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소리(bullshit)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
페이지 정보

본문
개소리(bullshit)는 어떻게 세상을 정복했는가?
제임스 볼 저
얼마 전 한강에서 의대생 한 명이 사망했다. 경찰은 목격자와 최초 발견자를 중심으로 수사를 이어가고 있다. 경찰의 수사 결과는 느리지만 하나둘씩 발표가 되고 있다. 하지만 이를 지켜보는 사람들은 이미 사람 여럿을 법정에 세울 기세다. 나 역시 관련 인터넷 기사들을 보는 중 사망자와 동석했다 말하는 누군가를 댓글에서 발견했다. 나를 포함한 많은 사람은 그 사람에게 얼른 경찰에 신고하고 조사를 받으라 응원했다. 사건의 정황을 세세히 알고 있는 듯해 보였던 그 사람은 생각보다 많은 관심에 부담됐는지 전날 자신의 말이 거짓이었음을 다음날 온라인상에서 밝혔다. 진실에 가까워지리라 잠깐이나마 기대했던 나는 몹시 허탈했다.
진실은 복잡하고 거짓은 간단하다. 진실을 파악하는 과정은 혼란스럽고 때론 불가능할 수 있다. 범죄를 수사하는 형사도, 지식을 탐구하는 연구자도, 스마트폰을 잃어버린 철수도 진실을 간절히 바란다. 하지만 우리는 생각보다 자주 거짓에, 아니 개소리(bullshit)에 유혹된다. 거짓은 어떤 형태의 절대적 진실과 권위를 염두에 두고 행하는 전략적 행위에 기인한다. 하지만 개소리는 진실이나 거짓 어느 쪽도 크게 신경을 쓰지 않고 내뱉은 허구의 담론이다. 다만 개소리는 사람들이 분노할 만한 타이밍에, 모두에게 큰 영향을 줄 수 있는 어떤 이벤트가 발생했을 때 우후죽순 생겨난다. 코로나19가 창궐한 직후 전 세계가 마스크 공급에 차질을 겪던 때가 있었다. 우리나라 역시 지정된 요일에 지정된 약국에서 제한된 수량을 구매하여 마스크를 착용했다. 바로 이때 현 정부가 북한에 지원하기 위해 마스크 100만 장을 비축하고 있다는 글이 퍼지기 시작했다. 이 글은 삽시간에 각종 온라인 커뮤니티로 퍼졌고 사람들은 분노했다. 하지만 이 글은 거짓으로 판별났고, 손 소독제 판매업체의 노이즈 마케팅에 불과했다. 인간의 공포심과 두려움을 악용한 낚시성 글이었다.
개소리가 끊임없이 생성되는 이유는 간단하다. 바로 ‘돈’ 때문이다. 현재 대중들은 주로 온라인망을 이용하여 미디어를 접한다. 종이 신문의 영향력은 점차 낮아지고 클릭이 돈이 되는 시대가 도래했다. 매일 같이 습관적으로 접하는 소셜 미디어는 물론이고 인터넷 뉴스, 신문, 잡지 등 다양한 매체들은 클릭 장사를 통해 이윤을 창출해야 하는 환경에 놓이게 됐다. 그들은 자극적이고 선정적인 가짜뉴스라는 미끼를 대중들에게 던지며 그들 스스로 유전자에서 직업정신과 윤리의식을 차차 지워나가고 있다. 개인도 마찬가지다. 잘 키운 블로그 하나가 직장 안 부럽다고 하는 말이 도는 요즘, 많은 사람이 저마다의 온라인 플랫폼을 육성하는 데에 혈안이 되어있다. 플랫폼의 특성상 많은 사람이 오고 가야 확장이 되기 마련이고, 이 같은 특성은 가짜뉴스의 생성과 같은 현상을 낳는다. 한 온라인 조사업체에 따르면 소셜 미디어, 온라인 플랫폼상에서 공유되는 인터넷 뉴스 기사 중의 59%가 링크를 클릭도 하지 않고 행해진다고 한다. 제목이 자극적이면 일단 공유를 하고 보는 것이다.
기레기(기자+쓰레기를 뜻하는 온라인 신생어)를 욕하는 우리 역시 진실에 과연 얼마나 신경 쓰며 살아가고 있는가 되새겨봐야 한다. 인간에겐 누구나 편향성이란 게 있다. 내가 믿는 신념과 부합하는 정보는 과장하여 습득한 후 일부 반하는 정보는 무시한다. 반대로 나의 확증이 자칫 무너질 수 있는 정보와 마주치더라도 오히려 내 신념을 더욱 확고히 하는 역화효과 또한 발생한다. 이처럼 인간의 뇌는 비논리적이며 편협하다. 우리는 이를 분명히 의식하고 끊임없이 자신을 검증대에 스스로 올려야 한다. 개소리는 단순하고 간단명료하며 접하기 쉽다는 ‘진실’에 익숙해져야 한다. 즉 사실에 가까워도 과장된 말, 거짓에 가까워도 진실이 소량 섞인 정보가 내가 겪는 거의 모든 발언이란 ‘진실’을 담담히 마주해야 한다. 우리는 우리 수준에 맞는 미디어를 얻는다. 거짓 뉴스와 개소리로 점철된 정보들도 소비가 있으니 공급이 끊이지 않는 것이다. 정치인의 개소리 역시 유권자의 반응을 먹고 사는 좀비다. 다시 말해 개소리가 기승을 부리고 믿을 말한 정보가 없는 환경이라면, 그곳은 그 누구도 아닌 우리가 직접 가꾼 우리의 혐오스러운 보금자리이다. 더군다나 개인이 정보를 생산하고 공유할 수 있는 현대사회에서 스스로의 변화가 없이 개소리를 욕하는 것은 제 얼굴에 침 뱉기나 다름없다.
우리 모두가 이 문제의 일부라면, 우리 모두는 해결책의 일부일 수 있다.
-영국의 대표 저널리스트이자 퓰리처 상 수상자, 저자 제임스 볼-
우리는 어딘가에 소속된다. 학교, 회사, 동호회, 종교 등 다양한 단체를 통해 인간은 소속감을 느낀다. 어쩌면 이 소속감이 자칫 우리의 뇌를 편협하게 만들지 않을까 생각해본다. 내가 속해 있는 집단에서 안정감을 느끼고 순응을 표하는 일종으로 신호를 생산하고 공유한다. 그리고 내 집단의 정체성을 흔드는 진실보다는 소속감을 강화하는 개소리를 반길 수도 있다. 무엇보다 다른 집단과의 적대적 대립에서 생성되는 강한 소속감은 나의 뇌를 더욱 편향시킬 수도 있다. 이 같은 과정이 반복되며 자연스럽게 제조되는 일련의 정보들에 더 민감하고 책임감을 느껴야 할 주체는 다른 누구도 아닌 바로 해당 집단의 소속원들이다. 의사 정원 확대, 전문연구요원 인원 감축, 세제 개정, 근로기준법 강화 등 나는 생각보다 많은 이해 집단에 소속되어 있음을 새삼 깨닫는다. 우리 모두가 문제의 일부임과 동시에 해결책의 일부임을 자각하자. 선동과 날조에 부화뇌동하지 않고 개소리의 생산 역시 죄악으로 삼는 강인한 정신을 지녀 우리의 보금자리를 스스로 아름답게 가꾸어 나가자.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