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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홍균, <자존감 수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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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재중
댓글 0건 조회 5,753회 작성일 21-05-03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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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학 약품을 다루는 대학원생이라면 반드시 받아야 하는 특수건강검진을 받을 때의 일이다. 치과의사가 뜬금없이 물었다. “자신에게 화가 나거나 스트레스를 받는 일이 잦나봐요?” 치아 상태를 검사하다가 뜬금없이 이게 무슨 소리인지 몰라서 어리둥절하던 차에 의사가 말하길, 자기가 검진을 올 때마다 보는, KAIST 학생들의 특징이 있다고 한다. 대부분의 학생들이 어금니 쪽 잇몸이 부어올라 있다고. 이는 평상시나, 특히 수면을 취하면서 무의식 중에 이를 세게 악무는 일이 잦기 때문이라고 한다. 어렸을 때부터 경쟁에서 나름대로 ‘상류층’에 있는 친구들끼리 한 곳에 모아 놓았으니, 그 속에서 자신이 밀리는 걸 받아들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리라.


씁쓸하게도 비교가 일상인 현대 사회는 특히, 자기 자신을 사랑해주기 힘든 세상인 것 같다. ‘엄친아’, ‘엄친딸’이라는 용어가 생겨난 것도 사실, 어렸을 때부터 남과 비교당하는 것이 그만큼 만연하고 있는 세상이라는 의미도 될 것이다. 통신 기술, 특히 SNS의 발달은 도리어 SNS에서 행복의 탈을 쓴 사람들 속에서 사람들에게 상대적 박탈감을 주는 부작용을 낳고 있다. 소위 ‘한강뷰’라고 하는 풍경이 보이는 집에서 사는 사람들. 몇 대의 외제차 앞에서 인증샷을 남기는 사람들. 맛있는 음식. 해외 여행. 오후에 한가롭게 책을 읽는 삶. 그런 사람들을 우선적으로 대중에 자주 노출하는 알고리즘인 SNS를 보면 나 빼고 모든 사람들이 다 행복해 보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17세기 증기기관의 발명이 그 신호탄을 쏘아 올렸던 산업혁명은 물질적 풍요를 가져다 주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그만큼 우울증을 앓는 사람도 증가했다는 통계는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다.

 

<자존감 수업>의 저자인 윤홍균 박사 역시 그런 사람이었다. 도서관에서 심리와 과학이 절묘하게 결합된 글을 우연히 접하고는 그 책의 저자처럼 ‘글쓰는 정신과 의사’가 되고 싶다는 꿈을 안고 의과대학에 진학하였지만, 의과대학에서 뛰어난 동기들에 매번 좌절감을 맛보았다. 매번 다른 의사들은 돈도 잘 벌고, 논문도 잘 쓰고, 주말마다 가족과 여행도 잘 가는데 왜 자신은 집도 없고, 글도 안 써지고, 고단한 하루만 계속되는지 암담할 때가 많았다고. 그러나 그걸 군대에 가 있거나 고시촌에 있는 다른 친구들 앞에서 말할 수는 없었기에 속으로 삼키는 것으로 버텼다고 한다. 자신을 사랑하지 못하는 것이 얼마나 외로운 감정인지도 그때 뼈저리게 느꼈다고.


나를 포함하여 수많은 사람들은 자신의 존재 가치를 바깥에서 찾곤 한다. 학부 시절, 언젠가 친하게 지내던 후배가 그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선배는, 자신의 가치를 너무 일이나 능력에 매몰되어 있어요.”라고 했던가. 사실 그건 지금도 다르지 않다. 내가 잘한다는 것을, 내가 지금 속한 집단에서, 이 사회에서 대체 불가한 사람이라는 것을 다른 사람이 인지해야만 그래도 편하게 지낼 수 있을 것 같다. 물론 부끄럽게도, 지금까지 그것을 이뤘던 적은 없지만. 앞으로도 그럴 날이 올지도 미지수이기도 하고.


“네 아들에게는 절대 강요하지 않을 인생, 너한테는 왜 강요해.

너부터 행복해라 제발. 희생이라는 단어는 집어 치우고.”

“뻔뻔하게 너만 생각해. 그래도 돼.”

드라마 <나의 아저씨> 11화 中


“나를 생각한다”와 “남을 생각한다”는 사실 그 사이에서 줄타기하기가 까다로운 주제다. 너무 자기만 생각하는 것은 ‘이기주의’에 가깝고, ‘남을 생각한다’에 천착하면 작게는 ‘오지랖 넓은 사람’이 되거나, 심하게는 아무도 알아주지 않은 채 이용만 당하다 살기 딱 좋은 신세가 되기 십상이다. 책에서 저자는 말한다. 인간은, 원래 이기적인 사실을 받아들일 필요가 있다고. 봉사를 하더라도, 자기가 남에게 봉사하는 것에 행복을 느낄 수 있어야 하고, 결국 자신을 위한 일이 되어야 한다고 말한다. 그래야 비로소 남을 조건없이 사랑할 수 있고, 진심으로 타인을 위할 수도 있기 때문이라고. 자신이 봉사하는 사람을 존경하는 이유는, 그 사람들은 마음 깊은 곳에 있는 ‘남을 돕는 즐거움’을 아는 사람, 진정한 내면의 기쁨을 누리는 사람이기 때문이라고. 소위 이기적인 이타 행동이 필요하다고 말한다.


결국 행복은 바깥에서 찾는 것이 아니다. 내면의 기쁨을 찾는 훈련을 하고, 그것을 깨달아야만 비로소 세상 풍파를 맞아도 흔들리지 않는 사람이 될 수 있다. 그것이 힘든 사회이지만, 남과 비교하고, 경쟁하고, 우위에 서야 함을 강요하는 사회이지만, 그래도 오늘부터라도 이기적 이타주의를 실천해보려 한다. 그리고 오늘, 나는 이번 주도 무사히 보냈다는 사실 하나만으로 나를 칭찬해 주었다. 남들도 다 하는 출근, 심지어 눈 감고 있어도 지나가는 하루하루를 보낸 게 뭐가 대단하겠냐만, 알게 뭔가.

 

“그 행동을 먼저 하면 된다. 뇌는 원인과 결과를 혼동해서 당신의 행동을 따라간다. 

하다 보면 점점 쉬워진다. 익숙해진다.” – 본문 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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