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평등의 기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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불평등의 기원
-장자크 루소의「인간 불평등 기원론」를 읽고-
어렸을 적 나는 ‘불평등’이 얼마나 사회적으로 심각한 문제인지 인지하지 못했었다.
하지만 ‘나’가 속한 사회의 범위가 커질수록 (때로는 작아질수록), 이 문제를 인지하기 시작하였고 그에 따라 자연스럽게 교육의 중요성, 애착의 중요성 등에 대해 자연스럽게 인지하게 되었다.
다만 이는 단지 인지의 영역일 뿐, 그 뿌리에 대해선 깊이 생각해 볼 수 없었는데, 이 작품을 읽음으로써 내 손이 닿지 않는 간지러운 곳을 긁어주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었다.
이 세상에 태어난 모든 사람은 행복하고 싶어 한다.
그런데 실제로 남부럽지 않게 행복을 느끼며 사는 사람은 얼마나 되는가.
대부분의 사람들이 남에 비해 자신이 더 행복하지 못하다고 생각하며 살아간다.
재산, 명예, 혹은 사랑. 어떠한 것의 부족 혹은 다른 어떠한 형태의 불만족은 상대적으로 그것을 더 가진 자와 비교하게 만든다.
이런 불만족, 혹은 불평등은 개인 간의 존재하는 선천적인 차이로 온전히 설명할 수 있을까?
혹은 사회에 내재되어 있는 불평등이 존재하는 것일까?
저자 장자크 루소는 이런 물음에 답하려고 부단히 애쓴다.
비록 책은 계몽주의 시대의 작품이긴 하지만 현대 사회에 내재되어 있는 ‘불평등’에 대해서도 유효한 통찰을 준다.
루소는 인간의 불평등을 자연적 불평등과 사회적 불평등으로 구분한다.
자연적 불평등은 신체적 능력이나 나이와 같은 타고난 차이인 반면, 사회적 불평등은 인간이 만들어낸 제도와 구조에서 비롯된다.
그는 특히 문제의 핵심을 후자인 사회적 불평등에서 찾는다. 인간은 본래 자연 상태에서는 자유롭고 평등한 존재였으나, ‘사유재산’이라는 개념이 등장하면서 상황이 달라졌다고 본다. 이는 불평등을 향한 첫걸음이 되었고, 이것을 보호하기 위한 법과 국가가 인간의 욕구와 결합하면서 불평등은 점점 구조화된 것이다.
그는 문명이 인간을 더 나은 존재로 만들었다는 일반적인 믿음과 달리, 오히려 인간을 비교와 경쟁 속에 가두었다고 비판한다. 자연 상태의 인간은 연민과 자기보존이라는 단순한 원리에 따라 살아갔지만, 문명 사회의 인간은 타인의 시선을 의식하며 끊임없이 자신을 평가하고 비교한다. 이 과정에서 인간은 본래의 자유와 평등을 잃고, 스스로 만들어낸 구조 속에서 불행을 느끼게 된다.
이러한 루소의 주장은 철학적 사유에 기반하고 있기에 다소 급진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특히 자연 상태를 이상적으로 묘사하는 부분은 현실과 거리가 있어 보인다.
그러나 이 책의 진정한 의미는 그의 주장이 사실인가 아닌가를 따지는 데 있기보다, 우리가 당연하게 받아들이고 있는 사회 구조를 다시 생각하게 만든다는 점에 있다. 우리는 흔히 개인의 노력에 따라 결과가 달라진다고 믿지만, 그 ‘노력’조차 이미 불평등한 출발선 위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 되묻게 된다.
불평등 속에서 평등하기 위한 노력
이 지점에서 나는 교육의 중요성에 대해 생각하게 되었다.
불평등이 내재화되어 있는 사회에서 이 문제가 완전히 제거될 수 없다면, 최소한 인간이 기본적인 기회를 보장받을 수 있는 환경은 필요하지 않을까.
의무 교육과 같은 제도는 단순한 정책이 아니라, 불평등을 완화하기 위한 최소한의 장치라고 볼 수 있다.
모든 사람이 완전히 동일한 출발선에 설 수는 없지만, 최소한 출발 자체를 할 수 있는 기회는 공정하게 주어져야 하는 것이다.
또한 개인의 차원에서도 중요한 질문이 남는다.
불평등한 사회 속에서 우리는 어떻게 살아가야 하는가.
단순히 제도가 바뀌어야 하는 것뿐만 아니라 (바뀔 수 없을뿐더러) 개인 역시 타인과의 비교에서 벗어나려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점이다. 끊임없는 비교는 불평등을 더욱 체감하게 만들고, 스스로를 불행하게 만들기 때문이다.
불평등은 단순히 외부의 문제가 아니라, 우리가 살아가는 방식과도 깊이 연결되어 있다.
그렇기 때문에 사회는 최소한의 평등을 보장하는 방향으로 나아가야 하며, 개인은 그 속에서 타인과의 비교가 아닌 자신의 삶에 집중하려는 태도를 가져야 한다.
결국 이 작품은 불평등을 완전히 해결하는 방법을 제시하는 책이라기보다, 우리가 그 문제를 어떻게 바라보아야 하는지를 알려주는 책이다.
그리고 이 글을 쓰는 과정 자체가, 내가 살아가는 사회와 나 자신을 다시 돌아보는 계기가 되었다는 점에서 그 의미는 더욱 크다고 생각한다.
계몽주의 시대의 작품이 오늘날을 살아가는 우리에게까지 여전히 깊은 성찰을 제공한다는 점에서, 이 책은 지금도 유효한 ‘계몽’의 역할을 하고 있음을 느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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