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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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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승훈
댓글 0건 조회 633회 작성일 26-03-20 00: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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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처럼 사소한 것들

- 클레어 키건의 '이처럼 사소한 것들'를 읽고 -



 살면서 모두 이런 경험이 한번쯤은, 아니 꽤나 많이 있을 것이다. 분명 잘못되었다는 것을 알고, 바꿔야만 하지만 현실의 벽에 가로막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던 경험. 입을 열었을때의 위험 부담과 묵인하였을때의 평화를 저울질한 끝에 결국 아무 말도, 행동도 하지 못했던 경험이. 아일랜드의 작가 클레어 키건의 소설 ‘이처럼 사소한 것들’ 은 아일랜드 남동부의 소도시 뉴로스를 배경으로, 과거 가톨릭 수도회에서 20세기 후반까지 운영되었던 막달레나 세탁소와 얽힌 주인공 빌 펄롱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의 이러한 어두운 현실을 고발하는 책이다. ‘막달레나 세탁소’ 는 아일랜드의 가톨릭 교회에서 지은 사회시설로, 이름과 같이 세탁소의 형태로 운영되는 곳이었다. 여성을 보호한다는 명분으로 세워졌지만, 미혼모, 매춘부 또는 성폭력 피해자, 고아 소녀들이 타락했거나, 타락할 가능성이 있다는 이유로 이곳에 감금당했다. 그들은 막달레나 세탁소에서 수십 년 동안 임금도 받지 못하고 호텔, 군부대, 혹은 정부 기관의 세탁물을 처리하였으며, 굶주린 채로 착취당하거나, 매질 혹은 성폭력까지 당했다. 심지어, 한 막달레나 세탁소에서는 암매장된 신원미상의 시신 155구가 발견되기도 하였다.


 빌 펄롱은 석탄 및 목재 사업을 운영하던, 아내와 5명의 딸을 데리고 있는 39세의 가장이다. 그는 작중 마을의 수녀원에 석탄을 배달하게 되는데, 그 과정에서 그곳의 끔찍한 참상과 마주한다. 펄롱은 야외 석탄 창고에 갇힌 어린 소녀를 밖으로 꺼내주지만, 지역의 권력자인 원장 수녀는 그 소녀가 그저 정신 질환을 앓고 있을 뿐이라고 둘러대며, 그에게 입막음 용으로 현금이 든 크리스마스 카드를 건넨다. 빌 펄롱의 아내 또한, 가족을 위해 그 일은 못본척 하자고 얘기하나 결국 그는 눈을 뚫고 수녀원으로 걸어가, 석탄 창고에 다시 갇혀 있던 소녀, ‘사라’를 구출해 낸다. 그렇게, 소설은 그가 집 문턱을 넘으며 앞으로 닥칠 가혹한 결과에 대한 공포와, 도덕적 성취감은 충만함을 동시에 느끼는 내면 묘사로 막을 내린다.


 책의 제목에서 알 수 있듯이, 작가는 사소한 것들이 모여 세상에 얼마나 큰 영향을 미치는지를 보여준다. 먼저, 빌 펄롱이 소녀를 구한 모습을 통해, 인간성을 말살하는 거대한 시스템에 균열을 내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것은 영웅의 거창한 슬로건이 아니라, 일상 속의 작고 사소한 친절과 연대라는 것을 암시한다. 반대로, 수녀원의 처참한 만행을 알면서도, 자신들의 이익과 안위를 위해 외면하고 묵인하였던 마을 사람들의 모습을 통해, 이러한 작은 행동들이 눈덩이처럼 모여 거대한 악의를 떠받칠 수 있다는 점을 독자들에게 경고한다.


 작가는 아일랜드의 참혹했던 막달레나 세탁소를 배경으로 작품을 전개하였지만, 우리도 인생을 살아가면서 경중은 다를지라도 이와 같이 사회적 정의와 개인의 안위 사이에서 갈등해본 경험을 많이 해봤으리라 생각한다. 사회를 살다보면, 어두운 면을 보면서도 어쩔 수 없이 침묵해야 할 때가 많다. 하지만, 그것을 부도덕하다고 나무랄 수 있는 사람이 그리 많지는 않을 것이라 생각한다. 작중 빌 펄롱의 아내가 가족과 딸들의 안위를 걱정하듯이, 지켜야 할 것들이 있다면 쉬이 나설 수 없는 것이 사실이다. 작가 또한, 그런 아내를 부정적으로 묘사하지는 않는다.


 다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세상을 바꾸는 것은 개인의 안위와 사회적 정의 사이에서 후자를 택하는 사람들일 것이다. 그런 사람들의 아주 사소한 것들이 모여, 이 세상을 바꿨던 사례는 역사속에서 수도 없이 많이 찾아볼 수 있다. 우리나라의 굵직한 사회 운동과 사건들 또한, 그런 사람들의 희생 속에서 일어났다. 그렇기에, 나는 적어도 우리가 빌 펄롱이 될 수는 없을지라도, 그들의 앞길을 막고, 그들을 뒤에서 욕하는 사람이 되지는 않아야 한다고 생각한다. 적어도, 사회적 사건이 일어나고, 사람들이 들고 일어났을 때 왜 그들이 목소리를 내고 있고,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정확히 아는 것이 이 사회를 살아가는 사람으로서 가져야 할 자세가 아닌가 싶다. 그런 사소한 외면과 작은 묵인들이 모여 사회의 악의를 만드는 것이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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