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마 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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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마 제국
미국의 게임회사 아타리는 스페이스 인베이더, 팩맨, 브레이크 아웃 등의 희대의 히트작들을 담은 게임기 ‘아타리 2600’를 내놓으며 1980년대 세계 비디오 게임 시장의 절대자로 등장하였다. 날로 커져가는 비디오 게임 시장에 맞춰 아타리는 사업을 무리하게 확장해갔고, 소비자들의 비평을 무시한 채 다량의 저급한 게임들을 시장에 풀었다. 결국 1983년 희대의 졸작 ‘E.T.’의 실패를 시작으로 소비자들은 아타리를 포함한 북미 게임 시장 전체에 등을 돌렸고, 수많은 기업이 파산하며 북미 게임 산업은 완전히 붕괴되었다. 때마침 발매된 닌텐도의 ‘슈퍼 마리오 브라더스’가 역사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결국 세계 비디오 게임기 시장의 주도권은 미국에서 일본으로 넘어가게 된다. 이 사태가 바로 북미 비디오 게임 시장 붕괴 사건으로 불리는 ‘아타리 쇼크’다.
기업이 한 산업 전체를 독점할 경우, 회사의 이익을 위해 낮은 질의 제품을 높은 가격에 파는 일은 비일비재하다. 그러나 당시 게임 산업은 시장의 규모가 고착화 되어있는 여타 산업과 달리 지속적으로 성장하는 산업이었기 때문에, 독점 기업으로부터 새로운 기업이 시장의 파이를 빼앗아가는 것이 가능하였다. 우리는 아타리 쇼크를 통해 지속 성장하는 시장의 독점자가 제품 개발에 소홀히 한 채 이윤만을 키울 경우 그 주도권을 빼앗길 수 있다는 교훈을 얻을 수 있다. 그리고 현재 온라인 영상 스트리밍의 지배자로 떠오를 넷플릭스는 최근 들어 제2의 아타리 쇼크를 맞이할 수 있다는 경고를 듣고 있다.
코로나 19로 인해 온라인 영상 플랫폼 시장이 커지면서 넷플릭스는 창사 이래 최대의 호황을 맞이하고 있다. 2020년 6월 이후 넷플릭스는 시가총액 2천억 달러의 벽을 돌파하였고, 12월에는 전세계 가입자 수 2억명을 돌파했다. 하지만 최근 들어 경쟁사들이 자체 플랫폼을 런칭하고 컨텐츠를 독점 공개하면서, 넷플릭스가 공급할 수 있는 영상의 수가 급격히 줄고 있다. 물론 넷플릭스도 오리지널 컨텐츠를 제작하고 있지만, 경쟁사들에 비해 컨텐츠 제작 경험도 부족하고, 소비자들에게 각인 되어있는 핵심 IP도 존재하지 않는다. 이러한 상황에서 넷플릭스는 드라마, 다큐멘터리, 영화 등 다양한 형태의 영상물을 최대한 다작하는 전략을 취하였고, 이는 컨텐츠의 질적 하락을 낳고 있다. 그에 대한 좋은 예시가 바로 넷플릭스 오리지널 시리즈작 다큐멘터리 ‘로마 제국’이다.
다큐멘터리 ‘로마 제국’은 로마 제국의 역사를 인물 중심으로 재구성하여 보여주는 시리즈물로, 콤모두스, 카이사르, 칼리굴라까지 총 3 시즌으로 제작되었다. 이 다큐멘터리는 실제로 배우들을 섭외하여 약 반정도의 분량은 배우들이 역사적 내러티브를 연기하는 연극 파트, 나머지 반은 전문가들의 해설 및 각종 일러스트로 역사적 사실을 알려주는 해설 파트로 구성 되어있다. ‘로마 제국’은 한 인물의 일대기를 중심으로 역사적 사건들을 시간 순서대로 설명하기 때문에, 역사적인 사건을 다양한 시점으로 해석하기 보다는 개인의 입장과 시점으로 바라보고 해석한다. 이러한 기법은 역사에 문외한 사람들도 사건을 이해하기 쉽도록 만들어주었고, 해당 인물이 처한 상황에 몰입하여 다큐멘터리를 볼 수 있도록 도와준다. 여기까지는 좋은데…
문제는 다큐멘터리의 만듦새가 너무도 조잡하고 고증적인 측면에서도 오류가 너무도 많다는 점이다. HBO의 ‘ROME’이나 Starz의 ‘스파르타쿠스’와 같이 로마시대를 배경으로 하는 다른 역사물 드라마와 비교하였을 때 ‘로마 제국’은 영상미에서도 전개에서도 형편 없는 모습을 보여준다. 사람이 많이 필요한 장면들은 오래된 로마 시대 영화에서 흐린 화질의 영상을 따와서 삽입하고, 시즌 1에서 사용했던 장면을 2에서 그대로 사용하는 일도 비일비재 하였다. 또 전개를 급하게 진행하느라 중요한 장면은 대충 넘어가면서, 전개상 굳이 필요도 없는 유혈이 낭자한 장면이나 베드씬을 억지로 삽입하기도 한다. 상황이 이렇다 보니 ‘로마 제국’을 보는 시청자들은 이게 역사적 정보를 전달하는 다큐멘터리인지, 시청자의 시청각을 만족시키는 픽션 드라마인지 헷갈리는 지경에까지 이른다.
고증의 단계로 넘어가면 문제는 더욱 심각해진다. 시즌 2에서 카이사르는 로마에서 성공하기 위해 줄곧 군대에서만 경력으로 쌓은 것으로 나오는데 이는 엄청난 역사 왜곡이다. 애초에 카이사르의 경력은 이보다 훨씬 파란만장했다. (어린 나이에 최고신의 사제로 지명되었다가 해임을 당하고, 군 복무 중 명예로운 시민관을 수여 받고, 이혼을 명령한 독재자에게 대들다 도망가기도 하고, 도망간 곳에서 변호사로도 활약하고, 해적에게 잡혔다가 탈출해 복수하는 등…) 또 카이사르를 크라누스의 일개 부하 중 한 명으로 묘사하는데, 만약 카이사르의 지위가 그토록 낮았다면 절대 그가 1차 삼두정치의 일원으로 역할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시즌 1에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 시대의 로마 제국을 설명하면서 비잔틴 제국 시대의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시절의 모자이크 화를 보여 주는 등 일러스트 사용에서도 잦은 오류를 범하였다. 또 전투를 재연하는 장면은 얼마나 고증이 안 되어있는지, 대형을 굳게 갖추어야할 로마 군단병들이 갈리아 병사와 일대일 검무를 펼치다든지 하는 장면은 애교 보일 정도다. 컨텐츠 항목을 다큐멘터리로 설정하고 전문가들의 해설을 영상 중간 중간에 삽입하였음에도 이렇게 까지 고증 수준이 형편 없다면, 이유는 둘 중 하나이다. 제작자가 목적의식을 가지고 다큐멘터리에 자신의 생각을 과하게 투영했거나, 혹은 제작자가 다큐멘터리를 제작하기에는 함량이 부족하거나. 그리고 가장 큰 문제는 넷플릭스에서 이렇게 수준 낮은 컨텐츠를 아무 검수 없이 그대로 플랫폼에 내놓았다는 점이다.
넷플릭스는 온라인 영상 플랫폼에 대한 시장의 수요가 커지는 타이밍에 다양한 컨텐츠들을 확보해 두었기 때문에 큰 성장을 이룰 수 있었다. 그러나 시장의 규모가 커지면서 경쟁 업체들은 더 이상 넷플릭스가 시장을 독점하도록 두지 않는다. 디즈니 플러스, 아마존 프라임, 애플TV와 같이 독자적인 플랫폼들이 속속들이 등장하고 있고, 각 플랫폼들은 본인들의 독자적인 인기 IP를 이용해 소비자들을 확보하고 있다. 물론 넷플릭스는 방대한 플랫폼을 이미 구축하고 있고, 이 때문에 신작 딜리버리에 있어 타사보다 상당히 유리한 고지를 점하고 있는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아타리 쇼크 전까지 누구도 아타리의 급격한 몰락을 예측하지 못했던 것처럼, 넷플릭스 역시 역사의 전처를 밟지 않을 것이라는 보장을 할 수 없다. 넷플릭스의 한 명의 이용자로써 넷플릭스가 아직 유리한 고지를 잡고 있을 때, 질 낮은 작품들을 다작하는 것보다, 수준 높은 독자 컨텐츠를 제작하는데 더욱 집중하여 좋은 영상을 공유하는 서비스를 지속할 수 있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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