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서파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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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서파괴
콜린 브라이어(前아마존 기술 고문), 빌 카(前아마존 미디어 부문 부사장) 저
얼마 전 쿠팡이 미국 증시에 성공적으로 상장했다. 우리는 자본의 출처가 일본이니 미국이니 하는 이런 부가적인 이슈들은 차치하고 본질에 집중할 필요가 있다. 쿠팡이 최근 들어 번갯불에 콩 굽듯 일사천리로 진행하는 프로젝트들은 가히 혁신적이다. 제품을 주문하면 당일에 배송해준단다. 이른바 로켓 배송이라 불리는 이 놀라운 기술은 극도로 체계화된 유통 시스템의 산물이다. (하지만 수년간 지속해서 이슈화되는 해당 기업의 노동착취 문제는 반드시 해결되어야만 한다) ‘배송 대행’이 기업의 주된 비즈니스 모델이라면 유통의 체계화는 당연한 거 아니냐 할 수 있겠지만 가만히 생각해보자. 7~8년 전만 하더라도 인터넷으로 물건을 주문하면 사흘 나흘 기다리는 것은 아무렇지도 않았다. 하지만 요즘엔 인터넷 쇼핑을 하다 보면 이러한 글들을 어렵잖게 발견할 수 있다. ‘오늘 주문했는데 내일 받을 수 있죠?’ 택배 기사들의 고된 하루가 또 시작되겠구나 싶다.
빨리빨리! 문화의 희생양인 배송 업체들은 여러 가지 방법으로 당일 배송, 늦어도 명일 배송을 가능케 했다. 그중 가장 간단하고도 강력한 방법은 제품을 미리 사놓는 것이다. 제품 보관을 위한 널찍한 물류 창고만 확보한다면 문제 될 게 없다. 하지만 이렇게 되면 이들은 이제 더는 배송 대행업체가 아니라 제품 판매자가 된다. 사업 영역을 배송에서 판매로 확장한 것이다. 풀필먼트(fulfillment) 서비스라 불리는 이러한 방식은 사실 쿠팡이 최초로 도입한 것은 아니다. 이미 미국에서는 십수 년 전부터 활용된 방식이며, 바로 세계 최대의 유통 공룡 ‘아마존’의 시스템을 쿠팡이 벤치마킹한 것이다. 그 밖에도 쿠팡은 익스프레스, 미디어 사업, 플랫폼 거대화를 통한 고객 락인(Lock-in) 효과 등 다양한 방면에서 아마존의 방식을 차용하고 있다. 그렇다면 국내 최대 유통 업체인 쿠팡은 왜 아마존의 운영 방식들을 답습하는 것일까. 아마존이 유통 기업 중 가장 큰 시총을 가져서? 이미 같은 방법으로 큰 성공을 거뒀으니? 쿠팡의 속내는 잘 모르겠지만, 아마존의 내부자가 책 <순서파괴>를 통해 공개한 베조스의 독특한 경영 방침을 들어보면 아마존은 적어도 실패는 하지 않을 기업이라는 확신이 들기는 한다.
수년간 세계 부호 랭킹 순위권을 지키고 있는 제프 베조스는 잔인한 천재다. 그는 아이디어 회의에서 직원들을 향해 가장 먼저 이 질문을 던진다고 한다. ‘그래서 모형(Mock-up)은 어디 있죠?’ 일의 과정이나 계획에 대한 보고를 장황하게 설명하지 말고, 새로 기획한 아이디어가 아마존 웹사이트에서 어떻게 구현될지를 시각적으로 보여달란 말이다. 아직 개발 초기 단계이거나 기획 단계에 머무른 아이디어를 대체 어떻게 시각화할 수 있단 말인가. 하지만 그는 집요하게 결과물을 먼저 보여달라 말한다. 기획 이후 순차적으로 개발을 해나가는 일반적인 순서가 아닌, Working backward, 즉 거꾸로 일하라(순서파괴로 번역되었으나 나는 직역이 더 와닿는다)는 말이다. ‘거꾸로 일하기’란 개발자의 판단에 따라 순서대로 계획을 세워 제품을 만드는 대신, 고객의 시선에 따라 고객이 누릴 효용을 먼저 설계한 다음 그에 적합한 제품을 만든다는 뜻이다. 그렇기에 직원들은 회의에서 개발 현황을 보고하기 전 반드시 완성된 제품을 시각화하고 이를 토대로 작성된 보도자료를 만들어 발표해야 한다. 매력적인 가상의 보도자료는 이후 그 아이디어를 실행하게 하는 중요한 이유가 된다.
‘될 놈’인지 ‘안 될 놈’인지를 회의에서 정하지 말고 애초에 될 놈을 가져와서 바로 시작하라는 그의 실무 방침은 비단 사업에만 그치지 않는다. 그는 새로이 채용되는 직원이 반드시 기존 팀원보다 뛰어난 점이 있어야만 한다고 말한다. 신규 직원이 배치될 팀 내에는 바 레이저(bar raiser)가 존재하고 이 들은 인사팀의 결정을 전적으로 뒤집을 수 있는 권한을 부여받는다. 정예화된 Two pizza팀(피자 두 판을 먹을 정도의 인원, 즉 10명 미만)은 싱글 스레드 리더십을 발휘하여, 진행하는 프로젝트를 독단적으로 성공시킬 임무를 지녔으니 신입을 설렁 받을 리 만무하다. 숨 막히는 기업 문화는 회의에서도 계속 이어진다. 회의 시작 후 직원들은 20분간 침묵한다. 그 시간 동안 그들은 발표자가 배포한 A4 용지 6장 분량의 내러티브를 읽는다. 참석자들은 내러티브를 읽으며 메모하거나 주석을 단다. 모든 참석자가 내러티브를 다 읽고 난 후에야 문서에 관한 토론이 시작된다. 그렇다. 그들은 회의에서 파워포인트를 사용하지 않는다. 그 이유는 파워포인트를 사용하는 것이 위험하기 때문이라 말한다. 언변이 뛰어난 발표자는 형편없는 아이디어로도 쉽게 안건을 승인받을 수 있지만 엉성하게 구성된 프레젠테이션은 아무리 아이디어가 좋더라도 토론을 장황하고 지루하게 만들 뿐만 아니라, 사람들을 헷갈리게 하고 진지한 논의를 이어가지 못하게 만든다. 시시한 시각 자료 밑에서 웅크리고 있는 훌륭한 아이디어를 놓쳐선 안된다 말한다.
‘수십억을 들인 신제품이 고객의 가슴을 뛰게 하지 못한다면?’ -제프 베조스-
적용 예시 1 : ‘고된 일과 끝, 침대에 누워 구상하는 내일의 계획이 내 가슴을 뛰게 하지 못한다면?’
적용 예시 2 : ‘몇 달 동안 공을 들인 논문이 에디터와 리뷰어의 가슴을 뛰게 하지 못한다면?’
적용 예시 3 ‘수년간의 노력 끝에 도달한 내 모습이 정작 내 가슴을 뛰게 하지 못한다면?’
혹자는 책 출판 후 ‘내가 베조스라면 변호사와 진지하게 영업기밀 유출에 대해 고민했을 것이다’ 라는 감상평을 냈지만, 내게는 ‘거꾸로 일하기’ 말고는 딱히 와닿는 것은 없었다. 대부분이 너무 혹독하고 시대의 흐름에 잘 맞지 않는다 생각된다. 다만 아마존이 직원들에게 항상 강요한다는 고객 효용 중심의 사고방식은 우리 모두에게 저마다의 방식으로 조금씩 변화시켜 가슴에 지닐 가치가 있다고 생각한다. 시간을 효율적으로 쓰면서 일을 잘하는 사람들은 ‘이미지 트레이닝’이라는 이름으로 이미 체득된 기술일 수 있다. 일을 시작하기 전, 일을 하는 중, 일을 마무리하는 시점조차 끊임없이 결과가 가져다줄 효용을 곱씹는 것이다. 기업의 대표라면 방대한 데이터 처리에 뇌가 힘들 수 있겠지만 우리는 조금 단순화하여 개인의 효용에만 집중해보자. 하루를 시작할 때, 일과 중, 하루를 마무리할 때, 내일을 계획할 때 ‘과연 내 가슴이 뛰는가?’ 하는 질문을 계속해서 던져보는 것이다. 하루가 쌓여 일주일이 되고, 한 달, 수년이 되어 결국 내 인생의 전반적인 효용을 극대화할 수 있는 시발점이 되지 않을까 조심스럽게 바래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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