뇌는 어떻게 변화를 거부하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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뇌는 어떻게 변화를 거부하는가
슈테판 클라인
나의 생각에 항상 반대표를 들거나, 나를 불편하게 만드는 사람들을 곁에 두어야 할까, 아니면 정신 건강을 지키기 위해 멀리해야 할까. 대학원에서 학위를 하고 다양한 배경의 사람들과 협업을 하면서 느꼈던 경험들과 긍정적인 변화들로 나의 대답은 후자에서 전자로 바뀌었다. 또한 이 책을 읽으면서 그간 궁금했던 이유들을 확인했고 생각을 스스로 정리하는 한 달이 되었다.
미국의 심리학자 로버트 자이언스는 새로운 것들은 잠재적 위협을 의미한다고 보았다. 모든 생명체는 안전을 필요로 하기에 익숙한 것이 매력을 발휘한다는 논리다. 사람들은 위험하지 않은 상황에서 접했던 자극을 기억 속에서 그때의 안전한 상황과 연결시킨다.
투자에서도 그렇듯이 대체로 수익성이 높은 레버리지나 단기간 옵션 상품들은 원금 손실의 위험이 크다. 이러한 하이 리턴을 위해 하이 리스크를 감내할 수 없다면 비록 수익성이 낮더라도 장기적으로 지수에 투자하여 위험을 분산시키거나, 원금 손실마저 두렵다면 은행 예/적금을 해야 한다. 나는 그간 어떤 사람이었는가? 누구보다 젊은 나이에 빨리 부를 축적하고 싶으면서도 내심 위험은 감내하기 싫은 이중적인 태도의 모순된 사람이 아니었을까 생각이 들었다.
하지만 자이언스 이론이 간과하고 있는 부분은, 미지의 것이 위험뿐 아니라 기회도 갖고 있다는 사실이다. 진화는 또 하나의 강력한 힘이 낯선 것에 대한 두려움과 균형을 이루도록 했다. 바로 호기심이다. 호기심은 생존에 필수적이다. 그것이 학습을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연구실에 있으면서 깨달은 중요한 사실은, 결국 나를 발전시키고 나은 결과로 이끌어주는 것은 나와 비슷한 사람이 아닌 나와 다른 관점과 성격을 가진 동료들이었다는 것이다. 특히 새로운 문제를 해결하고 현상을 해석해야 할 때 내게 익숙하고 편안한 방식보다 그들의 낯선 사고방식을 차용했을 때 의외로 어려움을 빨리 해결하는데 도움이 된 적이 많았다. 추상적으로 표현하자면, 일이 뭔가 잘 안 풀렸을 때 스스로 좁고 어두운 깊은 생각의 우물에 빠져 갇혀 있다는 것을 자각하게 되는데, 그동안 줄곧 곁에 있어왔지만 무시해왔던 동아줄을 한번 당겨봤더니 기대하지 않았던 밝은 빛을 본 적이 있었던 것이다. 일련의 긍정적인 앞선 경험들을 바탕으로, 옛 습관들과 결별하여 나아가고자 한다면 결국 당장의 불편을 견뎌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요즘이다.
… 우리는 습관을 목표 지향적인 행동으로 착각하는 경우가 너무 흔하기 때문이다. 운동을 하지 않는 사람은 자신이 운동을 싫어한다고, 땀을 흘리기보다는 집에서 뒹굴기를 좋아한다고 믿는다. 하지만 습관에 따라 행동할 때 의도 같은 것은 없다. (…중략…) 옛 습관의 지배를 자신이 원하는 것으로 미화시키는 한, 우리는 옛 습관과 결별할 수 없다. 좀비를 좀비로 인식할 때에야 비로소 좀비들이 힘을 잃는다.
세상의 문제들을 연구하고 풀어가는 것에 대해 본능적인 고집과 내면의 자존심만 세우지 않았다면, 우리는 창의적인 해결 방안을 더 이른 시기에 찾아낼 수 있지 않았을까 생각이 들었다. 저자는, 인간의 뇌가 익숙하고 편안한 것을 본능적으로 따르게 하면서도 동시에 위험하고 새로운 것에 호기심을 갖게 하는 모순된 특성이 공존하여 내재되어 있으며, 이러한 역설이 인류를 발전시키고 살아남게 만들었다고 주장한다. 책을 덮고 나는 문득 예전에 즐겨 읽던 니체의 철학에서 생각이 다른 타인과 의견이 충돌할 때 내가 가져야 할 마음가짐을 다시금 떠올리게 되었다.
인간은 스스로를 볼 때는 너무 가까운 거리에서 바라보는 반면,
타인을 볼 때는 너무 먼 거리에서 윤곽만을 어렴풋이 본다.
이 거리를 반대로 두고 차분히 타인을 관찰하면 타인은 그만큼 비난받아 마땅한 존재가 아니며,
자신은 생각만큼 너그럽게 허용할 만한 존재가 아니라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 프리드리히 니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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