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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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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형진
댓글 0건 조회 6,009회 작성일 21-05-02 23: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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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

현대 우리 사회는 사회를 이끌어 나가고 사람들 사이에서 입김이 강한사람과 그 강자가 만든 사회의 질서를 살아가고 있는 약자가 공존하며 살아간다. 그 부류를 완벽하게 나누기는 힘들지만 나눈다면 그 사이에서 나는 강자에 속할까? 약자에 속할까? 현재의 내 모습은 전자보다는 후자에 해당한다. 하지만 대부분의 약자들이 강자가 되는 미래를 꿈꾸듯이 나 또한 더 나은 미래, 꿈을 꾸며 현재를 열심히 살아가고 있다. 이 소설은 실낱 같은 희망을 품고 비극의 행복동에서 살아가는 소시민계층과 보일 듯 말듯한 희망조차 빼앗아 가는 가진 자와의 대립을 통해 70년대의 현실을 생생하게 묘사한다. 작가는 70년대 사회의 부정적 측면들을 적나라하게 폭로한다. 여기서 주인공 가족은 난쟁이인 아버지와 어머니 영수 영호 영희 이다. 1, 2, 3부가 각각 영수, 영호, 영희의 시점에서 다른 ‘나’로 묘사되는 점이 색다르며, 이를 통해 각 상황 별 개인의 입장과 내면을 좀더 자세히 들여다 볼 수 있었다.

1부는 영수가 서술자이고, 철거 통지서를 받으며 가족들의 생활상이 3가지 시간대가 교차되며 나타나고 있다. 2부는 영호가 서술자이며, 영희의 가출을 타인의 시선에서 바라본다. 입주권을 투기업자에게 팔고, 집이 철거된다. 3부는 영희가 서술자이며, 투기업자에게 순결을 빼앗긴다. 그를 마취시키고 금고에서 돈과 입주권을 들고 나와 집을 찾아오지만 아버지의 죽음을 확인하고 사회를 향해 절규한다.

마지막 외침은 영희가 더 이상 난장이로 남지 않겠다는 다짐이지만 독자에게는 무언가 해낼 수 있어 보이는 상황이 아님을 잘 느껴진다. 이러한 개인의 무기력함은 우리 70년대 노동환경과 그를 이루는 사회의 구조적 모순들이 어떻게 구성되어 있는지 잘 보여준다. 생존에 필요한 최저 수준에도 미치지 못하는 적은 임금과 열악한 작업환경, 고용자가 강요하는 부당하고 과한 노동 등 사회의 잘못된 점을 잘 보여주고 있다. 작품에서 그려지는 악당은 단순 몇 명의 사람이 아닌 산업화가 진행되면서 가진자들의 잔인함과 그것을 방관하는 사회일 것이다. 정말 보호 받아야할 사람들이 법의 제재를 받고 이주 당하고 보금자리를 빼앗기는 것처럼 말이다.

1970년대를 살아보지 않는 나로서는 소설의 배경인 시점을 잘 모르지만 책을 통해 보거나 학교에서 배운 지식이나 인터넷에서 알게 된 정보를 바탕으로 생각해보면 현재보다는 훨씬 더 낙후된 환경이었을 것이다. 2021년 지금의 우리나라는 전과 다르게 세계에서 대한민국을 모르는 사람이 많이 없을 정도로 발전되었다. 전반적으로 전보다는 훨씬 더 살기 좋은 환경이 형성되었지만 여전히 판자촌 같은 곳이 존재하고 기초생활 수준을 누리지 못하는 많은 사람들도 있고 하루 벌어 하루 먹고 사는 사람들도 있다. 1970년대와 마찬가지로 빈부격차가 크고 사회적 약자와 강자의 차이가 큰 느낌이다.

이전에는 “개천에서 용난다”라는 말을 듣고 가능한 이야기라 생각을 했다. 그래서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나는 용이 되기 위해 공부도 하고 운동도 해보고 재능을 찾아보았다. 하지만 남들과 비교해 특별한 능력이 없는 나로서는 공부가 최선이라 생각하게 되었고 이후로는 군말없이 공부만 해왔다. 다행이 공부에는 어느정도 재능이 있어서 지금까지 오게 되었다. 현재의 나는 용이 되었을까? 용은 아니어도 뱀(?)정도는 된 것 같다. 하지만 내가 정말 흙수저를 물고 태어난 상태에서 여기까지 오게 되었을까? 아니면 실제로는 흙수저가 아닌 보통수저 정도로 태어난 것은 아닐까? 현재에서 되돌아보면 나는 흙수저는 확실히 아니지만 금수저는 더욱 아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이전에는 왜 흙수저라 생각했을까? 이유는 더욱 더 확실해진 빈부격차 때문인 것 같다.

우리의 주변에는 여전히 사회적 약자가 매우 많다. 대표적으로는 기업의 이익을 위해 고용되는 비정규직이 있을 것이다. 비정규직은 회사에서 기본적인 근무시간이나 환경, 근무에 맞는 대우를 받은 경우가 많이 없다. 하지만 사회적 인식은 공부를 하지 않았기 때문에 비정규직이 되었고 그에 걸맞은 결과이기에 받아들여야 한다는 인식도 존재한다. 심지어 비정규직 관련된 이슈를 정치적으로 이용한다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러한 관점에서 보았을 때 작품이 쓰여진 70년대와 비교해 현재에도 여전히 비슷한 문제점이 존재하고 이러한 이유로 인해 여전히 이 작품이 여러 사람들에게 읽히고 공감을 얻고 있다 생각한다.

우리나라에서 생기는 노동자들이나 사회적 약자편의 법이 개정되거나 새로운 법안이 통과할 때를 보면 큰 사건이 발생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하지만 법의 면면을 제대로 살펴보면 너무나 쉽게 빠져나갈 수 있거나 처벌의 수위가 낮은 경우도 많이 찾아볼 수 있다. 반면에 국민들은 법이 개정되거나 통과되었다는 소식만 듣고 수긍을 하고 기억에서 서서히 사라진다. 하지만 이전과 다르게 대중들이 큰 사건을 통해서라도 사회에 관심을 가지게 되었고 그 결과로 작게나마 사회가 변화해 간다고 생각한다. 현재 우리 사회에 존재하는 모순과 위선이 빠르게 사라지기는 힘들 것이다. 강자들은 더욱더 교묘하게 그들을 위한 법과 제도를 소리소문없이 만들 수도 있다. 따라서 우리가 사회적 약자의 삶에 좀더 관심을 기울이고 사회적 모순에 대해 생각한다면 점차 나이지는 방향으로 진보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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