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급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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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박영근
댓글 0건 조회 545회 작성일 26-03-19 2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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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낙조를 보기 위해 방문한 보령, 그곳에서 마주한 금강 하구의 물길은 단순히 강물이 바다로 흘러드는 평범한 풍경이 아니었고 오히려 일몰보다도 더 오래 뇌리에 남는 장면이었다. 서해 그리고 금강이라는 서로 다른 두 세계가 정면으로 부딪치며 만들어내는 거대한 와류를 바라보고 있으면, 그 요동치는 물결에 손가락 끝을 살짝 담가보고 싶다는 묘한 호기심이 일다가도 이내, 온몸으로 서로를 밀어내는 물살이 만들어내는 육중한 마찰음이 주변의 모든 소리를 집어삼키는 것에 압도되고 나면 소름이 등줄기를 타고 흘렀다. 그러곤 서늘한 물길과 요동치는 소용돌이 너머, 해가 지는 수평선 아래의 고요하고 잔잔한 망망대해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모습이 겹쳐 보였다. 한 치 앞도 가늠할 수 없는 와류 속에서 앞으로만 나아가려 애쓰는 물살은, 마치 성공이라는 단 하나의 출구를 향해 서로 얽히고설키면서도 기어이 앞서나가려고 질주하는 우리의 초상 같았다. 타인의 목소리는커녕, 나 자신의 내면의 작은 울림조차 경쟁이라는 소음에 파묻혀 들리지 않는 이 사회의 궁상은 금강 하구의 격류와 조금도 달라 보이지 않았다.

 

 

“중성 부력에서는 무중력 상태처럼 자유롭지.

아빠는 도담이가 중성부력에서처럼 평온하고 자유롭게 살면 좋겠다.”

 

 하지만 급류는 냉혹하다는 생각은, 거친 소용돌이를 외부에서만 바라보았을 때 품기 쉬운 피상적인 감정에 불과했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겉으로 보기에는 서로를 밀쳐내고 얽히며 치열하게 다투는 듯한 급류의 속도, 그 내부는 거대한 바다만큼이나 고요하고 평온하다는 것을 알고 나서 말이다. 치열한 경쟁이라는 것도 사회가 일방적으로 만든 풍경만은 아니었을 것이다. 빠른 성취감을 맛보고 싶은 조급함과 편협한 나의 시선으로 간과한 것은, 급하게 흘러가는 물살 속에서 균형을 잃지 않으려면 힘으로만 버티거나 흐름을 거슬러 헤엄쳐 지나가려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를 조절하며 흐름을 이해해야 한다는 사실이었다. 너무 가라앉으면 앞으로 나아갈 힘을 잃고, 너무 들뜨면 주변의 소음으로 인해 중요한 본질을 놓칠 수 있다는 그의 말처럼, 우리는 조급함과 불안 사이에서 중심을 잡고, 내 속도를 잃지 않은 채 꾸준히 나아갈 때 비로소 더 멀리 평온한 바다를 향해 나아갈 수 있는 것이다.

 

 

“두 사람 앞에 파도가 일고 있었지만, 그들은 수영하는 법을 알았다.”

 

 예측할 수 없는 물살처럼 우리의 삶은 갑작스럽고 거칠게 우리를 흔드는 일련의 사건들로 이루어져 있다. 수많은 급류를 통과하고 나서야 비로소 평안함에 이를 수 있다는 다른 익숙한 글들과 마찬가지로 이 역시 그러하다. 하지만 해솔과 도담은 거센 파도 앞에서 같이 파도가 잠잠해지기만을 기다리지 않는다. 그들은 휘몰아치는 물살 속에서 나아가는 방법으로 스스로를 조절하며 기꺼이 침잠하는 것을 선택하며 길을 찾아낼 것이다. 그것은 마치 내가 마주했던, 나를 집어삼키려는 위협과도 같았던 서늘한 소용돌이에 겁을 먹어 급류 없는 평탄한 사회만을 쫓는 것이 아니라, 나의 호흡을 가다듬고 요동치는 와류 속으로 잠영해 유영할 수 있는 마음의 근력을 기르는 것부터 시작하는 것과 닮았다. 그렇다. 파도는 멈추지 않겠지만, 수영하는 법을 아는 우리는 이제 그 물결을 두려워하는 대신 기꺼이 몸을 맡기며 저 멀리 붉게 타오르는 낙조를 향해 나아갈 수 있다. 그날 보령의 와류가 내게 남긴 것은 사회에 대한 불만이 아니라, 어떤 격류 속에서도 나만의 고요한 망망대해를 나아갈 수 있다는 뜨거운 확신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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