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개츠비의 위대하지 않은 삶에 대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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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개츠비의 위대하지 않은 삶에 대하여
F. 스콧 피츠제럴드의 『위대한 개츠비』는 아마 문학작품을 잘 읽지 않는 사람들이라고 해도 한 번쯤은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화려한 인물들에 대한 이야기를 다루고 있기 때문에 그 화려함에 대한 서술이 아름답게 다가온다. 그러나 그 화려함은 사실 신기루였다는 것을 소설의 후반부에 가서야 깨달았다. 나는 언제나 이 소설의 제목이 마음에 들었다. 엄청난 부자인 주인공 제이 개츠비에 대한 이야기를 서술하고 있고 제목마저 ‘위대한 개츠비’라고 묘사하고 있지만 과연 개츠비는 정말로 위대했을까? 나는 그 이야기를 해 보고자 한다.
소설의 이야기는 1920년대 미국의 시대적 배경인 재즈 시대를 묘사하고 있다. 닉 캐러웨이라는 인물이 뉴욕과 가까운 웨스트에그에 거처를 구하면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그의 거처 옆에는 아주 호화스러운 대저택이 하나 있었는데, 그 곳의 주인인 제이 개츠비를 만나게 된다. 개츠비는 화려한 파티를 자주 열면서 사치를 부리고, 유명인사들과 부자들은 한 푼도 내지 않고 그 파티를 즐긴다. 개츠비에 대해서는 온갖 소문들이 무성했으나 정작 개츠비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없다. 닉은 개츠비와 친해지면서 그가 가난했으나 부정한 어떤 사업을 하면서 부를 쌓게 되었다는 것을 알게 된다. 그러던 와중 개츠비는 닉에게 데이지라는 여성과 조용히 만나고 싶다는 부탁을 하게 된다. 데이지라는 여성은 닉의 사촌이었으며, 톰 뷰캐넌이라는 남자와 결혼을 한 상태였다. 닉은 그가 왜 데이지를 만나고 싶어하는지 의아해한다. 알고 보니 개츠비는 부잣집 딸인 데이지와 어릴 적 사랑에 빠졌지만, 개츠비의 가난 때문에 이뤄지지 못하고 헤어지게 된다. 개츠비는 그 동안 전쟁에 나가고, 데이지는 그 사이 태생부터가 완전히 부자인 톰을 만나 결혼하게 된다. 개츠비는 그 동안 전장에서 돌아와 검은 사업을 하고 엄청난 돈을 벌어 동부로 돌아온다. 그는 언젠가 그의 파티에서 데이지를 만나길 바라면서 그녀를 그리워하며 매일 화려한 파티를 연 것이었다. 데이지 역시 그를 잊지 못하지만, 그녀는 부에 대한 욕망을 버리지 못하고 톰과 결혼해버리고 만다. 그와 재회한 데이지는 그와 다시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 사실을 은연 중에 알게 된 톰은 개츠비를 헐뜯으며 굉장히 싫어하는데, 사실은 톰 역시 자동차 정비소 주인의 아내인 머틀과 불륜 관계였다.
그러던 와중 어느 날 개츠비, 데이지, 톰, 닉, 그리고 닉의 연인 베이커는 한데 모여서 뉴욕에서 다같이 위스키를 마시며 시간을 보내게 된다. 톰과 개츠비는 계속해서 신경전을 벌이다가 톰이 데이지와 개츠비의 관계를 알고 있다고 소리를 지르며 허공에 맴돌던 감정싸움이 시작되게 된다. 둘은 데이지가 당신만을 사랑했다고 서로 주장하는데, 데이지는 여기서 현재는 개츠비를 사랑하지만 한때는 톰도 사랑했다고 이야기를 한다. 셋은 격앙된 상태에서 다시 이스트에그로 돌아가게 되는데, 이 때 데이지와 개츠비가 차를 몰고 먼저 같이 떠나게 된다. 이 때 머틀의 불륜을 알아챈 윌슨이 그녀와 싸우다가 머틀이 도로로 도망을 나와 도움을 청하려고 하는데, 미처 보지 못한 개츠비의 차가 그녀를 치고 만다. 개츠비는 재빨리 빠져나와 데이지의 집까지 간다. 부인을 잃고 정신을 반쯤 놓은 윌슨은 용의자를 찾고 그런 그에게 톰은 뺑소니 차의 주인은 개츠비라고 한다. 그러나 정작 차를 몰은 사람은 데이지였다. 뺑소니 범인이 곧 불륜상대이자 범인이라고 생각한 윌슨은 개츠비를 총으로 쏴 죽이고 자신도 자살한다. 이후 열린 개츠비의 장례식에서 파티에 왔던 수많은 사람들은 아무도 오지 않고 닉만이 자리를 지키는 쓸쓸한 장면이 묘사되면서 이야기는 막을 내린다.
이 소설은 1920년대 대공황 이전 호황기를 누리던 미국의 물질 만능주의를 보여주고 있다. 당시 미국은 경제부흥기를 맞아 풍요로웠지만, 한 편으로는 극한의 물질주의가 팽배한 시대였다. 돈으로 모든 사회적 가치의 기준을 정의하고, 사회 계층을 나누었던 시기였다. 화려하기 짝이 없는 개츠비의 파티라든가, 어릴 적부터 아주 부유하게 자라고 거칠고 오만한 성격을 가진 톰을 보면 향락에 물든 당시 시대상을 아주 잘 보여주고 있다. 돈이 차고 넘쳐 오히려 그 안에서 공허함을 느끼고 환멸을 느끼는 사람들은 그것으로부터 도피하고자 향락에 빠진다. 이러한 세대를 로스트 제너레이션이라고 하는데, 이것을 주인공인 개츠비를 통해 묘사함으로써 아주 잘 나타내고 있다. 물질적인 것으로 그가 원하는 것을 잡으려 했으나 허망하게 죽음을 맞이한 개츠비의 모습은 당시 가난한 미국 청년들의 꿈이 개츠비처럼 허무하게 무너지는 것을 투영해서 보여준다는 생각이 들었다. 소설 속 이 구절은 개츠비의 허망한 죽음을 예술적으로, 그리고 치명적이게 묘사하고 있다.
한쪽 끝에서 흘러나오는 신선한 물이 다른 쪽 끝에 있는 배수구를 통해 빠져나갔기 때문에 물은 눈에 띄지 않을 정도로 희미하게 흐르고 있었다. 거의 물결이라고 할 수 없을 정도의 잔물결들로 인해, 개츠비를 실은 매트리스가 불규칙적으로 흔들리고 있었다. 수면에 거의 파장을 만들지 못할 작은 바람 한점만으로도, 예정에도 없던 화물의 예정에도 없던 진로를 방해하기에는 충분했다. 낙엽 더미가 매트리스와 부딪치자 컴퍼스로 그린 듯한 붉은 원이 물 위에 생겼다.
또한 개츠비는 과거에는 가난했으나 시대적 특징을 잘 이용하여 부를 얻게 된 신흥 부자이고, 톰은 기존 세습 부자이다. 작가는 이 둘의 대립구도를 설정하여 서로 불신하고 혐오하는 모습을 보여줌으로써 졸부와 세습 부자의 갈등을 보여준다. 이것 역시 앞서 이야기한 물질 만능주의의 또다른 얼굴을 보여주는 셈이다. 돈이라는 것이 곧 사람간의 불신과 화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어떤 사람들은 이 소설에서 개츠비의 사랑에 중점을 두고 보기도 한다. 개츠비는 이야기 속에서는 오랜 시간동안 그리워하고 사랑한 데이지만을 바라보고 그녀를 위해서는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는 로맨틱한 남자로 그려진다. 그러나 나는 개츠비의 사랑이 그렇게 로맨틱하게 보이지 않았다. 과연 결혼한 데이지를 부로 유혹해서 재회하려는 그의 사랑이 순수하고 아름다운 걸까? 그리고 데이지는 남편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개츠비를 현혹하는 면모를 보여주는데, 이것이 과연 로맨틱한 사랑으로 볼 수 있을까? 개츠비가 사랑한 여인인 데이지는 소설의 시대적 배경인 1920년대, 곧 ‘재즈시대’를 대표하는 전형적인 여성상을 보여주고 있다. 데이지의 치명적일 만큼 아름다운 외모, 기교가 섞인 목소리와 태도, 그리고 아이 같은 천진난만함은 재즈 시대에서 보여지는 어린아이같이 천진한 백치미와 사치를 좋아하고 돈을 좋아하는 여성상을 그대로 재현하고 있다. 그녀는 개츠비를 사랑했지만 부를 잃지 못해서 톰과 결혼하고 정서적으로 의지하려고 한다. 그러나 개츠비가 돌아오면서는 우유부단한 면모만을 보여준다. 소설의 이 구절은 데이지의 면모를 잘 나타낸다.
“아, 당신은 너무 많은 걸 원해!” 그녀가 개츠비에게 소리를 질렀다. “지금은 당신을 사랑해. 그걸로 충분하지 않아? 지나가버린 일들을 어쩌라는 거야…….” 그녀는 힘없이 흐느꼈다. “한때는 톰을 사랑한 적도 있었어. 그렇지만 당신 역시 사랑했어.”
이런 데이지의 불확실한 언행은 결국 마지막에서도 보여진다. 개츠비가 자신 때문에 누명을 쓰고 죽임을 당하고 나서까지도 끝내 얼굴 한번 보이지 않았던 그녀의 태도는 대체 무엇이었을까. 그녀의 모습에서는 어린아이 같은 천진난만함을 넘어서서 억지로 우기는 무논리로 자신의 모습을 정당화시키려는 게 보인다고 느껴졌다. 그러나 이러한 그녀의 묘사에도 불구하고 나 역시 소설을 읽으면서 데이지의 매력에 빠진다. 무서울 정도로 천진난만하면서 꿈꾸듯이 말하는 그런 그녀의 모습에 내가 넘어가버렸듯이 개츠비도 그렇게 그녀에게 빠진 걸까. 나조차도 데이지의 매력을 흠뻑 느낀 것을 보면 작가가 표현하고 싶었던 데이지를 소설 속에서 제대로 묘사를 한 것이 틀림없다. 어쨌거나 나는 검은 돈으로 부를 만들어 데이지를 데려오려 한 개츠비나, 결혼 따위는 상관하지 않고 내키는 대로 행동하면서 개츠비를 현혹하려는 데이지나 다 똑같이 보였고, 진정한 사랑으로 보이지 않았다. 그들은 그저 본인이 가장 원하는 욕망을 충족시키기 위해 원하는 대로 행동한 것뿐이다.
이 책의 화자인 닉 캐러웨이는 여기 나오는 모든 인물들 중 가장 중심이 있는 사람이다. 닉은그저 별다를 것 없는 1920년대 초반의 일반적인 부류의 사람 중 한명이다. 그러나 닉은 개츠비의 소문들에 대해 진실 여부가 아닌 그저 지나가는 이야기로 받아들인 유일한 사람이다. 개츠비의 저택에서 열린 파티에 온 수많은 사람들은 오로지 이 화려한 파티를 연 개츠비라는 남자가 얼마나 큰 부를 가지고 있나 하는 것에만 관심이 있었고, 그에 대해 흘려 들은 정보로 그와 잘 아는 체 하기도 했다. 하지만 닉은 개츠비에 대해 떠도는 허무맹랑한 말들에 개츠비를 재거나 따지지 않았고, 그의 부를 이용해 성공의 끈을 잡아보려고 하지 않았다. 오히려 어떠한 목적을 가지고 그에게 접근한 이는 개츠비 스스로였다. 이처럼 그는 어두운 방법으로 부를 축적한 개츠비가 자신의 신기루에 대한 마음을 털어놓으며 도움을 요청할 수 있을 만큼의 사람이었다. 다들 자신의 의견과 부와 명예에 대한 생각만으로 치장한 이 작품 속에서 등장하는 유일한 청취자 역할을 하고 있는 것이다. 닉은 이 이야기 속에서 유일하게 개츠비의 이야기를 들어준 사람이었고, 유일하게 진실을 듣고, 진실을 인정했던 사람이었다고 생각한다.
맨 처음 언급했듯이, 나는 이 책의 제목에 대해서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위대한 개츠비의 추락과 초라한 몰락을 그리면서 ‘위대한 개츠비’라고 부르다니, 이것은 모순이 아닌가? 모순되는 이 제목의 표현을 보면서 나는 다시금 인생에서 중요한 것이 무엇인지에 대해서 곱씹어 보게 되었다. 사실 20세기 지금의 사회도 이 때와 크게 다르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우리는 무엇이 중요하고 무엇이 먼저인지 깨닫지 못한 채 살아가고 있는 순간이 많다. 소설 속 인물들은 결국 포장된 사랑, 거짓된 감정, 의미 없는 부를 좇다가 공허한 결말을 맞이한다. 그들이 진정 원하는 것은 찾지 못하고 눈에 보이는 것만을 잡으려 하다가 그렇게 된 것이다. 우리는 이러한 것에 휩쓸리지 않고 자신의 중심을 찾아서 똑바로 선 다음, 진정으로 중요한 가치가 무엇인가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것은 곧 나 자신을 찾는 것이고, 나 자신을 의미 있게 만들어 주는 것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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