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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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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형진
댓글 0건 조회 5,204회 작성일 21-02-22 1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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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물농장


 현재 전 세계에 극단적 전체주의를 띄고 있는 나라는 거의 존재하지 않는다. 하지만 조지 오웰이 동물농장을 발표할 1945년은 제2차 세계대전이 끝난 직후이기 때문에 주변에는 여전히 전체주의를 띄는 나라가 존재했다. 작가는 1917년 러시아 혁명부터 제2차 세계대전의 종전을 앞둔 시점까지의 구소련의 정치체제를 비판하기 위해 작품을 썼다.


 작품은 존스라는 인간이 경영하는 농장에서 시작한다. 메이저라는 나이 많은 돼지는 인간이 없는 동물들만의 농장을 꿈꾸며 자신의 꿈을 다른 동물들에게 알려준다. 메이저는 인간은 전혀 생산적인 활동을 하지 않으면서 동물을 착취하여 자신의 배를 불리고 있으며, 그들을 몰아내면 동물들만의 평등하고 평화로운 세상이 올 것이라 주장한다. 그는 ‘영국의 짐승들’이라는 노래를 만들어 알려주고 동물의 단결과 인간에 적대감을 끌어올린다. 얼마 후 메이저는 죽고 스노볼, 나폴레옹이라는 돼지들이 메이저의 사상을 이어받아 ‘동물주의’라는 사상을 다른 동물들에게 전파하고 농장주 존스를 쫓아낸다. 동물들은 인간의 흔적을 없애고 농장의 이름을 동물농장으로 바꾸고 7가지의 계명을 만든다. 스노볼과 나폴레옹이 지도자가 되고 동물들만의 농장을 꾸려나간다. 하지만 동물들은 자신의 능력대로 노동을 하고 식량을 배급받으며 살아가는데, 돼지들은 각종 결의안을 만들어 농장을 조직화하며 특권계급이 되어가고 육체노동에서 열외하면서 자신들은 농장을 이끌기 위해 더 어려운 정신노동을 한다고 둘러댄다.


 한편 동물들에 의해 쫓겨난 존스는 사람들을 모아 농장을 되찾으러 쳐들어오지만 동물들은 그들을 물리친다. 동물들은 이를 ‘외양간 전투’라 하고 공을 세운 동물들에게 훈장을 수여한다. 그런데 점차 실세인 두 돼지 스노볼과 나폴레옹은 서로를 견제하며 점점 사이가 벌어지는데, 지혜로운 스노볼과 책략가인 나폴레옹을 따라 동물들도 두 패로 갈라져 버리고 만다. 스노볼은 농장의 자급자족을 위해 풍차를 짓자고 말하지만, 나폴레옹은 스노볼의 의견에 반대하고 몰래 길러온 개들을 풀어 스노볼을 공격해 농장에서 영원히 추방시켜 버린다. 정권을 잡은 나폴레옹은 원래 풍차 계획은 자기 것이었다며 동물들을 속여 풍차를 짓는 작업에 들어간다. 풍차를 짓고 식량생산을 위한 노동을 하면서 동물들의 노동강도는 갈수록 심해지고 나폴레옹은 훈련시킨 9마리의 개들의 호위를 받으며 독재를 한다. 또한 독재를 하는 나폴레옹을 포함한 돼지들은 금지되었던 행동을 하면서 그때마다 동물 7계명을 바꿔서 동물들의 이의 제기 기회를 박탈했다.


 그러던 어느 날 바람에 의해 건설 중이던 풍차가 부서지고 동물들은 좌절하는데 나폴레옹은 이것이 스노볼의 소행이라며 그들의 분노를 밖으로 돌리고, 다시 풍차를 건설하기 시작한다. 그래서 농장의 식량 생산이 감소하여 동물들은 굶주리기 시작하고 나폴레옹은 여전히 스노볼의 탓을 하면서 공포정치를 한다. 개들을 이용해 자신에게 반대하거나 불만을 품은 동물들을 물어 죽이고 오랫동안 동물들이 제창해온 영국의 동물들을 금지시키고 자신을 찬양하는 새 노래를 만들어 유포한다.

 

 몇 년이 지나고 동물농장의 나폴레옹의 독재는 계속되고 있었는데, 충격적이게도 어느 날 돼지들이 두발로 서서 다니기 시작한다. 그것은 ‘네 다리는 좋고 두 다리는 나쁘다’라는 동물농장의 원칙에 반하는 것이었지만, 돼지들은 그 원칙마저 맘대로 바꿔버린다. 얼마 후, 근처 인간 농장주들이 동물농장에 찾아오고 그들은 돼지들과 파티를 벌이는데 이를 엿보는 동물들의 눈에는 돼지들과 인간이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비슷해 보인다. 결국 평등사회를 꿈꾸던 동물들의 꿈은 사라진 것이다.


 대부분의 소설은 사람이 주인공인 경우가 대부분이지만 작품에서는 동물을 의인화 시켜서 소설을 이어나간다. 작가가 동물을 의인화 시켜 등장시킨 이유는 무엇일까? 소설을 들여다보면 사람을 등장시켜도 충분히 이야기를 이어나갈 수 있을 것인데 작가가 굳이 동물을 의인화 한 이유를 알기 위해서 작품을 통해 하고자 하는 말을 생각해 보았다. 작가는 구소련의 실체를 말하고 정치체계를 비판하기 위해 이 소설을 쓴 것으로 알려져 있다. 만약 사람을 등장시켜 소설을 썼다면 인물의 개성이나 배경에 몰입하게 되어 인물 자체에 대한 관심이 분산되었을 수도 있지만 동물을 주인공으로 가져와 사건 자체에 집중하게 되는 효과가 있는 것 같다.


 소설은 구소련의 정치체계를 비판하면서도 권력에 대해 말해주고 있다. 동물들은 존스를 몰아내고 자기들만의 농장을 만들어내는 것에 성공한다. 그러나 동물들의 대표 역할을 맡은 돼지들은 시간이 지나면서 특권계급으로 변화되고 나폴레옹을 비롯한 돼지들이 두 발로 서서 다니고, 앞 발에 채찍까지 들고 다니는 장면 그리고 소설의 마지막에 인간을 초청해 파티를 즐기는 돼지들이 인간과 구분되지 않을 정도로 비슷해진 장면을 통해 인간처럼 행동하고 생활하게 된다. 이렇게 된 이유는 돼지들이 권력을 잡은 지 오래되고 자신들이 특별한 존재라고 착각하면서 영구적으로 유지하려 했기 때문일 것이다. 소설에서 동물들이 돼지들에게 계속 권력을 맡길 것이 아니라 여러 동물들이 돌아가며 권력을 맡았다면 인간과 구별이 없어지는 지경까지 이르지는 않았을 것이다. 결국 한 사람이나 한 집단에 너무 오랜 시간 동안 권력을 맡기는 것은 위험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있다.


 만약 내가 책 속의 등장인물이라면 어떻게 행동할까? 스노볼이라면 둘로 나뉜 패거리를 하나로 합칠 수 있을까? 나폴레옹이었다면 권력을 얻었을 때 다른 동물들과 권력을 나눌 수 있을까? 돼지들이었다면 특권을 얻었을 때 쉽게 그것을 포기할 수 있을까? 웬만한 사람들이라면 권력을 독점하고 싶은 본능이 있을 것이고 특권을 누리고 싶을 것이다. 그리고 권력과 특권이 주어졌을 때 쉽게 내려놓을 사람도 별로 없을 것이다. 따라서 특권과 권력을 행사하는 배경에 있는 사람들이 얼마나 주체적으로 행동하느냐가 중요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우리 사회도 권력을 얻은 사람들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면 소설과 같은 현상이 발생할 것이 자명하다. 따라서 사회 구성원들이 특권에 제재를 가하거나 다양한 구성원이 돌아가면서 권력을 얻는다면 더욱 평등하고 살기 좋은 사회가 될 것이라 생각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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