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ulture Column

  • Home
  • Cultural Activity
  • Culture Column

90일 밤의 클래식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제2번에 관하여)

페이지 정보

profile_image
작성자 강대현
댓글 0건 조회 490회 작성일 26-04-19 18:48

본문

90일 밤의 클래식

-김태용 저자-



 

위 영상은 조성진 피아니스트가 연주한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이다. 재생해 두고 함께 읽는 것을 추천한다.


최근 나는 클래식에 조금 더 관심을 가져보고 싶다는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러던 중 90일 밤의 클래식이라는 책을 선물받게 되었고, 좋은 기회라는 생각에 책을 읽어보게 되었다. 이 책은 하루에 한 곡씩, 90일 동안 클래식을 따라가며 감상할 수 있도록 구성되어 있다. 작곡가의 삶, 곡이 만들어진 배경, 그리고 감상할 때 눈여겨볼 지점을 편안하게 풀어내어 클래식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도 부담 없이 읽을 수 있게 한다. 중세부터 현대까지 시대순으로 곡이 배치되어 있어 책을 읽다 보면 음악사의 흐름도 자연스럽게 머릿속에 정리된다. 또 QR코드와 감상 팁이 함께 실려 있어, 책을 읽고 바로 음악을 찾아 들으며 내용을 따라갈 수 있다는 점도 좋았다.


나는 평소에도 익숙한 클래식 선율을 들으면 막연히 좋다고 느끼는 경우는 있었지만, 그 곡이 어떤 상황에서 탄생했고 작곡가가 어떤 마음으로 써 내려갔는지까지 깊게 생각해본 적은 많지 않았다. 그런데 이 책은 음악을 듣는 데 필요한 배경을 함께 보여주기 때문에, 이미 알고 있던 곡도 전혀 다르게 들리게 만들었다. 곡 하나에 담긴 시대적 분위기, 작곡가의 삶, 감정의 흐름을 알고 나서 다시 음악을 들으면, 같은 선율도 훨씬 더 깊고 선명하게 다가온다는 것을 느꼈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상 깊었던 부분은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제2번에 대한 이야기였다. 라흐마니노프는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에게 사랑받는 작곡가이지만, 그의 음악에는 화려함과 함께 깊은 불안과 슬픔이 스며 있는 것처럼 느껴진다. 그는 1897년 교향곡 제1번이 혹평을 받으며 큰 좌절을 겪었고, 그 뒤로 한동안 작곡을 거의 하지 못할 정도로 깊은 절망에 빠졌다고 한다. 이후 니콜라이 달 박사의 치료를 받으면서 다시 작곡할 힘을 되찾았고, 그 과정에서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이 완성되었다. 이 곡은 당시 큰 호평을 받았고, 라흐마니노프는 악보를 달 박사에게 헌정하였다. 우리와 같은 대학원생들은 절망에 빠지기 쉽다. 나도 큰 절망을 느끼던 시기가 있었고 그렇기에 그의 감정에 몰입되기 쉬웠고 공감하였다.


책에서는 라흐마니노프가 니콜라이 달이라는 의사를 만나 자기암시 요법을 통해 절망을 극복했다고 소개한다. 특히 그 의사가 약 4개월 동안 “당신의 다음 협주곡은 훌륭한 곡이 될 것이다”라는 취지의 말을 반복해서 들려주었다는 내용이 매우 인상 깊었다. 그런 말이 정말 도움이 될까 싶기도 했지만, 오랫동안 좌절과 우울 속에 있던 사람에게는 누군가의 확신과 믿음이 삶을 다시 움직이게 하는 힘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실제로 몇달의 치료 끝에 라흐마니노프는 다시 작곡할 용기를 얻었고, 그 결과물이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이었다고 하니 이 곡은 그에게 다시 살아갈 의지를 되찾게 한 터닝 포인트였을 것이다.


이 곡은 총 3악장으로 이루어져 있는데, 나는 세 악장이 하나의 감정 흐름처럼 이어진다고 느꼈다. 1악장에서는 어둡고 무거운 분위기가 먼저 강하게 다가온다. 장엄하게 시작하는 피아노 화음을 듣고 있으면, 깊은 절망이 느껴지면서도 무너지지 않으려는 굳은 의지가 함께 느껴진다. 2악장으로 넘어가면 분위기가 한결 부드러워진다. 피아노가 잔잔하게 펼치고 그 위로 선율이 흐르는데, 복잡하고 엉켜 있던 감정이 천천히 풀리는 듯한 느낌을 준다. 이 악장은 아름답지만 마냥 밝지만은 않아서 더 오래 마음에 남는다. 옅은 슬픔과 따뜻한 위로가 함께 스며 있는 것 같아, 힘들거나 마음이 복잡할 때 들으면 특히 크게 와닿는 악장이라고 생각했다. 그리고 3악장에서는 앞선 어둠과 긴장을 뚫고 앞으로 나아가는 힘이 분명하게 드러난다. 앞부분에 있던 무거운 감정이 마지막에는 환희와 확신으로 바뀌어 나타나는 것 같아서, 한 사람이 긴 절망 끝에 마침내 자신을 회복해 가는 과정을 듣는 듯했다.


작곡가의 이야기를 알고 이 곡을 다시 들으니 예전보다 훨씬 더 풍부하게 느껴졌다. 예전에는 그저 웅장하고 아름다운 곡이라고 생각했다면, 이제는 그 안에서 상처를 견디는 힘과 다시 일어서려는 의지까지 함께 느껴진다. 특히 장엄한 도입부를 들을 때마다 더욱 단단해진 한 인간의 굳은 결의가 전해지는 것 같았다. 그리고 그 결의가 마지막에는 밝은 방향으로 나아간다는 점에서, 이 곡은 듣는 사람에게도 큰 위로를 준다. 힘들거나, 지치거나, 우울하다면 이 응어리들을 이 곡을 들으며 풀어보는 것을 강력히 추천하고 싶다. 라흐마니노프에게 이 작품은 절망을 이겨내고 다시 최고의 작곡가로 자리 잡게 해 준 커다란 선물 같은 곡이었을 것이다.


이 책은 내게 클래식을 조금 더 가까이 느끼게 해준 책이었다. 곡만 듣고 지나칠 때는 알 수 없었던 이야기들이 음악 안에 숨어 있었고, 그 배경을 알고 듣는 순간 감동의 깊이도 달라졌다. 그중에서도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제2번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곡이 되었다. 앞으로 마음이 복잡하거나 지칠 때 다시 찾아 듣고 싶은 음악이 하나 생겼다는 점에서, 이 책은 내게 꽤 오래 남는 선물이 될 것 같다.

댓글목록

등록된 댓글이 없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