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렇게 맛있는 철학이라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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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맛있는 철학이라니
오수민
솔직히 두렵다. 연고도 없는 대전에서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연구실 멤버들과 어우러져 잘 적응할 수 있을까. 석사 과정 동안 내가 맡은 연구 주제를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을까. 걱정은 꼬리에 꼬리를 문다. 대학원에 합격했을 때의 패기와 건방진 포부는 온데간데 없다. 부족해도 열심히 하면 뭐든 되겠지 하고 생각했던 과거의 나는 희미해 진 지 오래다.
대학을 남들보다 늦게 들어간 탓에 동기들은 대부분 동생들이었다. 연장자가 대부분인 선배들 사이에서 막내로 시작하는 건 익숙하지 않았다. 쾌활하고 친화적인 성격으로 새로운 곳에서도 금방 잘 적응할 줄 알았는데, 생각보다 힘들게 느껴진다. 내가 알던 나라는 사람은 분명히 어디서도 잘 적응해 버리는 잡초 같은 사람이었다. 예전의 나와 다른 내가 된 건가 싶은 싱거운 생각도 든다.
가족들은 내가 대전으로 이사를 오고, 연구실에 출근한 뒤로 항상 저녁마다 연락이 온다. 잘 지내는지, 오늘은 어땠냐고. 그 연락이 너무 고마운데 두렵다. 완전히 잘 적응했고 자신만만하다는 말은 차마 내뱉지 못 한다. 그렇다고 잘 할 수 있을지 걱정된다는 말은 입 밖으로 꺼내지 않는다. 걱정하는 속내를 가족들에게 들키고 싶지는 않다.
문득 뒤돌아 본 나는 이렇게 약해져 있었다. 그러다 이 책을 보았다. 음식을 보고 철학을 끄집어 내는 "사고의 전환"이 나를 몰입하게 만들었다.
작가는 우리가 흔히 마주치는 음식들 속에서 자신이 알고 있던 철학들을 결부시켜 생각을 확장해나간다. 붕어빵, 호두과자를 보면서 칸트의 순수이성비판을 생각한다. 붕어빵이나 호두과자 등을 만드는 틀처럼 인간이 외부 세계를 경험하기 전부터 이미 알고 있는 것으로 세상을 받아들인다는 점을 연결시킨다. 버터가 우유 100%로 만든 진짜 버터도 있지만 대부분 식물성 유지를 넣어 만든 가공 버터가 많고, 진짜보다는 가짜가 많다는 사실을 보고, 데카르트를 생각한다. 시중의 버터들이 대부분 가공 버터, 가짜라는 점에서 데카르트가 말한 “Cogito Ergo Sum(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유명한 논증을 떠올린다. 데카르트는 세상에 모든 것이 환상이고 거짓이라고 가정해 보며 세상에 과연 의심할 수 없이 확실한 것이 있는지 고민한다. 그리고 마침내 내가 속임을 당하고 있는 거라면 속임을 당하는 나는 적어도 존재해야 한다는 것, 그리고 이 모든 것을 의심하며 생각하는 나는 그러므로 존재한다는 유명한 논증에 도달하는 것이다.
작가는 일상 속 음식에서도 사고를 확장하고 새로운 시각으로 바라보려고 노력하여 음식에 철학을 입혔다. 약해져 가던 나를 뒤돌아 보았다. 같은 상황에 처했다면 작가 또한 나처럼 약해지기만 했을까? 힘듦 속에서도 철학을 색칠하여 자신에게 깨달음을 주는 방향으로 사고하지 않았을까?
생각해 보면 그렇다. 대전에 연고가 없기 때문에 새로운 삶을 사는 기분으로 출발해 볼 수 있다. 대전이 노잼 도시라고 하지만, 관광객으로 시끌벅적하지 않고 오히려 살기 좋은 도시라고 느껴진다. 석사 과정 동안 내가 맡은 것들은 무작정 부딪혀 보면서 나아가면 된다. 열심히 했지만 결과가 좋지 않아 조금 깨지고 혼나 보는 것도 좋을 것이다. 부족한 부분은 채워서 앞으로 나가면 된다. 잘 해야 되는 데 하고 걱정만 하는 것보다는 낫다. 두려움에 사로잡혀 적응도 못 하고 포기하는 사람이 되고 싶지는 않다. 힘든 기간은 나를 되돌아 볼 기회를 준다. 그 기간이 지나고 나면 항상 나는 더 성숙해져 있었다.
그 동안 동생,후배들을 이끌고 살았다. 형의 시각에서 동생들을 바라보는 관점만 가지고 있었다. 지금은 연구실 선배님들과 어우러져 살고 있다. 그 덕분에 이전보다 더 많은 것을 배우고 살고 있다. 선배님들이 맡으신 개개인의 연구 분야에 대한 지식도 얻을 수 있고, 내가 어려워하는 상황에서 조언도 구할 수 있었다. 사람들과 어울리고 친화적인 것도 내 자아이다. 하지만 새로운 곳에서 사람들과 어울리기 조금은 어색해 하는 것 또한 내 자아이다. 내가 변한 게 아니다. 원래 있던 내 자아를 좀 더 알아가게 되는 것이다.
사실 이 독후감을 쓰는 것도 많이 무서웠다. 선배님들의 독후감들을 읽어 보면, 확실한 메시지를 담으면서도 자신의 철학, 생각을 잘 녹여내는 게 느껴졌다. 나 또한 그렇게 잘 쓰고 싶지만 글을 잘 못 쓰기에 무서웠다. 하지만 이제는 생각을 바꿨다. 글을 못 써서 욕을 먹더라도 평소에 깨달은 통찰이나 생각을 녹여내 보기로 했다. 우사인 볼트도 갓 태어났을 때는 아장아장 걸었을 것이다. 글쓰기 입문자가 달리기부터 생각하는 것은 욕심이다. 급할수록 돌아가라는 말이 있다.
부족하다고 두려워 하지 말자. 천천히 시간을 두고 돌아가며 성장해 나가자. 깨지지 않으려고 발버둥치지 말자. 깨져도 좋다. 깨지면서도 나아가면 된다. 다만, 최선을 다해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역풍을 맞아 쓰러져도 결국엔 나아갈 것이다.
작가는 말한다.
“ 나는 음식에서 소금과 후추가 벌이는 마법도 믿지만, 철학이 내 삶에서 벌이는 마법도 믿는다. 그래서 앞으로도 계속해서 삶에 철학을 뿌려볼 생각이다."
조금씩 나만의 철학과 신념을 쌓아 남들에게 영감을 주는 글을 쓰고 지식을 나눌 수 있도록 할 것이다. 일상에서 철학을 입혔던 작가처럼 나도 내 일상을 다각적으로 바라보며 성장해 나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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