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Column

  • Home
  • Cultural Activity
  • Culture Column

아Q정전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박영근
댓글 0건 조회 5,331회 작성일 21-04-01 16:42

본문

   NYTimes에서 선정한 20세기를 대표하는 문학 중 하나라는 소개를 계기로 접한 루쉰의 아Q정전은 작년 이맘 때 즈음에 읽었던 조지오웰의 동물농장과 알게 모르게 서로 닮아있다는 느낌을 받았다. 비슷한 풍경 속에서 다른 점이라면 아Q정전은 다듬어지지 않은, 비수를 꽂는 듯한 조지오웰과 같았다. 아Q정전이 집필된 시기가 1900년대 초반 신해혁명이 일어나고 서양의 세력이 호시탐탐 아시아를 향하는 서세동점이 퍼지고 있는 시대라는 배경을 알고 읽어서 일까 루쉰의 글이 가지고 있는 느낌은 민중에 대한 계몽이라는 느낌이 강렬했기 때문이다. 이런 사회적인 글쓰기, 문학작품인 아Q정전에서 감도는 분위기는 루쉰의 당시 내가 속한 민족에 대한 지독한 애정과 증오인 것 같다.

 

 

희망이란 본래 있기도 하고 없기도 한 것이다.

마치 땅위의 길과 같아서 본래길이 없었지만 누군가 걸어가면 그것이 곧 길인 것이다.

                                                                                                                                      -루쉰-

 

  정신승리만 주구장창하며 자신에게는 관대하되 남에겐 그러하지 못한 아Q는 오늘날의 표현으로 강약약강한 소시민이다. 이런 약자경시의 아Q가 자신의 정신승리에서 벗어나는 순간은 단 한순간으로 거짓말의 거짓말이 발각되는 순간에 '이건 다 내가 꾸며낸 거짓말일 뿐이구나.'라고 깨달은 순간이다. 이렇게 공허한 영웅주의와 무력한 패배주의에 도취해 자신의 현실을 자각하지 못하는 아Q처럼 합리화를 통해 객관적으로 상황을 바라보지 못하는 사람이 내 주변에는 적을 줄 알았으며 나 역시 전근대적인 아Q와는 다를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러하지 않았다. 특히 아Q가 처형을 당한 모습을 보고 ‘총살당한 것은 곧 그가 나쁘다는 증거야, 그렇지 않으면 왜 총살을 당했겠어?’라고 말하는 새로운 시대의 중국을 선도해야 할 그들의 모습을 보고 ‘뭐야 아Q와 다를 바 없자나? 과연 COVID-19사태의 초기의 중국의 대응이랑 같네?’라며 책을 바로 덮은 나 역시 다를 바 없어보였기 때문이다.

 

 

  취업 전선 혹은 진학을 위해 노력하는 친구도 있고, 원하는 바가 있어 각종 자격증을 취득하기 위해 휴학을 결정하고 시험을 준비하는 친구, 아예 자퇴하고 새로운 공부를 시작하는  친구 그리고 대학 진학을 포기하고 바로 취업하여 일을 하고 있는 친구도 있다. 그렇기에 그들을 아Q라고 부르고 싶지는 않다. 나를 포함한 그들의 삶을 알고 있기에 우리는 외부에 끊임없이 노출 되어 스스로를 비교해보고 좌절을 하지만 살아가기 위해 발버둥 치고 있다. 하지만 우리 또 다른 아Q임이 보이는 부분이 있다. 부화뇌동, 남들이 다 하니깐 공부하고 돈을 더 준다 혹은 사회적 평판을 위해 다들 대기업, 워라벨이 좋은 직장을 가기 위해 노력한다. 나쁘다는 것을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그저 자기 자신을 잃어버린 채로 하고 싶은 것 원하는 것이 뭔지 진지한 고민 없이 살아가는 우리의 모습 또한 어쩌면 계몽이 필요한 아Q일 지도 모른다.

 

 

  루쉰이 말하는 아Q가 없다고 그리고 계몽된 공동체의 모습이 있다고 말할 수는 없지만 많지 않은 것은 분명할 것이다. 그렇다면 나는 ‘낭만’에 대하여 이야기 하고 싶다. 우리의 인생에 정신승리의 가치의 기준을 다시 돌아봐야 한다고 생각한다. 아Q의 처형을 보고 난 민중들처럼 그리고 그런 영웅주의에 심취한 민중을 보고 바로 책을 덮은 나처럼 나, 자신의 위치를 잃고 현실자각도 하지 못하며 살자고 하는 것은 아니다. 자기 자신의 위치를 알고 있지만, 자기 자신의 ‘로망’을 잊지 말자는 말이다. ‘내로남불’ 하지 않는 선에서 자기 자신의 정신적 승리 낭만을 찾아야 한다고 이야기 하고 싶다. 개개인의 영향이 커지고 있고 그만큼 자기 자신에게 현실적이고 냉혹한 사회이다. 이는 필연적으로 ‘자아실현’이 가장 중요한 시대라고 생각한다, 이 ‘자아실현’은 개인마다 다를 것이다. 누군가에는 재벌이 되어 부와 명예를 누리는 것일 것이고, 누군가에게는 사회적 공헌이 될 수 있다. 또 누군가에게는 행복한 가정일 수도 있다. 그렇다 이런 것은 당장 이루기 힘든 ‘로망’일 것이다. 이런 삶을 살고 싶다는 ‘로망’은 지금의 힘듦과 고난을 견딜 수 있는 ‘낭만’일 것이다. 사실 ‘로망’과 ‘자아실현’을 누구나 이룰 수 있는 것은 아니다. 그렇기에 이룰 수 있다고 거짓말과 그런 삶을 꿈꾸는 정신승리를 하지 않을까. 나는 이것을 현실 도피가 아닌 ‘낭만’이라고 말하고 싶다, 이런 ‘낭만’은 사치스럽고 허망해도 삶을 살아가는 힘을 제공한다. 그렇기에 ‘낭만’에 대하여 각자의 이야기 써 내려가는 건 어떨까?

 

 

 겪어야 할 불행, 

지금을 살아가야 한다면 발전적인 삶을 위해 노력하는 것으로 불행해지자. 

미래를 위한 투자를 회피하는 것이 현 순간의 로망을 위한 최고의 선택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 선택이 곧 더 좋지 않은 낭만을 선택할 수밖에 없게 만드는 것이니까.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