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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듦의 즐거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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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성호
댓글 0건 조회 5,756회 작성일 21-05-31 23: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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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듦의 즐거움

김경집


이제는 남은 여정이 그리 많지 않다는 새로운 불안으로 조바심이 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이제야말로 품었던 꿈들은 하나씩 꺼내 조각 그림들을 맞출 수 있는 나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그 길 떠나기 전 차분하게 지나온 여정을 되짚어 보는 여유를 가질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 <나이듦의 즐거움> 중에서 - 


티비 프로그램 '놀면 뭐 하니' 중 유재석이 무한도전 멤버였던 박명수와 정준하를 만나는 장면이 있었습니다. 30대 젊은 나이에 방송가를 휘어잡던 그들은 어느덧 50대 중년이 되어있었고, 혹한의 상황에서도 몸을 아끼지 않던 멤버들은 뱃살이 나온 아저씨가 돼버렸습니다. 그들이 무한도전을 회상하며 떠올리는 추억들은 저의 어린 시절의 한 장면을 담당했기에, 멤버들의 눈가가 촉촉해질 때마다 나의 눈시울도 뜨거워짐을 느꼈습니다. 모든 인간을 평등하게 만드는 것은 돈도 힘도 명예도 아닌 시간이라고 합니다. 우리는 모두 시간의 흐름을 따라 살아가고, 성장하고, 늙어가고, 죽음을 맞이합니다. 아무리 잘생기고 돈 많고 유명한 연예인들이라 할지라도, 세월에 흐름을 피하지 못하고 평범한 우리와 함께 늙어감을 볼 때, 저는 시간의 강력한 지배력 앞에 한없이 작아짐을 느낍니다.


하지만 화면 속에 보이는 유재석도, 박명수도, 정준하도 절대 슬퍼 보이지는 않았습니다. 지나간 세월은 아쉬울지라도 그들은 자신에게 주어진 시간을 성실히 살아가고 있었습니다. 함께 보냈던 젊음의 시간은 너무도 소중하지만, 그 시간에 머무르지 않고 새로운 것을 향해 각자의 삶을 개척하고 나아가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무한도전을 다시 시작할 필요가 없었습니다. 그들은 주어진 시간에서 살아가고 있기 때문에 머물렀던 자리를 비워둠에 어떠한 미련도 있지 않아 보였습니다. 이들의 모습을 통해 저는 오늘도 주어진 하루에 감사하며 살아야겠다는 생각을 다시금 할 수 있었습니다.


'나이듦의 즐거움'을 쓴 김경집 교수는 책 제목의 의미가 늙어감의 즐거움이 아니라, 제 나이를 살아가는 즐거움이라는 뜻으로 이름을 지었다고 합니다. 김경집 교수는 서강대에서 영문학과 철학을 공부했는데, 25년은 배우고, 25년은 가르치고, 25년은 맘껏 글 쓰고 문화 운동을 하겠다고 마음먹었고, 그 뜻대로 교수직을 내려놓고 현재 글쓰기 작업에 집중하고 있다고 합니다. 어찌 보면 김경집 교수의 삶이야말로 그가 집필한 '나이듦의 즐거움'의 의미대로 살아가는 표본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작년부터 저희 부모님께서는 올해 6월 중순에 한국에 오시겠다는 이야기를 해오셨습니다. 코로나로 인해 방한 일정이 미뤄지면서 우리 가족은 3년이 걸려서야 다시 얼굴을 볼 수 있는 기회를 얻게 되었습니다. 선교사로 살고 계시는 저희 부모님께서는 2~3년에 한 번씩 가족들과 후원자들을 보기 위해 한국에 방문하십니다. 선교지의 삶이 힘겹고 고단해서인지, 아니면 부모님도 시간의 흐름을 피하지 못하셔서인지... 부모님께서 한국에 방문하실 때마다 저는 부모님의 얼굴에 세월의 나이테가 새겨지는 것을 봅니다. 검고 곱슬곱슬했던 어머니의 머리칼이 점점 희고 부드러워져 가고, 멋있는 눈웃음을 가지셨던 아버지의 눈가에 잔주름이 늘어날 때마다 마음 한구석이 아리고 죄송한 마음이 듭니다.


하지만 부모님과 전화로 이야기를 할 때마다 부모님의 선교지에서의 일상이 즐거움으로 가득함을 느낍니다. 그들은 배움에 집중했던 20대와 인생을 경험한 30대를 넘어, 선교의 기초를 닦은 40대를 지나 드디어 열매가 맺히는 50대를 살고 있습니다. 자신이 배우고 경험했던 모든 지혜와 노하우를 동원하여 사역을 멋지게 감당하고 계시고, 선교지에서 수많은 학생의 사역의 열매로 나오고 있습니다. 부모님께서는 인생의 주어진 시간대에서 헌신하시고 집중하셨기 때문에, 그간의 노력과 희생이 모여 오늘의 결과를 만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이제는 나이가 들고 중년의 시기를 넘어 노년의 시기에 다가서고 계시지만, 아버지 어머니께서는 나이듦의 즐거움을 누리고 계시는 것 같습니다.


아직 인생의 아침을 사는 제가 인생의 노을을 바라보는 작가가 쓴 책을 읽으면서, 나에게 주어진 지금을 다른 눈으로 바라볼 수 있었습니다. 12년의 정규 교육과 9년의 대학 생활에도 공부의 길을 끝이 없어 보이고, 연구하고 실험하는 노력이 작은 성과로밖에 보이지 않는 지금. 20대의 시기에 인생의 결과를 내고자 하는 것은 욕심이 아닌가 생각이 듭니다. 공자는 30살을 인생의 모든 기초를 세우는 나이라는 뜻에서 이립(而立)이라고 불렀습니다. 저는 지금 인생의 기초를 세우는 시기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연구든 경제든 인간관계든 신앙이든, 지금은 배우기를 그치지 않고 기초를 세울 때입니다. 그래서 20대의 나이에 주식이나 부동산, 사업으로 큰돈을 버는 사람들을 봐도 굳이 배가 아플 필요가 없는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지금 제가 뿌리는 씨앗은 비가 오고 해가 지나면 나무로 자라 열매를 맺을 때가 반드시 올 것이기 때문입니다. 나이가 들어가면서 열매를 하나씩 따는 삶, 그런 삶이야말로 나이듦의 즐거움을 누리는 삶이 아닐까 생각하며, 그런 삶을 위해 오늘도 씨앗을 뿌리고자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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