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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의 품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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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기룡
댓글 0건 조회 5,178회 작성일 21-04-02 20:28

본문

말의 품격 

-이기주-


정보의 바다에서 사는 세상이라고 하지만, 나는 지금을 ‘말이 범람하는 시대’ 라고 부르는 것이 더 맞지 않나 싶다. 정보란 것도 결국 말 이라는 용기 안에 담기지 않으면 증발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21세기에 단연 중요한 것은 ‘말을 어떻게 하느냐’일 것이다. 

1.     어떻게 말을 해야 하는지 짚어 주는 책


<말의 품격>은 그런 점에서 어떻게 말하는 것이 품격 있는 말하기가 되는지를 따스하게 짚어주는 책이다. 여기서 내가 ‘따스하다’ 라고 표현한 이유는, 작가 이기주가 선택한 어휘가 건강하고, 또 그런 어휘들이 모여 만들어진 문장이 기름을 칠한 듯 고소한 풍미를 뿜었기 때문이다.

 

책에서는 “오랫동안 마음에 품어낸 말을 겨우 부화시켜 밖으로 꺼내 놓은 듯” 이라는 묘사가 나온다. 작가는 오랫동안 정제하고 조탁한 말을 한 자 한 자 조심스레 풀어 적는다. 마치 ‘엄마가 갓난 아이에게 좋은 식재료로 이유식을 만들어 먹이는 것’ 같다. 나는 작가가 신중히 고심하며 단어들을 선택했음을 느꼈다.

 

<말의 품격>은 평소 말씨가 가볍고 거친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을 위한 좋은 ‘이유식’인 셈이다.

 

2.     마음의 눈을 부릅뜨기

 

역지사지를 말하는 챕터에서 나온 글귀를 보면,

“

관점을 다른 방향으로 급격하게 바꾸는 건 쉽지 않으므로 관점의 중심을 이동해 비스듬히 기울여 봄직하다. 그래야 육안肉眼이 아니라 심안心眼을 부릅뜰 수 있다.

“

 

마음의 눈을 ‘부릅뜬다’ 라는 짧은 문장은 나를 뜨끔하게 찌르는 일침이었다. 나는 과연, 그동안 ‘부릅뜰’ 만큼 치열하고 열성적으로 타인에게 시선을 건넸던가?

 

비로소 지금까지 나는 역지사지를 말만 했지 이를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있지 않았음을 깨달았다. 노력이 없었고, 진심이 없었다. 무엇보다 말의 중심을 내가 아닌 남에게 두어야 겠다는 생각을 했다. 사실 품격이란 것은 내가 정하는 게 아니라, 남이 그렇다고 인정해야 비로소 존재하게 되는 개념이기 때문이다.

 

가끔 고맙게도 친구들은 먼저 전화나 메신저를 통해 나에게 연락을 해 온다. 잘 지내고 있는지, 요즘 생활은 어떠한 지. 그럴 때마다 나는 친구들의 연락에 반가움을 표시하며 친구의 말을 들어주거나 하지 않았다. 그저 내가 안고 있는 걱정거리, 내가 놓인 상황에 대해 친구에게 울퉁불퉁한 표현들과 함께 내뱉기 마련이었다. 친구가 원했던 것이 내 ‘말’이었는지, 아니면 내 ‘귀’ 였을지 생각해 보지 않았다. 말은 좀 더 신중하게, 귀는 더욱 쫑긋하게 세워 주변 사람들을 대하며 마음의 눈을 ‘부릅뜨려고’ 노력하기로 다짐한 대목이다. 

 

<말의 품격>은 사람 냄새가 나는 책이다. 우리 주변에서 쉽게 볼 수 있는 일상의 이야기에서도 품격을 발굴했다. 가령, 상인이 커플에게 담요를 파는 말, 도서관 창문을 닫을 것이냐 열 것이냐 하는 논쟁, 버스에서 아들에게 저녁 먹었냐고 묻는 여인의 말, 스파이더맨 놀이 중인 아이를 식사에 부르는 엄마의 말 등, 작가는 주변 사람들의 말 속에서 품격 있는 말하기를 발견했다. 품격이라는 것이 어디 멀리 있는 무거운 개념이 아니었던 것이다. 품격은 남들이 인정해 주어야 하는 것이지만, 내가 직접 만들어 가는 것이다.

3.     습관적인 언행을 변화 시키는 것

 

이 책을 읽으며 생각난 인간 실험이 하나 있다.

 

로이 바우마이스터와 그의 팀은 실험참가자를 모집하고 피실험자들에게 자기 자세 교정을 시킨다. 구부정한 자세를 유지하다가도, 문득문득 생각날 때마다 구부정한 자세에서 허리를 피라는 지시를 한다. 이 훈련은 습관을 극복하는 데 에너지를 쓰도록 한다. 그 결과, 스스로 자세를 끊임없이 교정하기 위해 노력한 사람일수록 자제력 상승이 두드러지게 관찰되었다.

 

나는 원하는 대로 일이 안 풀리면 절제력을 잃고 울컥하는 경우가 많다. 감정을 절제하며 말 한 마디라도 변화하려는 노력을 통해 로이 바우마이스터의 실험처럼 전반적인 절제력을 향상시킬 수 있는 좋은 기회로 삼아야 겠다.

 

한 순간에 말하는 습관을 바꾸는 것은 불가능하다. 하지만 적어도 말하는 습관을 개선하려고 노력해야 한다. 말을 교정하는 훈련, 연습은 말의 품격, 그 이상으로 많은 것을 가져다 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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