현실의 어려운 삶을 이겨내 보자라는 해피 엔딩을 기대한 독자들에게 당황스러움을 안겨 주는 마무리이다. 하지만 이 또한 작가가 명확히 의도한 바이다. 단순히 힘들게 살아가는 하층민들에게 희망을 안고 열심히 살아가보자 하는 메시지를 주고 싶은 게 아니다. 그들이 아무리 이를 악물고 암담한 현실을 벗어나려고 노력하여도 현실은 너무도 냉혹하며 나아지기 힘들다는 것을 치밀하게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노력해도 바뀌지 않는 그들의 어두운 세상에 우리와 같은 지성인들이 동아줄을 내려주어야 한다. 다큐 시선에서 보았던 우리네의 빈민가 사람들도 마찬가지다. 그들이 벼랑 끝에서 뒷걸음 쳐서 영영 사라지기 전에, 우리가 한 번 뒤돌아 따듯한 손을 건네 주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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