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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부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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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신의중
댓글 0건 조회 5,094회 작성일 21-03-02 16: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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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음의 부력

이승우

 

친구들과 오랜만에 만났을 때 먼저 자리를 뜨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 또 있을까. 술이라도 마시거나 분위기가 무르익는다면 친구들의 만류를 떨쳐내는 게 쉽지 않다. 다음날의 숙취와 피곤, 그리고 해야할 일을 생각하면 당장이라도 집에 가고 싶지만 말이다. 그런 어려운 마음은 혹시나 그들이 느낄 서운함이 두렵기 때문이리라. 최대한 어쩔 수 없다는 식으로 본인도 아주 서운함을 어필하며 먼저 집으로 나설 땐 마음의 짐이 한가득이다.

친구들은 정말 서운했던 걸까? 그들 입장에서도 서운한 마음을 표시하는 것이 나에 대한 예의의 일종이라고 생각했을 수도 있다. 결국 나도 슬프도록 서운한 건 아니지 않는가. 그렇게 떠오르나 싶었던 마음은 굳이 사사건건 따져봤자 머리만 아프다는 생각에 가라앉는다. 이 이야기는 이렇게 뜨지도 가라앉지도 못한 채 균형을 유지하다가 결국 보여지고마는 마음의 부력에 대한 이야기다.

 

아내는 자기 모르게 돈 쓸 데가 있었느냐고 물었다.

“뜬금없이 웬 돈 이야기야?” 나는 이번에도 곤두서는 신경을 애써 잠재우며 아내의 진의를 헤아리려고 머리를 굴렸다. 

"낮에 어머님이 전화 걸어와 한 말이야."

 

뜬금없이 어머니로부터 돈을 빌렸고, 그걸 갚지 않아 어머니가 아내에게 전화를 걸어왔다는 소식을 들은 ‘성식’은 주말을 맞아 아내와 어머니 집을 찾아가기로 한다. 하지만 집에 어머니는 온데간데 없었고, 핸드폰도 두고 어딜 나가신 건지 그들 부부는 날이 어둡도록 기다린다. 결국 목사님께 연락해 기도원을 가셨다는 소식을 들은 성식은 어머니가 오늘 우리가 자신을 뵈러 온다는 사실을 잊어버린걸 애써 담아두지 않는다. 결국 전화로만 소식을 드리고 다시 집을 나서기로 한다.

 

저에요, 어머니, 하고 인사를 하자, 누구냐, 성준이냐, 하는 물음이 돌아왔다. 성준은 죽은 형의 이름이었다. 순간 목에 무엇이 걸린 것처럼 숨이 막혀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중략) 사람들이 내 목소리와 형의 목소리를 잘 구분하지 못한 것은 사실이었다. 어머니조차 간혹 헷갈리곤 했다. 하지만 부언할 것이 있다. 어머니가 형의 목소리를 내 목소리로 착각하긴 했지만, 내 목소리를 형의 목소리로 착각한 적은 없었다.

 

그는 최근 세상을 달리한 형에게 일종의 죄책감을 가지고있다. 예전에 아내가 이 주제에 대해 이렇게 말한 적이 있다. 매화꽃 하고 살구꽃을 예로 들어 설명해보자고. 매화꽃을 보자마자 매화꽃이 아닌 다른 꽃일 수 있다는 생각은 거의 하지 않는다고. 말하자면 매화꽃이 더 보편적이나 대표적이라고 해야할까. 반면 살구꽃은 흔하지 않고 대개 우연히 발견되기 때문에 살구꽃은 바로 살구꽃으로 인식되지 않고 더 대표적인 매화꽃으로 오인될 수 있는 것이라고. 하지만 그 생각은 결국 자신을 더 친근하게 느낀다는 말로 번져갔고, 어머니의 깊숙한 마음속엔 자신을 형보다 더 편애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외면하지 못했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나는 어머니의 편애를 받았던 창세기의 인물 ‘야곱’이 느꼈을 마음의 짐에 대해 아내에게 이야기했다. 어머니는 야곱을 사랑했다. 어머니 ‘리브가’가 큰아들인 ‘에서’를 미워한 것은 아니었다고 생각한다. 그녀는 단지 작은아들을 사랑했을 뿐이다. 한 사람을 사랑했을 뿐인데 다른 누군가가 덜 사랑받는 일이 일어나는 것이 세상 이치다. 사랑이 차별을 만들어내는 것은 역설이다.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는 행위는 다른 누군가의 이름을 부르지 않은 것과 같은 행위가 된다.

 

큰 아들이었던 성준은 자유로운 사람이었다. 하지만 성식은 답답할 정도로 규칙적이며 틀에 박힌 사람이었다. 성식은 지원한 학과가 자기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걸 한학기가 채 지나지 않아 알았지만 군말없이 끝까지 공부했고 심지어는 좋은 성적을 받고 행정공무원이 되었다. 성준은 그러는 동안 연극과 문학에 빠져 실제 여러 편의 소설을 썼고, 가작으로 입상한 적도 있지만 이 세상을 떠날 때까지 책 한권 내지 못했다. 그러나 성준은 항상 열정적이었다. 그런 성준을 성식은 언제나 부러워했다. 성식은 그에 반해 막연하게 살아왔고 자신이 적극적이지 못한 것에 부끄러워했다. 명절에 모여 친척들이 간혹 끈기와 성실로 편모슬하에서 잘 성장해 나간 것을 치켜세울 때, 그들이 말하는 어쭙잖은 ‘출세’라는 것이 실은 삶에 대한 의욕 결여로 얻어진 것이라는 걸 부끄러워했다. 그리고 자연스레 그 광경을 보는 성준에게까지 일말의 미안함과 죄책감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어머니라고 그 죄책감이 없었겠는가. 아내는 줄곧 걸려오는 어머니의 이상한 빚 독촉 전화를 성식에게 바꿔준다. 

 

“늙은이가 어디 돈 쓸데가 있겠냐. 오해하지 말고 들어라. 성식이는 대학원도 졸업하고 결혼도 하고 집도 샀다. 물론 너도 알다시피 그 놈이 제 힘으로 다 했지. 그런데 성준이는 대학도 졸업 못하고 결혼도 안하고 집도 없이 산다. 딱해 죽겠는데 돈 달라는 소리 한 번 안했다. 딱 한번 빼놓고는. 딱 한번 지방에 연극을 하면서 지낼 때 였는데 카페를 하겠다고 도와달라고 했다. 그 때 성식이 대학원 등록금을 마련해야 할 때라 좀 난처한 표시를 했다. 내가 미쳤지. 제 풀에 기분이 언짢아져서 아마 듣기 싫은 소리를 좀 했던 것 같다. 나이가 몇인데... 언제까지 그럴래? 성식이 사는것좀 봐라... 요새 그 일이 왜 이렇게 마음에 걸리는 지 모르겠다. 성식이는 대학원도 보냈잖아요, 하는 그 목소리가 자꾸 들린다. 아니 그 애가 그런 말을 할리가 없지. 그런 말을 할 애가 아니다. 이제라도 성준이에게 카페 차릴 돈을 만들어주고 싶다. 그러니까 성식이에게 얘기를 잘 해서...(중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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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생에게도 남아있는 죄책감이 어머니에게 안 남아있을 리 없었다. 성식은 자신 못지않게 어머니가 죽은 큰아들에게 가지고 있었을 미안함에 대해 마주한다. 어머니가 끄떡없다기에 잘 이겨내고 있는 줄 알았다. 아들을 잃은 어머니의 상실감과 슬픔만을 생각했다. 하지만 상실감과 슬픔은 시간과 함께 묽어진다지만, 죄책감과 회한은 시간이 지날수록 더 짙어지고 뚜렷해진다. 그는 사랑받은 야곱이 짊어진 마음의 짐에 대해서만 생각했지, 어머니 리브가가 져야 했을 무거운 마음들은 헤아리지 못했던 것이다.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어머니는 이제 큰아들의 죽음을 헷갈리는 지경에 이르렀지만, 남아있는 죄책감은 아들의 죽음으로 인해 증폭 되어있다. 성식은 떠오르고 마는 마음을 애써 꾹꾹 눌러 담고 있는 어머니를 도와주기로 한다.

 

나는 어머니에게 전화를 했다. 어머니 저에요, 인사를 하는데 성준이냐? 물었다.

“네 성준이에요. 별일 없지요? 찾아뵌다 하면서도 시간을 못 내네요. 새로운 연극을 맡았거든요. 그런데 어머니 지난번에 내가 말한 거요. 조건 괜찮은 카페가 싸게 나왔다는 거. 그거 이번주에 계약을 하려고 하는데...”

 

묻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마음이 있는가 하면, 물어보지 않으면 영영 알 수 없는 마음이 있다. 자기 자신에게, 그리고 가까운 사람들에게 물어본다. 묻어두고 싶지만 자꾸만 드러나려고 하는 마음은 무엇인가? 그리고는 생각한다. 그것들을 굳이 묻어두지 않고 오히려 하늘 위로 올바르게 날려보낼 방법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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