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신 - 프란츠 카프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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변신 - 프란츠 카프카
이규섭
여기 한순간에 벌레가 되어버린 남자가 있다. 가족을 위해 자신의 모든 것을 바쳐온 그레고르 잠자는 하룻밤 만에 가족들에게 가장 홀대 받는 존재가 되어 버린다. 그는 더 이상 자신의 의사를 가족들에게 표현하지 못한다. 가족들은 마지못해 그레고르 잠자를 가족으로써 살게 두지만, 이내 그가 살아있는 것 자체가 가족들에게는 고통이 된다. 가족들은 그를 진심으로 사랑하지 않고, 심지어 증오까지 하게 된다. 하지만, 인간이기 때문에(그 모습은 더 이상 인간이라고 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들지만) 차마 죽일 수는 없다.
소설은 그레고르 잠자의 입장에서 공포스럽고 우울한 감정으로 서술되고 있지만, 반대로 가족들의 입장에서 바라보면 뇌사자의 안락사 문제와 빼다 박은 듯한 상황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뇌사 상태의 환자는 보통의 사람처럼 느끼지 못하고 사고하지 못한다. 순전히 생물학 적으로 살아 있을 뿐이다. 그레고르 잠자처럼, 자신의 의사를 표현하지도 못하고, 스스로 할 수 있는 것도 없이, 생명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것들을 주변 사람들로부터 공급받아야 삶을 유지할 수 있는 것이다. 살아 있기에 다시 돌아올 것이라는 잔인한 기대와 그 한없이 낮은 확률을 위해 희생되는 가족들의 시간, 돈, 감정은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기에 이 살아있지도, 죽지도 않은 사람을 생물학적으로 라도 살려 두어야 하는 지에 대해 고민하게 된다. 꼼짝 못하는 이 사람이 정말 아무것도 느끼지 못할까? 고장난 육신에 갇혀 끝없는 시간동안 가위에 눌리는 것 같은 고문을 받고 있는 것은 아닐지 하는 생각에 누군가는 환자를 위해서도 안락사가 필요하다고 말하기도 한다. 하지만 그것을 본인이 결정할 수 없기에, 끝없는 논쟁이 지속된다. 여동생 그레테가 내뱉는 당사자들만이 할수 있는 매정하고 차가운 말을 무작정 비난하기 곤란한 까닭이다.
그게 유일한 방법이에요, 아버지. 이게 오빠라는 생각을 버리셔야 해요. 우리가 이렇게 오래 믿었다는 것, 그것이야 말로 우리의 진짜 불행이에요. 그런데 이게 어떻게 오빠일 수가 있지요? 만약 이게 오빠였더라면, 사람이 이런 동물과 함께 살 수는 없다는 것을 진작에 알아차리고 자기 발로 떠났을 테지요. 그랬더라면 오빠는 없더라도 계속 살아가며 명예롭게 그에 대한 기억을 간직할 수 있을 거예요. 그런데 이렇게 이 동물은 우리를 박해하고, 하숙인들을 쫓아내고, 분명 우리 집을 독차지하여 우리로 하여금 골목길에서 밤을 지새게 하려는 거예요. 보세요, 좀, 아버지
그리고 다시 그레고르 잠자의 시선으로 돌아온다. 어느날 갑자기 찾아온 변신과 그 이후 찾아온 무기력함과 고독. 이것은 비단 신체적인 장애를 의미하는 데서 그치지 않는다. 사람의 삶은 모두에게 순탄치만은 않아서 “변신”을 맞이하고 말아버리는 삶들이 있다. 그레고르 잠자처럼 원래부터 삶에 쫓기는 사람들에게 변신은 더욱 잔혹하게 다가온다. 더 이상 예전으로 돌아가지 못하고 사회로부터 완전히 단절되어 버리고 마는 사람들. 그런 수 많은 그레고르 잠자들은 벌레가 되어버린 육신안에서 비명을 지르며 몸부림 치지만 아무도 그들을 바라보아 주지 않는다. 때때로 누군가 바라보더라도 혐오의 시선과 의무적인 호의만이 그들을 향할 뿐이다.
군중속의 고독에서 그레고르 잠자는 시들고 조용한 죽음을 맞이하고 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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