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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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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용준
댓글 0건 조회 5,476회 작성일 21-04-30 15: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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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지

박경리 저




    가끔 라디오나 TV에서 오래된 명작들의 제목을 들으면 왠지 가슴이 설렌다. 어릴 땐 등 떠밀려 보게 됐던 영화이거나, 청소년 필독 도서 목록에 올라 마지못해 읽어나갔던 책들이 지금의 내게 어떤 형태로 스며들까 하는 기분 좋은 설렘일 거다. 얼마 전엔 자주 듣던 라디오 채널을 운동하면서 듣고 있었다. 익숙한 목소리의 DJ는 영화 평론가와 함께 고전 명작 영화들을 소개했다. 육체적인 에너지 소모로 가빴던 숨은 정신적인 설렘에 더 가빠오기 시작했고, 바로 옆 벤치에 앉아 그들의 목소리에 조금 더 집중해보기로 했다. 스마트폰 펜을 꺼내 들어 소개되는 영화의 제목들을 노트에 하나씩 적어 내려갔다. 그러자 불현듯 예전에 내가 꼭 읽어보고 싶은 책들을 정리해놓은 파일이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클라우드 서비스가 지금처럼 활성화되지 않았던 시절, 20대 초반의 나는 미래의 나에게 필독 도서 목록을 나에게 쓰는 메일로 보냈었다. 작은 글씨로 빼곡히 적힌 그 목록의 가장 첫 번째 책은 바로 박경리의 토지였다. 예전의 내가 미워 지려 했다.

 

    전집을 구매할까, 몇 권만 구매해서 먼저 읽어볼까 하던 중 전자책 구독 서비스 플랫폼에 토지 전권이 업로드되었다. 모든 책은 자기가 읽어야 할 필요가 있는 때에 맞춰 우연히, 그러나 필연적으로 찾아오는 것 같다. 결국 그 책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할 때가 내게 그 책이 가장 긴요한 때가 되는 듯하다. 토지는 읽는 내내 쓰라릴 만큼 적나라한 당대의 삼라만상들이 너무나도 자세하게 눈 앞에 펼쳐진다. 저자의 세세한 장면 묘사는 집중력을 높여줌과 동시에 마음 한 곳이 칼에 베인 듯 아리게 한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정신적 충격 요법은 숫자와 지식 갈구에 길들어 삭막해져 가는 내 정신세계를 적셔 줄 소나기와 같았다. 박경리의 대하소설 토지는 1969년부터 1994년 사이, 즉 저자 나이 마흔셋에 시작해서 예순여덟 살에 이르러서야 비로소 완간된 작품이다. 25년간의 세월은 우리 인생에 있어 절대 짧지 않은 시간이다. 그동안 박경리의 사유 세계는 끊임없이 확장되고 다듬어졌을 것이다. 그녀가 가진 사고의 세계가 오롯이 녹아있는 토지를 더 늦지 않고 접하게 된 것은 어찌 보면 참 귀한 행운이다. 봉건적인 가족제도와 계급의 해체, 서구 문물의 수용과 식민지 지배과정, 민족이동의 역사를 모두 직접 겪으며 별러졌을 그녀의 사유 세계는 그 자체로도 가히 예술적이라 할 수 있다. 하물며 그녀가 25년간 밤낮으로 벼룬 문학 작품이야 더 말할 필요가 있을까.

 

    저자는 한국을 지적으로 보는 것과 동시에 감성적으로 보고 그 시각적 결과를 작품에 유려히 녹여냈다. ‘삽삽한 한산 세모시 같은 비애‘, ’오래 묵은 한지 같은 저녁 빛깔‘, ’빨강 댕기가 할랑할랑하듯 그네를" 등 두 말의 미사여구보다는 한 말의 날것 그대로를 사용하는 표현법으로 토지를 형상화했다. 동시에 그녀는 제 생각과 느낌을 묘사해 내는 문체가 참으로 다양했다. 여릴 때는 여렸지만, 휘갈길 때는 휘갈겼으며, 서러울 때는 서럽게, 차가울 때는 차갑게 감성과 지성과 이성의 선을 이리저리 유연히도 오갔다. 많은 사람은 그녀에게서 한국적 저자의 참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고 했다. 아마 그것은 그녀의 문체가 한국적 영혼을 일깨워주었기 때문이 아닐까. 이와 유사하게 박경리는 일본 문화와 우리의 문화를 명료하게 대비시켜 보여줌으로써 한국미의 정수를 독자들에게 확연히 심어주고자 한 듯하다. 저자는 일본 문화를 일러 진실이 존재하지 않는 감상과 칼로써 황폐해진 정신으로는 그 어떤 것도 창조할 수 없는 반자연적인 문화라 했다. 그에 반해 우리 문화는 인간과 자연과 신비와 우주적인 것이 어우러진 높은 아름다움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일본은 딱정벌레로, 조선은 나비와 학으로 표현한 박경리의 문장을 따라가노라면 범인으로서는 가늠할 수 없는 저자의 통찰력과 표현력이 경이롭기까지 하다.


    한 사람이 세상에 태어나 할 수 있는 일의 범위는 제각각일 것이다. 누군가가 세계사의 한 획을 그을 만한 업적을 남길 때 또 다른 누군가는 집 앞 텃밭을 가꾸다 생을 마감할 수도 있다. 그러나 우주적인 관점에서 그 둘은 똑같이 중요하다. 아니, 그 둘 다 자기 삶의 주인공이다. 토지는 양에서만 방대한 것이 아니라 세계관의 넓이와 깊이에서 모두 큰 소설이었다. 한마디로 토지는 우주를 닮은 소설이라 할 수 있다. 토지에서는 주인공이 따로 있지 않다. 모두가 주인공이다. 최참판댁 상속녀 서희와 그의 남편 길상이 이야기를 이끌어가는 중심인물이기는 하지만 결코 소설이 그 두 사람에게만 집중되지는 않는다. 용이, 월선과 같은 주변 인물들은 물론 조준구와 조용하와 같이 비정한 인물들마저 저자는 애정의 흔적을 남겼다. 그만큼 인간 박경리의 정서가 순수하고 맑으면서 따뜻하다는 것을 느낄 수 있다. 우리나라의 근대화와 함께 인간 본상을 근간으로 하는 추상적인 사랑의 형태가 큰 줄기로 흐르고 있음 또한 느낄 수 있었다.

 

내가 행복했다면 문학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문학은 불행의 편이고, 문학은 끊임없는 단련에서 나온다.

그러나 그 불행을 일부러 자초할 필요는 없다.

 

    25년이라는 긴 시간 동안 시대적, 정신적 고통과 암이라는 육체적 고통을 온전히 끌어안으며 토지를 연재했던, 또 그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는 저자의 문학자적 예술가적 운명을 어렴풋이나마 떠올려본다. 그녀조차 문학보다는 삶이 우선이라고 말했듯이, 사람의 인생과 생명에 대한 연민을 저자는 토지를 통해 독자들에게 전달하고 싶었던 게 아닐까. 대하소설답게 아직 몇 권 읽진 못했지만, 독특한 문체와 아름다운 표현들이 이끌어가는 마치 오랫동안 알고 지내던 사이가 되어버린 등장인물들이 그리워서라도 이번 기회에 전집 완독을 하게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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