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몬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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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원평
사람들은 감정을 느끼며 산다. 다사다난한 일상 속에서 때로는 기쁨을, 때로는 슬픔, 분노 등의 감정을 마주하며 살고 있다. 만약 감정을 느끼지 못 하고, 남들이 가지는 감정에 대해 공감하지 못 한다면 어떨까?
1. 타인의 감정을 이해한다는 것
[아몬드]의 주인공 윤재는 감정을 주관하는 편도체의 손상으로 공포도, 분노도, 어떠한 감정도 거의 느끼지 못 하는 아이다. 그렇기 때문에 엄마에게서 호의를 보이면 고맙다고 말하고, 남들이 웃을 때는 따라 웃는 ‘감정 주입식 교육’을 받기도 한다. 직설적으로 말하자면 사이코 패스. 윤재는 진심으로 다른 사람들의 감정에 공감하지 못 한다. 그렇기 때문에 친구 곤이를 비롯해 수많은 주변 사람들에게 상처와 서운함을 안겨 주기도 한다.
책을 읽는 대부분의 독자들은 윤재를 자신과 동떨어진 이상한 인물로 볼 수도 있다. 하지만 사실 우리는 윤재와 크게 다르지 않다. 우리는 타인의 감정을 공감하고, 이해해 줄 수 있는 능력이 있다. 그런데 스스로에게 되물어 보자. 진심으로 상대방의 감정을 이해하고, 상대방의 입장이 되어 언행을 조심하였는가? 아니면 내가 편한 대로 상대방을 대하였는가?
모든 사람들은 살아온 환경이 다르다. 그렇기 때문에 같은 상황 속에서 받아 들이는 것, 느끼는 것도 다를 수 밖에 없다. 상대방을 대함에 있어서 내가 편했다면, 상대방은 불편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타인의 말에 귀 기울이는 것을 넘어서 상대방의 마음의 상처를 가하지 않도록 언행까지 신경을 쓸 줄 알아야 한다. 생각 없이 던지는 돌에 개구리가 맞아 죽는다. 내가 장난스레 던진 부메랑은 다시 나를 위협하는 도구가 되어 날아 온다는 사실도 기억해야 한다.
2. 반대의 사람들이 만나 우정을 쌓아가는 것
윤재 앞에 불량 청소년 ‘곤이’가 나타난다. ‘곤이’는 윤재를 친구가 아닌 괴롭힘의 대상으로 대하지만, 윤재는 분노를 느끼지 못 한다. 감정을 느끼지 못 하는 윤재에게 곤이는 의아함을 느끼고, 윤재에게 다양한 감정을 마주할 수 있도록 돕게 된다. 그러한 상황 속에서 둘은 우정을 쌓아가며 둘도 없는 친구가 된다.
[언터쳐블, 1퍼센트의 우정] 이라는 영화가 있다. 이 영화에서는 전신 불구이지만 상위 1%의 백만장자 필립과 가진 것이라고는 건강한 신체가 전부인 하위 1% 백수 드리스의 이야기를 풀어 낸다. 정반대의 사람이 만나 처음에는 잦은 다툼이 있으나, 우정을 쌓아 둘도 없는 친구가 되는 스토리이다.
이러한 부분에 대해서 내 입장은 조금은 회의적이다. 물과 기름이 섞이지 않는 것처럼 섞이려 해도 섞일 수 없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백만장자 필립과 백수 드리스가 정말 뿌리부터 정반대의 사람이었다면 둘은 어떠한 노력으로도 가까워 지기 힘들었을 것이다. 하지만 필립은 자신의 백만장자라는 타이틀에 상관하지 않고 가식 없이 대해 주는 친구를 원했고, 그러한 needs를 충족시켜 주었던 게 드리스였을 수 있다. 드리스 또한 무일푼 백수 인생 속에서 부유한 생활을 접하며 가난의 갈증을 해소시켜 주던 필립이 자신의 needs를 충족시켜 주는 존재였을 것이다.
윤재와 곤이 또한 마찬가지이다. 윤재에게 곤이는 감정을 가르쳐 주며 자신을 발전시켜 주는 존재였으며, 곤이에게 윤재 또한 어두운 상처를 안고 아무렇게나 살아가던 자신의 곁에 끝까지 있어주는 고마운 존재였을 것이다.
다른 성향을 가진 사람들이 친해진다는 것은 이와 같이 상대방이 각자의 needs를 충족시켜 주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3. 나와 다름을 수용하고 인정하는 것
최근 ‘머니 게임’ 이라는 서바이벌 컨텐츠가 큰 이슈가 되고 있다.
돈을 벌기 위해 서로 간의 이간질 등 사람들 간에 다양한 갈등이 있었고, 아직까지도 서바이벌 당시의 에피소드들에 대해 서로 언쟁을 하며 기싸움을 벌이는 중이다. 각자의 억울함이 있겠으나, 결국 나와 다름을 수용하지 못 하고 나와 생각이 안 맞으면 화부터 내는 것이 문제의 시작이자 끝이라고 생각한다.
사람들의 본성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그저 다른 사람들의 피드백을 수용하며 바뀌려고 노력할 뿐이다. 결국 우리는 다른 사람들을 나에게, 혹은 나를 다른 사람들의 퍼즐에 끼워 맞추려는 대신에 나와 다른 사람들이 다름을 인정하고 수용하려는 마음가짐이 필요하다.
현대 사회에 사는 사람들은 모두 바쁘다. 어쩌면 작가는 바쁜 일상에 파묻혀 다른 사람의 희로애락을 공감해 주지 못 하는 우리의 모습을 비판하기 위해 윤재라는 인물에 투영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는 사회 속에 산재되어 있는 주변인들의 어려움에 대해 불감증을 앓지 않도록 항상 깨어 있고자 노력하는 한편, 내가 타인과 다름을 지각하며 타인의 감정을 이해하여 언행을 실수하지 않도록 조심해야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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