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생애의 아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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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생애의 아이들
가브리엘 루아
처음 학교를 들어서던 날, 두려움과 기대감이 공존하는 어수선한 감정을 기억한다. 부모님의 품에서만 자라다 학교에서 처음으로 사회를 경험한다는 것이 혼란스러울 때다. 학교는 공부하는 곳 이전에 사회를 경험하며 그 안에서 자신의 위치를 찾고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한 방식을 배운다. 책 ‘내 생애의 아이들’은 풋내기 교사와 풋내기 학생들의 학교생활을 다루는 자전적인 소설로, 캐나다의 중부 평원에 자리 잡은 시골 초등학교를 배경으로 다문화 가정에서 자란 학생들과 풋내기 여교사의 성장 스토리다. 교사 생활 중 특히 기억에 남았던 학생들과의 에피소드로 학생뿐만 아니라 교사 역시 성장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그것이 그들에게는 낯선 세상에 내딛는 첫발이었다. 아이들은 누구나 많든 적든 처음 학교에 오는 것에 대해 두려움을 가지고 있었지만, 내가 맡은 이민자 출신 꼬맹이들 중 몇몇의 경우, 그에 더하여 학교에 오자마자 귀에 설기만 한 언어로 말하는 소리를 듣는 혼란스러움까지 맛보아야 했다.” - 9pp
이 학교가 조금 특이한 것은 학생 대부분이 다른 문화권에서 새로운 꿈을 안고 온 가정의 아이들이라는 것이다. 그들에게 학교는 단순한 배움의 자리가 아니었다. 새로운 문화를 받아들이고 타협하는 자리였다. 또한 교사도 불어가 모국어인 집안으로 태어나 영어 사용 지역에서 가르쳐야 했던 탓에 그녀의 교사 생활 역시 아이들이 학교에 가는 것 만큼이나 도전적이었다. 그녀의 교사 생활은 하나부터 순탄하지 않다. 그녀는 어린아이들의 맥락 없는 변덕을 이해하지 못한다. 세찬 비가 내려 학생들이 옷이 젖은 채 투덜거리며 학교에 왔는데, 신발은 진흙 범벅이 되어 교실이 금방 아수라장이 되었던 날이다. 아무것도 아닌 일로 그녀에게 대들려고 하며, 그들 역시 전날의 사랑받던 선생인지 잘 알 수가 없다는 눈치였다.
“나는 완전히 낙담하여 자리로 돌아와 앉았다. 그러나 내 머리 위로 날아드는 미래가 현재와 조금도 다름없이 길고 지루한 세월의 모습으로 그려지는 것이다. 이십 년 삼십 년 뒤에도 일에 찌들어 닳아진 모습으로 늘 똑같은 자리에 앉아있는 내 모습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 59pp
그 순간, 그녀는 '닐'이라는 학생에게 시선이 간다. 거의 모든 아이가 흥분해 날뛰고 있지만, 닐만은 제자리에 앉아서 그림 그리기를 하며 평화로운 모습이었다. 닐이 노래도 잘한다는 것을 알고 있는 그녀는 노래를 시키기로 한다. 그 순간 어린 시골뜨기는 마치 음악에 신들린 아이처럼 노래하기 시작했고, 몸은 생기 넘치는 그의 모습에 반응했다. 그의 노래 덕분에 반 전체가 보기 드문 평화에 젖게 되었다.
그렇게 우크라이나에서 태어나 캐나다의 시골로 건너온 닐의 노래는 시끄럽고 어수선한 교실 아이들을 자리로 돌아가 앉게 했으며, 이 사건을 계기로 닐은 마을 사람들에게도 노래를 부르며 노인들에겐 삶의 활력을 주었다. 닐의 노래가 비록 우크라이나로 쓰여진 노래일지라도 의미는 “강이 웃음과 한숨을, 회환과 희망을 바다로 싣고 가 결국 모든 것이 하나의 물결로 합쳐진다”는 내용이다. 노래라는 예술의 형태가 언어를 초월해 의미를 전달하는 기적을 경험한 교사는 닐의 어머니에게 닐의 노래가 많은 사람들이 기쁨을 느끼며 삶의 활력을 찾은 것에 대해 감사의 표시를 하고 싶었지만, 이내 말들 통해서 감정을 실토하는 것을 포기하고, 서로 밤의 소리에 귀를 기울인다. 닐의 이야기는 말과 행동을 넘어서는 예술적 형태의 공감을 보여준다. 교사 역시 때로는 포옹 또는 애정이 어린 어조가 언어만으로는 해결해주지 못하는 공감을 이끌어 낼 수 있다는 것을 배우며 성장해나간다.
학교는 만남과 헤어짐을 알아가는 자리이면서 사랑과 인식을 배우는 장소인 동시에 때로는 어린이들의 자유를 막는 감옥 같은 존재이다. 삶은 하나의 학교요, 학교 역시 그런 점에서 삶을 은유할 수 있는 공간이기도 하다. 학교 안에서 삶을 배우는 교사와 아이들에게 따뜻한 시선이 든다. 이제 막 청춘이 시작된 풋내기 교사에게도, 두려움과 호기심이 공존하는 삶의 교실에 첫발을 내딛는 어린이들에게도 학교는 서로가 서로의 거울이 되어주며 배울 수 있는 터전이요, 그들의 자양분이며, 삶일 것이다. 그렇기에 이 순진무구한 어린아이들은 어린 시절의 초상과 동시에 우리 인생을 대변하는 초상이 된다. 새싹 같은 아이들의 모습을 때론 배움의 자세로 보게 되는 이유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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