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 피플 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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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 피플 존
- 정이현 -
살다 보면 문득 그런 생각이 들 때가 있다. 예전에는 사람을 만나는 게 좋았고, 누군가와 친해지는 일도 그리 어렵지 않았는데, 왜 지금은 관계 하나하나가 마치 일처럼 느껴질까 하는 생각이다. 고등학교 때 친했던 친구들은 그때는 평생 함께할 것만 같았고, 좋아했던 사람과의 관계도 그 순간만큼은 진지하고 소중하게 느껴졌다. 그런데 시간이 지나고 나이를 먹으면서, 관계는 생각보다 쉽게 변하고 사람의 마음도 오래 같은 자리에 머물지 않는다는 걸 자꾸만 알게 된다.
친한 친구라고 믿었던 관계도 어느 순간 미묘하게 멀어지고, 연인 관계 역시 시간이 흐르면 단순한 감정만으로는 유지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깨닫게 된다. 특별히 큰 일이 있었던 것도 아닌데 문득 “내가 이 관계를 계속 붙잡고 있어야 하나?” 싶은 순간이 찾아온다. 예전에는 사람을 잃는 것이 더 두려웠다면, 이제는 사람에게 지치는 일이 더 많아진 것 같다.
『노 피플 존』이라는 제목도 그런 점에서 무척 현실적으로 다가왔다. 처음 제목을 봤을 때는 자연스럽게 ‘노 키즈 존’이 떠올랐고, 그래서 더 와닿았다. 그런데 가만히 생각해 보면 사실 사람을 더 지치게 만드는 건 아이들보다도 오히려 어른들일 때가 많다. 공공장소에서 제멋대로 행동하면서도 미안해할 줄 모르는 사람들, 남에게 민폐를 끼쳐 놓고도 오히려 당당한 사람들, 선을 넘고도 그걸 불편해하는 쪽이 예민한 것처럼 만들어버리는 사람들. 어쩌면 사람들을 더 지치게 만드는 건 철없는 아이들이 아니라 그런 어른들 아닐까 싶었다. 그래서 ‘노 피플 존’이라는 말이 단순히 누군가를 배제하자는 뜻이라기보다, 사람에게 너무 많이 지쳐버린 마음에서 나온 표현처럼 느껴졌다.
나 역시 살면서 인간관계에 대한 회의를 느낀 적이 많았다. 한때는 정말 가깝다고 생각했던 친구와 시간이 지나면서 자연스럽게 멀어지기도 했고, 좋아했던 사람과의 관계도 결국 기대와 실망이 반복되면서 예전 같지 않게 되는 경험이 있었다. 그런 일을 몇 번 겪고 나면 사람을 새롭게 만나는 일도 더 이상 예전처럼 가볍게 느껴지지 않는다. 잘해보고 싶다가도 괜히 상처받기 싫어서 먼저 거리를 두게 되고, 너무 가까워지는 것 자체가 부담스럽게 느껴질 때도 있다. 결국 사람을 좋아하면서도 동시에 피하고 싶어지는 마음이 생긴다.
이상한 건 그렇다고 해서 혼자 있는 게 마냥 편한 것도 아니라는 점이다. 사람 때문에 지치면서도 또 사람을 찾게 되고, 관계가 힘들다고 느끼면서도 완전히 끊어내지는 못한다. 이 책에 나오는 인물들도 어딘가 그런 상태에 놓여 있는 것처럼 보였다. 관계 속에서 불편함을 느끼고, 때로는 벗어나고 싶어 하면서도 끝내 완전히 떠나지는 못하는 모습. 그것이 특별한 상황이라기보다, 그냥 지금을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의 자연스러운 모습처럼 느껴졌다.
책을 읽으면서 좋았던 점은, 이런 감정을 굳이 포장하지 않는다는 데 있었다. 인간관계는 소중하다는 말은 어디서나 쉽게 들을 수 있지만, 그만큼 사람 때문에 지치는 순간에 대해서는 잘 이야기하지 않는다. 그런데 이 책은 그 피로감과 거리두고 싶은 마음을 있는 그대로 보여준다. 그래서 읽는 동안 “나만 이렇게 느끼는 게 아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 책은 결국 인간관계를 어떻게 해야 한다는 답을 주진 않는다. 대신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애매한 감정들을 조용히 드러내 주었다. 사람을 좋아하지만 동시에 피하고 싶고, 가까워지고 싶지만 상처받고 싶지는 않은 그 모순적인 상태를 있는 그대로 인정하게 만든다는 점에서, 이 책은 내게 충분히 의미 있는 작품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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