녹턴 – 가즈오 이시구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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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턴 – 가즈오 이시구로
이규섭
늦은 밤, 바람이 불어오고 베네치아의 수로를 따라 곤돌라가 천천히 나아간다. 이윽고 어느 방 앞에서 홀연히 멈춰선다. 장년의 남자가 벌떡 일어선다. 곤돌라는 잠시 균형을 잃는 듯 하고, 남자는 그 안에서 균형을 잡으려 애쓴다. 흔들림이 멎은 뒤, 남자는 맞은 편의 앉은 사내에게 신호를 보낸다. 기타 반주가 흘러나오고 남자의 음성이 거리를 채운다. 녹턴(Nocturne)이 어울리는 풍경이다.
아름다운 찰나의 씬(Scene) 뒤에는 언제나 현실이 숨쉬고 있다. 고즈넉한 밤 풍경, 감미로운 가수의 노랫소리 뒤로는 흔하지만 동시에 흔치 않은 사랑이야기가 깔려있다. 말하자면 한물간 스타 가수와 나이 차가 한참 나는 아내의 이야기다. 린디 가드너는 운명을 바꾸기 위해 부단히 노력해온 여자다. 그리고 그녀는 마침내 토니 가드너라는 빛나는 스타를 차지 하는 것으로 자신이 갈구하던 것을 쟁취해냈다. 둘은 서로가 필요에 의해 만난 커플이었다. 하지만 토니의 말처럼 그들의 시작이 어떠했던 27년의 긴 세월 동안 이제 둘이 서로를 사랑하게 되었다는 사실은 아무도 부인 할 수 없었다. 하지만 그렇기에 비극적인 결말이 둘을 기다렸다. 린디는 명성을 잃은 토니와 계속 함께 하기엔 아직 젊었고, 그녀에겐 다음 기회가 남아 있었다. 토니의 말마따나 ‘가능성이 남아 있을 때 출구를 찾아야’ 했다. 그래서 토니는 그녀를 놓아주려고 한다. 어쩌면 그의 주장처럼 다시 한 번 화려한 복귀를 위해 새로운 환경, 그를 위한 새로운 여인이 필요해서 결심한 일인지는 아무도 모를 일이다. 베네치아 여행은 둘의 마지막 이별 여행이었다. 곤돌라가 멈추는 것은 그 즈음이다. 토니는 마치 로미오처럼 창문을 열어달라고 말하지만, 줄리엣은 말그대로 창문만 열어둔 채, 날이 춥다며 안으로 들어가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By The Time I Get To Phoenix」가 시작되고 위대한 가수는 ‘한 줄기 주저’가 서린 노래를 이어간다. 마침내 「One for my baby」가 흘러나올 때 쯤, 기타리스트 얀은 가드너 부인의 흐느낌 소리를 듣는다.
베네치아의 밤은 깊어가고, 노래는 끝을 맞이한다. 얀은 어머니가 좋아하던 토니 가드너를 위해 최선을 다해 연주했다. 한사코 거절했음에도 꼭 쥐어준 사례비를 받으며, 얀은 어머니를 다시 떠올린다. 기억 속의 어머니는 언제나 사랑에 실패할 때면 토니 가드너의 레코드를 틀어놓고 울었다. 토니의 말처럼 어머니는 출구를 찾는데 실패해버린 것일지 모를 일이었다.
얀은 결국 가드너 부부가 이혼했다는 소식을 듣는다. 마치 현실의 연예계 커플을 보는 것만 같다. 갑작스럽고 의외인 결혼. 그리고 그만큼이나 빠르고 주저 없는 이혼. 외부의 시선에서는 다른 세계의 이야기처럼만 보이는 것은 이들이 허위와 가식으로 가득한 유명인의 삶을 사는데 익숙해져 그런 것 일까? 그런 그들의 사랑은 그만큼 왜곡되고 작위적인 것일까? 허나 소설의 끝에서 남는 것은 껍데기뿐인 엉터리 사랑이 주는 허무함이 아니라, 오히려 우리가 이상이라고 여기는 가면 너머의 투박함과 그 본질에서 오는 따스함이다. 연인 간의 사랑은 둘 사이의 감정이다. 그리고 감정은 늘 이성적이지 않아서, 자꾸만 요동치고 쉽게 흔들리는 법이다. 그렇다면 거기에 진실과 거짓이 따로 있을 수 있을까? –비가오나 해가뜨나-의 친구 부부도, -말번힐스-의 소냐와 틸로 부부도, -녹턴-의 스티브 부부도 어딘가 위화감이 드는 장면을 자꾸 보여준다. 그들이 서로를 대하는 모습은 매 상황마다 완전히 다른 사람인 것처럼 바뀌어서는, 이를 관찰자 시점으로 바라보는 독자의 입장에서는 무기질 적인 느낌을 준다. 허나 어쩌면 우리 삶 속의 사랑은 이에 더 가까울지 모른다는 생각을 했다. 그림에서 그린 듯한 한 쌍은 없을 것이다. 그런 순간만이 다수 존재 할 뿐, 누구나 별 것 아닌 것으로 싸우고, 미워하고, 심하면 증오하고, 오해하고, 홧김에 무언가 저질러 버리기도 하는 법이다. 그러다가도 다시금 하나의 감정을 공유한다.
아름다운 다섯 개의 이야기는 다시 하나로 모인다. 모든 소설의 마지막 문장은 소설 속의 갈등이 언제 있었냐는 듯 의지를 담고 있다. 마치 비가 내린 뒤의 하늘처럼 무언가 희망찬 기운이 우리를 일깨운다. 그 때 약간의 습기와 함께 볼에 닿는 서늘한 바람의 촉감은 매일 같이 해가 쨍쨍 빛나는 날과는 또 다른 즐거움을 준다. 이 또한 이야기의 역할이 아닐까.
…왜냐하면 가드너 씨는 상당히 괜찮은 사람으로, 컴백을 하든 하지 않든 영원히 위대한 가수로 남을 것이기 때문이다.
-「크루너」 중에서-
…하지만 그런 걱정을 적어도 몇 분 동안만은 유예할 수 있었다. 우리는 별빛 가득한 하늘 아래에서 스텝을 밟았다.
-「비가 오나 해가 뜨나」 중에서 -
…이윽고 나는 구름을, 발 아래 펼쳐진 땅덩이를 지그시 응시한 다음 다시 내 노래에, 아직 완벽한 것 같지 않은 브리지 패시지에 신경을 집중하기로 마음먹었다.
-「말번힐스」 중에서 -
…아마도 이 일은 내게 정말로 중요한 전기가 되고 성공이 나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아마도 린디의 말이 옳을 것이다.
-「녹턴」 중에서 -
…만약 이 광장에서 다시 그의 모습이 눈에 띈다면 그리고 그때 내가 연주를 하고 있지 않다면 그에게 가서 이야기를 나눠야겠다.
-「첼리스트」 중에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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