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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은지, 겨울 속에 깃드는 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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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정재중
댓글 0건 조회 5,245회 작성일 21-04-05 09:07

본문

 “세상의 처음은 사랑이었다. 마지막도 전혀 다르지 않을 것이다.”

– 책 말미에, 작가가 새겨놓은 문장

현대 사회의 메말라가는 인간성을 회복시킬 수 있는 열쇠란 사실, 가장 원초적이며 단순한 것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그 원초적인 것은, 인간이 인간으로서 있을 수 있는 데에 가장 큰 공헌을 한 것일지도 모른다. 작가는 이 책에서 완전히 다른 세상에 살고 있는 두 인물을 중심으로 자신이 생각하는 사랑의 본질을 표현하였다. 남녀간의 사랑부터, 사람과 사람 사이의 박애. 주인공인 20대 여성 ‘설매화’는 어렸을 적 누군가가 홧김에 저지른 방화로 인해 부모를 여의고 할머니와 동생과 함께 살고 있다. 세상을 원망하는 날이 반복되던 어느 날, 우연한 계기로 천사원에 발을 들이고는 그 곳에서 아이들의 순수함에 반해서 지금까지 아이들을 돌보고 있다. 한편, 20대로 추정되는 남성 ‘산’은 완전히 다른 세상에서, 힘과 폭력이 지배하는 어지러운 시국 아래에서 자신의 어머니와 같이 살던 주민들은 죽였던 도적단의 두목 ‘소태’를 찾아 원수를 갚기 위해 방랑하고 있다.

‘산’이 살고 있는 세계에는 세상의 경계를 지키고 있는 ‘폭포’ 너머의 어느 언덕에 ‘소원목’이라는 신비한 나무가 자리잡고 있다. 3년에 한 번 폭포의 경계가 열릴 때에 접근이 가능한, 소원을 이루어 준다는 나무. 그리고 3년에 한 번 마다 폭포 앞에서는 자신의 욕망에 자신마저 팔아버린 사람들의 싸움으로 바람이 잘 날이 없다. 한 때 압도적인 무력으로 세상을 평정했던 어느 영웅이 죽기 전 목숨을 걸고 이 폭포 내부에 사람이 들어가지 못하도록 지킬 ‘백검대’라는 무력 집단을 만들었지만, 지금은 그 마저도 인간들의 욕망을 이기지 못하고 대부분이 죽거나 다쳐서 점차 잊혀지고 있었다.


“흉터는 지워지지 않아요. 발버둥 쳐도 떼어 낼 수가 없죠.

하지만 돌보지 않고 그대로 내버려 둔다면 결국 곪아 썩고 말 거에요.

그럴수록, 시들고 병들어가는 건 다른 무엇도 아닌 자기 자신일 테니까요.” – 본문 中


알 수 없는 원인으로 세상의 경계를 넘어 ‘산’이 살고 있는 세계로 건너간 매화는, 그 곳에서 ‘산’을 만난다. 처음에는 자신이 낯선 세계로 넘어왔다는 것에 절망하지만, 점차 ‘산’과 함께 지내면서 서로에게 마음을 열어간다. 그리고 그 와중에, ‘산’이 자신의 복수심에 인생의 모든 의미를 걸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증오로 스스로를 태우기 이전에 계속해서 살아달라고 호소한다. 그리고 ‘산’은 그토록 고대하던 ‘소태’를 만난다. 지금은 어느 빈민촌에서 두 다리를 잃고 거지로 보내고 있는 그를 보고는 검을 뽑아 죽이려 하지만, 결국 감화되고 말았는지 매화의 눈물을 보기 싫다는 이유로 검을 거둔다. ‘산’의 마음을 치유했던 것은 결국 한 사람을 죽이는 것이 아닌, 한 사람을 만난 것으로 인해 이루어졌다.

언뜻 보면 이 책에서는 단순히 세계를 건너온 사람의 사랑이야기를 그리고 있는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사실 작가는 그보다 한 발짝 더 나아가려고 했다. 각박하고 어지러운 세상조차, 인간을 보듬고 회복해줄 수 있는 것은 결국 같은 인간이다. 사실,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작중 ‘산’의 세계와 크게 다를 것이 없어 보인다. 구약성경에 등장하는 소돔과 고모라를 방불케 하는 세상. 동그란 지구 어딘가에서는 과거의 우리가 그랬듯이 민주화를 부르짖는다는 이유로 아무런 망설임도 없이 사람들에게 총구를 겨눈다. 서양 국가에서는 아시안이라는 이유로 혐오 범죄가 만연하고 있다. 인터넷 상에서는 조금만 의견이 달라도 서로 물어뜯기 바쁘다. 서울 용산역 근처의 어느 공원에서는 쉴 곳 없는 노숙자들이 바람과 이슬이라도 피해보고자 텐트를 치고 살고 있지마는, 국민주거생활의 향상을 목적으로 내세운 어느 기업에서는 자신의 위치를 이용해 부동산 투기로 배를 불리고 있었다.

달이 예쁜 것은, 어두운 밤하늘 상에서 유난히 밝게 빛나고 있으면서 눈에 담기기 무리가 없기 때문일 것이다. 이 각박하고 잔인한 현실 속에서도 우리는 따뜻함을, 사람이 가지고 있는 가장 원초적일 지도 모르는, 그러나 오늘날 인류를 묵묵히 지탱하고 있는 그 감정을 키워나가며 유지해야 한다. 한 사람이 한 사람을 치유하고 살리며, 그것이 물리고 이어져 세상을 조금이라도 더 살만한 곳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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