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왕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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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나 한 번쯤 제목을 들어봤을 어린 왕자는 반드시 읽어보아야 할 권장 도서로 알려져 있으며, 이 책을 읽어보지 않은 사람을 찾는 것은 쉽지 않을 것이다. 하지만 신기하게도 유년의 뜰을 지나, 어느 정도 세상의 무게를 아는 어른이 된 이후, 이 책을 다시 펼쳐 든 사람을 마주하는 것 또한 의외로 어려운 일일지도 모르겠다. 아마도 나를 비롯해 많은 이들에게 어린 왕자는 어린아이들의 전유물인 동화라고 각인되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난 3월 이후, 30일이라는 시간을 들여 마주한 어린 왕자는 결코 어린아이들만을 위한 세계가 아니었다. 오히려 사랑을 받기만 하고 받는 것에 익숙했던 어린 시절을 지나, 누군가에게 사랑을 건넬 수 있는 어른이 된 우리에게 더욱이 절실한 필독 도서가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 정도였다.
정확히 언제인지는 기억나지 않지만, 엄마와 어린 왕자를 읽고 우는 와중 왜 우냐는 엄마의 물음에 어린 왕자가 너무 불쌍하다고, 장미가 너무 얄밉다며 엄마의 품에서 대성통곡했던 기억이 있다. 그런 나를 토닥여주며 엄마는 웃으면서 그럴 수 있다고 하시면서도, 나중에는 다르게 느껴질 수도 있을 것이라고 말씀하셨다. 아마도 당시의 나에게 장미는 그저 상대를 힘들게 하는 미성숙한 존재로 비쳐졌었나 보다. 하지만 이번에 본 장미는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존재 그대로의 본질에 가장 충실했던, 누구보다 능동적이고 성숙한 존재였다. 스스로 이동할 수 없는 장미에게 어린 왕자를 향한 투정과 가시는, 그가 처한 한계 안에서 할 수 있는 최선의 자기표현이자, 자신의 성장에 온 힘을 다하고 있다는 진실한 신호였을지도 모르겠다. 타인의 시선에 맞추어 자신을 꾸며내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운명과 한계를 담담히 받아들이면서도 끝내 자기 자신으로 남으려는 그 태도는 결코 가벼운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장미를 들여다보며, 성숙이란 단순히 상처를 주지 않는 부드러움만을 뜻하는 것이 아닐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하게 됐다. 성숙이란 자신의 불완전함과 고독까지도 감춘 채 꾸며내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안고서도 자신이 지향하는 삶의 방향을 끝까지 놓지 않는 태도일 것이기 때문이다. 나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어린 왕자에게 드러내면서 감당할 수 있겠느냐고 묻는 장미의 모습이 당시에는 허영심이 많고 서툰 태도처럼 보였지만 그것은 어찌 보면 단단한 자존감을 바탕으로 한 고백일 수도 있지 않았나 싶다. 어린 왕자를 통해 자신의 결핍을 채우려던 것이 아니었기에 자신과 행성으로부터 떠나려는 어린 왕자를 붙잡기보다 보내줄 수 있었던 것이며, 홀로 남겨진 뒤에도 덤덤히 자신의 운명을 받아들일 수 있을 것이다. 어쩌면 스스로를 온전히 지탱하는 성숙한 존재가 빚어내는 사랑이 본질적인 울림이 될 수도 있겠다.
장미를 통해 얻은 이러한 생각은 새로운 나의 감상이 결코 고정된 것이 아님을 시사하기도 한다. 어린 시절 얄밉게만 보이던 장미가 이제는 성숙의 상징으로 다가왔듯, 앞으로 마주할 또 다른 시기의 나는 여우로부터 숨겨진 고단함을 읽어내거나 어린 왕자의 방황 속에서 새로운 질문을 찾아낼지도 모른다. 우리가 매번 다른 페이지에서 멈춰 서게 되는 이유는 이 책이 변해서가 아니라, 우리 자신의 삶이 시시각각 변하며 그 안에 장미와 여우, 그리고 어린 왕자의 면모를 모두 품고 살아가기 때문이며, 우리는 살면서 필연적으로 누군가에게는 지켜야 할 자존감을 가진 장미가 되고, 또 누군가에게는 관계의 책임을 가르치는 여우가 되며, 그 사이를 유랑하며 사랑을 배워가는 왕자가 되기도 하기 때문이다. 나름대로 나의 인생과 버무려고 아우러진 어린 왕자는 나에게 우리는 누군가에게 장미였고, 또 다른 누군가에겐 여우였을 것임을 일깨워주었다. 그리고 그 둘의 사이에서 서툴게 발을 내딛으며 사랑의 본질을 배워가는 어린 왕자 역시 언젠가 또 다른 우리 모두의 자화상이 될 수 있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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