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자의 조건
페이지 정보

본문
한니발 장군이 이끄는 3만의 카르타고 군대가 알프스를 넘어 이탈리아 북부에 나타났다. 기원전 219년 겨울이었다. 추운 날씨의 험한 알프스 산맥을 넘을 것이라고 생각하지 못했던 로마는 허를 찔렸다. 한니발은 뛰어난 전술을 통해 몇 배나 되는 로마군을 계속해서 무찔렀다. 하지만 아무리 전술과 전략에 뛰어난 한니발이라고 해도 고작 3만의 병력으로 몇 배나 되는 로마군을 계속해서 상대하는 것은 무리가 있었다. 로마를 멸망시키기 위해서 다른 계획이 필요했다.
당시 이탈리아 반도에는 로마를 둘러싼 수많은 도시 국가들이 있었고, 이들은 로마와 동맹국이었다. 한니발은 그들을 이용하는 전략을 세웠다. 로마와 동맹인 주변 국가들을 포섭하면서 세력을 키워 로마를 정복하자는 것이었다. 한니발은 로마와의 싸움에서 승리한 뒤 로마의 병사들을 무참히 참수했지만, 로마 동맹국 병사들은 관대하게 본국으로 돌려보냈다. 로마 동맹국들은 자신들에게 호의적이면서도 연전연승하는 기세 좋은 한니발 군대의 편을 들지 않을 이유가 없었다. 한니발도 당연히 로마의 동맹국들이 로마를 버리고 자신을 선택할 것이라 생각했다. 로마 점령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하지만, 대부분의 로마 동맹국들은 로마를 배신하지 않았다. 오히려 이들은 로마를 위해 자신의 목숨까지 기꺼이 바쳐 싸웠다. 주변 국가를 포섭하려던 한니발의 계책은 실패로 돌아갔다. 속전속결로 전쟁을 끝내려고 했던 한니발의 계획은 수포로 돌아갔고, 전쟁은 길어졌다. 본국에서의 지원을 받지 못한 한니발의 군대는 점차 수가 줄어들었고, 결국 로마 본토에서 쫓겨났다. 한니발은 대부분의 전투에서 승리했지만, 전쟁에서는 패하고 말았다. 로마의 동맹국은 왜 로마를 버리지 않았던 걸까? 이는 로마의 관용적인 정책에서 이유를 찾을 수 있다.
로마 동맹국들은 뛰어난 전술과 강력한 군대를 가지고 호의적으로 대해주었던 한니발의 편에 서지 않았고, 계속해서 패배했던 로마를 위해 목숨을 바쳤던 그 비밀은 바로 로마 시민권에 있었다. 그 시대에는 한 국가가 다른 국가를 점령하면 그 국가의 수장을 참수하고 시민들을 노예로 만들었다. 점령당한 국가의 시민은 평생을 노예로 살아야 했다. 전쟁이 일어나면 자신의 처자식과 이웃들을 노예로 삼고 싶지 않았던 시민들은 죽을 힘을 다해 저항했다.
하지만, 로마는 다른 나라들과 달랐다. 로마는 패배자들에게 매우 관대한 정책을 펼쳤다. 전쟁에서 패하여 로마의 노예가 되더라도 10년만 일하면 자유인이 될 수 있었다. 게다가 해방된 노예의 자녀들에게는 자동으로 로마의 시민권이 부여되었다. 로마는 패배자들조차 자신과 동등한 시민으로 받아들이는 자세를 가지고 있었다. 로마 주위의 많은 도시 국가들은 자발적으로 로마에 편입되기를 원했다. 로마는 새로운 사람을 포용하는 제도가 있었고, 개인의 혈통이나 문화, 종교는 로마의 시민권을 획득하는데 아무런 상관없었다. 단지, 그들이 로마를 위해 어떤 일을 할 수 있는지가 중요했다. 심지어 로마인의 혈통이 아니었던 외국인도 황제에 오를 수 있었다. 그 당시에는 상상도 할 수 없던 혁신적인 제도였다.
결국 로마를 정복하지 못한 카르타고는 로마에 정복당하고 말았다. 그리고 약 400년 뒤인 서기 193년, 로마를 멸망시킬 뻔 했던 한니발의 나라 카르타고의 후예인 셉티미우스 세베루스는 로마의 새로운 황제로 즉위하였다. 자신들을 멸망 직전까지 몰고 갔던 적국의 후손조자 로마의 황제로 받아들일 만큼 로마는 포용적이고 관용적인 나라였다.
로마뿐만 아니라 지금까지 전세계를 정복했던 많은 나라들은 혈통이나 종교, 문화 등과 관계없이 사람을 포용했다. 13세기 전 세계를 떨게 했던 몽골 제국이 흥할 수 있었던 이유도 관용적인 태도에 있었다. 당시 몽골 제국의 수도 카라코롬에서는 수많은 종교와 문화, 피부색을 가진 민족들이 하나의 법 아래에서 평화롭게 공존하며 절대적으로 평등한 대우를 받았다. 칸의 아래에서 이슬람교, 기독교, 불교 등 수많은 종교를 가진 사람들이 토론을 하며 서로의 이야기를 들었다. 현대에도 이러한 공존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당시 유럽에서 마녀사냥으로 수많은 무고한 사람이 피를 흘렸던 것을 생각한다면, 몽골 제국의 관용적인 정책은 매우 혁신적인 것이었다. 몽골 제국이 인류에게 남긴 것은 단지 엄청난 넓이의 영토가 아니었다. 여러 문명이 한데 공존할 수 있었던 몽골 제국은 수많은 지역들에게 문화를 전달할 수 있었다. 융화된 문화와 넓은 영토, 그리고 몽골의 역참 제도는 유럽은 잠에서 깨어나 근대를 시작할 수 있었으며 아시아와 아프리카도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며 다른 문명의 존재를 인식할 수 있었다.
이렇듯, 세계를 지배했던 많은 제국들은 관용적인 정책을 펼쳤다. 인종이나 문화, 종교에 관계없이 사람을 기용했고 그러한 정책들은 그 나라를 강대국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이후, 나라가 점점 관용을 잃고 이기적으로 변하면서 그 제국은 쇠퇴하기 시작한다. 중세 종교박해가 심하던 시절에 인종과 종교에 대해 포용력이 높았던 네덜란드는 기술과 자본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들어 전 세계의 해운을 제패하는 나라가 될 수 있었고, 로마는 이후 기독교로 국교를 채택한 후 종교적 불관용의 시대로 접어들면서 급격히 쇠락하기 시작했다. 전세계를 무적함대로 누볐던 스페인이 그러한 절차를 밟았고, 해가 지지 않는 영국이 불관용으로 인해 해가 지는 나라가 되어버렸다.
“중국은 미국을 추월할 수 없을 것이다”
중국이 미국을 언제쯤 추월하겠냐는 질문을 들은 리콴유 전 싱가포르 수상은 이렇게 대답했다. 많은 중국인들이 자국우선주의를 가지고 있다는 것을 생각했을 때, 중국인 화교인 리콴유 수상의 대답은 의외였다. 리콴유는 여기에 ‘중국의 인적 자원은 13억 명이지만, 미국은 70억 명이나 다름없기 때문이다’라고 덧붙였다. 중국은 중화사상을 앞세우고 많은 소수 민족들을 탄압하며 비관용적인 정책을 사용하지만, 미국은 자국 뿐만 아니라 전세계 사람들을 대상으로 하는 정책을 사용하고 있기 때문이리라. 폐쇄적인 정책을 가지고 있는 중국과는 다르게, 미국은 인종의 용광로라고 불리우며 다양한 사람들을 포용하는 관용적인 정책을 펼쳐왔다. 자국 내 다른 민족들에 대해 비관용과 억압을 하는 중국은 그 태도를 바꾸지 않는다면 앞으로도 미국을 따라잡을 일은 없을 것이다. 또한, 많은 것을 받아들이고 끊임없이 혁신을 창출해냈던 미국이, 트럼프와 같은 대표자를 필두로 비관용의 정책을 펼친다면 미국도 어느새 패권을 잃는 신세가 되어버릴지도 모르겠다. 바이든은 트럼프의 슬로건인 ‘Make America great again’이 아니라, 링컨이 이야기했던 ‘A house divided against itself cannot stand’의 마음을 가져야 하겠다.
관용과 비관용의 문제에 대해서 우리나라는 매우 심각한 상황에 처해 있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다른 피부를 가진 사람을 어떻게 대하는지를 생각해봐도 좀처럼 우리와 다른 것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는다. 조선족이나 무슬림에 대해서도 매우 배타적이고 호의적이지 않다. 우리와 조금 다르다는 이유만으로 그들에게 퍼붓는 언행은 과격하고 끔찍하다. 심지어 다른 종교와 인종, 문화를 가진 다른 나라 사람들을 배척하는 것뿐만 아니라, 우리나라 시민들 사이에서도 관용과 포용의 모습은 좀처럼 찾아볼 수 없다. ‘불편하다’라는 말은 어느새 우리나라 사람들이 가장 많이 사용하는 용어가 되어버렸다.
자신을 멸망시킬 뻔 했던 적국의 시민조차 황제가 되었던 로마의 강력한 포용 정책을, 모든 종교가 한데 어우러졌던 몽골 제국의 다양성을 우리는 배워야 할 필요가 있겠다. 관용의 길은 멀고도 험난한 길이지만, 우리가 도태되지 않으려면 꼭 가야 하는 길이기 때문이다. 비관용정책을 취했던 수많은 제국들이 어떻게 쇠퇴했는지를 우리는 기억해야 하겠다.
- 이전글순서파괴 21.04.01
- 다음글녹턴 – 가즈오 이시구로 21.03.30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