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 소중한 사람 - 정한경 지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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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소중함들을 그 모습 그대로 간직하고 싶습니다.
내 마음속 가장 단단한 곳에 새기고 싶습니다.” – 본문 中
에세이(Assay). 한국말로는 ‘수필’이라고 잘 알려진 장르는 내가 가장 즐겨찾고, 사랑하고, 몰입하기 좋아하는 문학의 장르이다. 살아가면서 느끼는 수많은 감정들은 어딘가에 붙잡아두지 않으면 곧 주먹 안의 물줄기처럼 흩어져버린다. 사람의 기억이라는 것이 그렇기에. 그러나 마음 시리는 글을 쓰기에는 역시 사람의 기억과 경험 만한 소재가 없다. 이렇게 억지로 흘러가려는 물을 붙잡는 작업은 그래서, 고될 수 밖에 없지만 아름답다. 그 소재가 해맑은 것이든, 아니면 우울함과 암울함에 점철되어 있든, 그 결과물은 그 자체로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무언가가 있다.
비록 아직 인생에 대해 왈가왈부할 ‘짬’은 되지 않지만, 짧은 발자취 중에 가장 힘들고 암울했던 학부 시절 생긴 습관이 하나 있다. 그것은 하루하루, 그 때 느꼈던 감정을 어딘가에 기록해 놓는 것이다. 지금 내 컴퓨터의 어느 폴더에는 그러한 감정의 일기장들이 쌓여 있다. 컴퓨터 바탕화면에 ‘휴지통’이 있다면, 내 컴퓨터에는 ‘감정의 휴지통’이 있다고 표현할 수 있으려나.
한 편으로 이 폴더는 내게 있어서 어찌 보면 ‘판도라의 상자’ 같은 존재이다. 언제 과외 학생이 그만둘 지 모른다는, 학원 수업이 폐강될 지 모른다는, 다음 학기 생활비 걱정에 대한 단상. 밥 먹는 시간까지 쪼개어서 노력을 퍼부은 것이 무색할 정도로 나보다 한참 앞서가는 친구와 후배들을 보며 느꼈던 절망감과 아득한 거리감. 반면 지금은 학부 시절에는 겪어보지 못한 중압감과 책임감, 그리고 새로운 것을 접하는 것의 두려움과 하루하루 싸우고 있다고 해도, 적어도 어느 정도는 안정된 생활을 영위할 수 있다는 점은 큰 위안이다.
“자신을 마주하는 일은 두렵다. 다른 사람과의 비교로 수차례 무너져야만 하고, 부족해 보이는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며 끊임없이 서러워야 하고, 또다시 자신을 미워하고, 한 번 더 용기를 내보고. 그럼에도 도무지 사랑스러워지지 않는 자신의 모습 앞에서 또다시 좌절하고. 그렇게 스스로를 가둔다. 한심하다. 이러고 있는 내가 싫다.” – 본문 中
정말이지, 이 에세이의 나오는 수많은 구절 중 가장 와닿은 말이다. 이 구절은 학부 내내 달고 살았던 내 감정을 단 4줄 만에 완벽히 요약해내고 있었다. 나를 마주하는 일이 어려웠고, 어느 새 나는 미래를 두려워하고 있었다. 내일이 오는 것이 무덤덤해지는 정도가 아니라, 아예 무서워하고 있었다. 시험을 잘 보지 못하면, 학점을 잘 챙기지 못하면 졸업 후의 내 인생까지 암울해질 것 같다는 막연한 두려움이 있었다. 나는 왜 다른 친구들처럼 즐거운 나날을 보내지 못하는 걸까, 하는 상대적 박탈감이 있었다. 나를 미워하는 것에, 좌절하는 것에 익숙한 나날이었다. 그러한 나날 속에 점철된 일기장을 하나하나 펼쳐보는 것은 사실, 지금에 와서도 그리 유쾌하지 않은 일이다. 술이라도 한 잔 걸친 날이면, 술기운에 몇 개를 펼쳐보고는 그냥 shift+delete (휴지통을 거치지 않고 파일을 삭제하는 단축키)를 눌러버리고 싶다는 생각을 떨치기 어려울 때도 많다. 다행히 아직까지는 그대로 있다. 마치 학교 옆 어은동 “커피볶는집” 커피숍이, 다녀간 학생들이 몇 년간 남긴 포스트잇 기록들을 아직도 보존해놓고 있듯이 말이다.
“너는 네가 생각하는 것보다 훨씬 강한 사람이다.” “하느님은 감당할 수 있는 시련만 허락하시는 분이다.” 나를 걱정해주었던, 많은 좋은 이들에게 들었던, 그리고 버팀목이 되었던 말들이다. 오늘의 내가 어떤 감정을 느끼든, 그것과 관계없이 우리는 또다시 내일을 살아가야만 한다. 또다시, 지금은 볼 수 없는 걸음을 결국은 내딛어야 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우리가 지금껏 걸어온 길 또한 과거의 나 자신이 걱정했던 수많은 내일이었다는 사실을 생각해본다. 그리고 그 걱정들은, 막상 닥치고 보면 생각보다는 그리 힘겹지는 않았던 날이 더 많았던 것 같다. 걱정은 흔들의자와 같아서, 나를 끊임없이 흔들고 움직이지만 그것이 나를 어딘가 데려다주지 않는다. 오히려 우리를 내일로, 어찌되었던 더 나은 미래로 데려다주는 것은, 지금 버티고 있는 이 순간들이다.
과거보다 조금은 나은 삶을 살게된 지금, 이 에세이 작가의 말을 빌리자면, 내가 맞이하는 모든 순간을 행복으로 가득 채워, 떳떳한 내 일부로 만드는 연습을 해 보아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된다.
“어디를 향하고 있든, 어디에 머무르고 있든,
살아 낸다면, 아무 의미 없는 오늘은 없다.” – 본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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