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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리 갱의 진짜 이야기(True History of the Kelly Gang) – 피터 캐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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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규섭
댓글 0건 조회 6,766회 작성일 21-06-01 1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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켈리 갱의 진짜 이야기(True History of the Kelly Gang) – 피터 캐리

 

이규섭

 

 네드 켈리(Ned Kelly)를 아는가?

 우리나라에선 낯선 이름이지만 바다 건너 호주에서는 모르는 사람이 없단다. 그러니까 우리나라로 치면 홍길동이나 임꺽정 같은 의적의 대명사로 통한다. 그런데 책을 덮으며 든 생각은 하나였다. 이 사람, 대체 왜 유명한 거지?

 이런 의심 한번쯤 해보았을 것이다. 의적이란 게 있을 수 있는건지, 나쁜 사람들을 괴롭혀서 착한 사람들을 도와주면 그게 의로운 게 맞는지 말이다. 의적이라는 개념은 사회의 부조리가 낳은 산물이라 생각한다. 순리대로 해결되지 않는 문제들을 오히려 그 순리를 거스르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민중들의 바램이다. 안티히어로다. 그러니 그 상상만으로도 사람들은 통쾌한 기분으로 현실의 어려움을 잠시나마 잊을 수 있다. 하지만 동시에 그 기분에 취해 이면에 가리워진 모순과 비현실성은 잊혀진다. 현실적으로 생각했을 때, 개인의 이익을 추구하는 것이 자연스럽고, 또 그 수단에 대해 관대해진 현대 사회에서 의적이란 존재하기 어려운 개념일 것이다. 그러니 이런 개념으로부터 자유로운 옛날 이야기에서만 의적이 살아갈 수 있는 것이다. 현대 사회에 등장한 도둑들 중 의적이라는 칭호가 부여되는데 많은 이들의 공감을 끌어낸 인물은 없다. 다 사욕을 추구했던 범법자에 불과하다. 하지만 네드 켈리는 실존인물이다. 1880년, 26살의 나이에 짧은 생을 마감한 그는 그 찰나의 시간 동안 누구보다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떠나갔다. 이토록 가까운 시대에 의적으로 통하던 사람이 있었다는 사실이 쉬이 믿겨지지 않는다.

누군가를 영웅으로 만드는 데는 두 가지 재료가 필요하다. 명분과 상징. 여느 나라들도 마찬가지이겠지만 근대 호주는 영국의 식민지 중 가장 열악한 환경을 자랑했다. 그곳에서 살아가는 서민들은 굶주림과 맞서는 것만으로도 버거웠고, 그 절망의 틈을 부패한 공권력이 파고들어 지옥도를 만들어냈다. 없는 자들은 누명을 쓰기가 부기지수였고, 한번 범죄자의 오명을 쓰면 수시로 경찰들에게 괴롭힘을 당하며 여러가지 빌미로 착취당해야 했다. 그런 상황에서 등장한 켈리 갱(Gang)은 근대 호주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비참한 삶 속에 불현듯 등장한 한줄기 희망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부조리한 사회를 향해 반기를 들며 무려 은행을 털었고, 부패 권력의 상징인 경찰에 무력으로 대항했다. 가난한 이들은 그들의 약탈 대상이 아니었고, 인질들에게는 늘 신사적이었다. 경찰을 사살한 이 흉악범의 교수형을 반대하기 위해 수 만명의 빅토리아 주민들이 청원서에 서명했다고 하니 그 인기를 실감할 만 하다. 무엇보다 그에게는 강렬한 상징이 있다. 그를 추격하는 경찰들로부터 총알을 피하기 위해 제작한 철갑옷이다. 철갑이 주는 위압감과 총이 잘 통하지 않는다는 당혹스러움을 고려하면 당시로써는 혁신적이고 충격적이었을 것이다. 그래, 이제 그를 영웅이라고 부를 재료는 충분한 것 같다.

하지만 소설 속에서 네드 켈리는 전혀 영웅답지 않았다. 대단한 일을 해냈고, 영웅이라 불릴 재료가 갖추어 졌지만 내게는 전혀 영웅이라는 이름이 주는 감동이 느껴지지 않았다. 결국엔 실패했다는 사실 때문일까? 그럴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그것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주변 사람들에게 자꾸만 휘둘리고, 믿었던 이들에게 또 속아넘어가는 모습은 결단코 이야기 속 영웅의 모습이 아니었다. 그래, 우리 마음에 쏙 드는 적당한 단어가 있다. 비범함. 남들과 다른 비범함. 나는 켈리에게 그런 것을 기대했을 지도 모르겠다. 당장 강하지 않더라도. 당장 무언가 보여주지 않더라도. 무언가 일으킬 것만 같은. 강한 의지나 신념 같은 것들을 말이다.

하지만 네드 켈리는 그저 한 명의 인간이었다.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자신이 바라는 안락한 삶과는 점점 멀어질 뿐인 그런 사람. 싸움 깨나 하는 덩치이지만 세계 최강의 싸움꾼도 아니고, 그렇다고 화려한 언변이나 강한 인상으로 모두를 휘어잡는 카리스마를 가진 사람도 아니었다. 카리스마라면 그의 대부와 같았던 해리 파워가 한 수 위였을 것이다. 선한 사람이냐면 그것도 아니었다. 정당함을 갈구했지만 수많은 부정 역시 저질렀다. 사회가 그에게 많은 것을 앗아갔다고 해서 그것을 되찾기 위해 저지른 부정이 정당화 되지는 않는다. 선량한 사람은 그런 결단을 내릴 수 없다. 그는 무고한 사람이었을 뿐이다. 자신이 저지른 죄까지는 인정하지만, 그렇지 않은 부분은 인정할 수 없었다. 그의 아버지가, 어머니가 저지르지도 않는 죄를 뒤집어 쓰는 것을 보고, 그리고 그것이 자신에게도 형제들 에게도 일어나는 것을 보고 그는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다. 그래도 그가 무얼 할 수 있었을까? 그저 힘 좀 쓸 줄 알 뿐인 깡패가.

 소나 말 도둑질을 일삼던 그가 은행을 터는 결단을 내리는 과정은 힘겨웠다. 경찰을 적으로 돌리는 것은 너무나 큰 위험이었기 때문이다. 그들의 신식 무기에 비해 갱단이 가진 무기는 너무나 구식이었고, 수적으로도 불리할 것이었다. 그는 계속 고민하고, 주변에선 자꾸 결단을 재촉하고, 그는 또 고민한다. 무엇 하나 멋들어지게 결정하지 못한다. 갈등 속에서 정답 없는 고민을 하다가 그저 선택할 뿐이다. 마지막 남은 선택지를.

객기. 가능성이 없는 상황에서 감정적으로 반응하여 무모한 행위를 지속하는 것. 그 와중에 허세를 부리며 스스로를 속이는 모습을 보며 그걸 객기라고 부른다. 객기와 용기를 구분하기 쉬운 이유는 하나다. 본인도 자신이 객기를 부리고 있다는 것을 마음 깊은 곳에서 이미 알고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현실을 외면하려고, 깊게 생각하지 않으려고 더 큰소리 치면서 달려드는 것이다.

우리는 영웅이란 무릇 자신의 뜻에 한 치의 의심이 없고, 객기가 아닌 당당함으로 무장한 사람이라 생각한다. 그렇기에 그들은 위기 속에서도 쉬이 무너지지 않고, 버티고 버텨서 끝의 끝에 가서는 목적한 바를 이루어 내고 할 것이라 믿어 의심치 않는다. 하지만 그런 사람이 얼마나 될까? 우리의 목표가 아무리 뚜렷하더라도, 그 목표에 한치의 의심이 없더라도, 우리가 행동해야하는 그 순간. 결단을 내려야 하는 그 순간에는 망설일 수 밖에 없다. 절대라는 것은 없으니까. 우리 모두 두려움이라는 감정을 아는 인간이니까. 네드는 자신과 호주의 수많은 피해자들 그리고 어머니. 어머니의 무고함을 호주 전역에 알려야 했다. 해본 적 없는 일. 잘 할 수 있을지 전혀 모르겠는 일. 결국 잘 안될것이 더 뻔한 일. 그렇지만 자신이 쓴 장문의 메시지를 송신하기 위해 앞으로. 앞으로. 불나방처럼 달려 들어야 했다. 그에겐 객기라도 부릴 힘이 필요했다.

 “씨X. 나는 모니터호다!”

 불안함과 초조함 앞에서 자신을 속이는 주문. 깡통을 덮어쓴 초라한 모습이 아닌 거대한 함선이라고 자신을 되뇌이면서 나아간다. 총알은 그를 비껴간다. 경찰이 하나, 둘 쓰러진다. 단단한 철갑 속에서 나약한 인간의 몸으로 피를 흘려가면서, 남자는 나아간다. 하지만 이제 놈들은 집요하게 다리를 노려온다. 무적으로 보이던 철갑은 이제 오히려 짐덩이가 된다. 테러리스트의 인질극으로, 소규모 집단의 난동극으로, 우스꽝스런 깡통으로, 그리고 형장의 이슬로 모든 것이 끝나버렸다. 허무하게. 그의 처형은 여느 범죄자의 처형과 다를게 없었고, 정부를 향한 그의 요구는 아무것도 받아들여 지지 않았다. 하지만 그가 그토록 바라던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한다. 사람들이 동요한다. 그의 처형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이 시원찮다. 캘리 갱 체포의 일등 공신이었던 커나우를 향한 찬사도 금세 시들었다. 진실은 쉬이 가라앉지 않는다. 그렇게 네드 켈리는 영웅이 된다.

 모든 일에 확신에 찬 사람은 없다. 다들 그런 척 하는 거지. 이토록 불완전한 사람들 속에서도 영웅이 나타난다. 비범함? 그런 알지도 못할 것이 도대체 무얼 할 수 있단 말인가. 다시 한 번 생각해본다. 무엇이 사람을 영웅으로 만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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