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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기독교와 요세푸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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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성호
댓글 0건 조회 5,821회 작성일 20-10-17 10: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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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기 기독교와 요세푸스


  과거에는 언론인들이 객관적인 사실만을 전달한다는 미신이 있었다. 언론인들은 스스로를 통상적인 인간적 편견을 초월하는 조사자요 탐구자라 간주하며, 자신의 사견 없이 정보를 소통하고 독자들에게 전달하는 역할만을 한다 믿었다. 그러나 지난 몇십 년간 드러난 언론사들의 편향적인 (특히 정치에서) 보도를 통해 이러한 이상에서 벗어난 것이 너무도 명확해졌다. 2015년 롤링스톤지의 매트 태비는 "객관적인 저널리즘이란 환상이다"는 특집 기사를 뉴욕 타임스에 썼다. 그는 자신의 평론을 통해 언론 매체 소비자의 압도적 다수는 편향성이 만연하며, 이는 언론인들이 객관성을 확보하는 데에 실패한 것으로부터 기인한다 평가했다.


"우리는 이제 사람들이 언론인의 기사를 믿을 것인가를 결정하기 전에

그걸 쓴 언론인이 누구인가를 먼저 알고 싶어 하는 사회 속에서 살고 있다."

- 객관적 저널리즘은 환상이다 중 -


 언론과 마찬가지로 과거에는 객관적인 사실만을 전달한다고 믿어졌지만, 현대에 와서는 이에 대한 의문이 제기되고 있는 분야가 있다. 바로 우리가 연구하고 있는 과학과 공학이다. 예로부터 과학자들, 특히 비생명적인 현상을 다루는 물상과학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편향성을 초월해 있다는 시각이 있었다. 그러나 최근 과학의 사회학 및 과학의 경제학 분야에서의 연구를 통해 과학자들과 연구자들마저 그들 자신의 개인적인 편견의 효과들에서 벗어나지 못함이 드러나고 있다. 정부나 기업의 지원금을 받거나 특정 공공 정책에 의존할 수밖에 없는 연구자들이 물질적인 욕구에 전혀 영향받지 않고, 순수하게 진실만을 추구하고 있다고 믿기 위해서는 초인적 수준의 순진함이 필요할지도 모른다. 그리고 아무리 물질적인 욕구로부터 자유로운 연구자라 할지라도, 자신의 연구 결과를 해석하는 과정에서 그 사람이 가지고 있는 세계관이 그 결과에 영향을 줄 수밖에 없기에, 온전한 진실만을 전달하는 연구란 불가능에 가깝다고 봐도 무방하다.


 결국 객관성을 확보한 이 시대의 진정한 지식인으로 거듭나기 위해서 우리는 외부로부터 온 정보의 객관성을 의심해야 한다. 그리고 정보를 받아들이는 수단을 일부 매체로 한정하지 않고, 최대한 다양한 시각에서 정보를 받아들이도록 노력을 해야 한다. 수천 수만 가지 정보가 매초에도 지속해서 생산되는 초정보 사회에서, 중요한 정보를 직접 얻을 시간도 능력도 부족한 일반 시민들은 정보의 출처와 객관성을 분석할 시간적 여유가 없다. 그렇기에 다양한 시각의 해석을 받아드리고 우리의 생각을 유연하게 만들도록 노력할 필요가 있다.


 개인적으로 이러한 노력이 가장 많이 필요한 분야가 종교라고 생각한다. 종교는 일반적으로 경전이라는 출처를 토대로 세계관을 정립하게 한다. 종교에서 경전은 그 어떤 것보다 객관적이라 믿어지고, 절대적으로 인정 받기도 한다. 그러나 나는 성경에 적힌 내용이 한 토시도 틀리지 않았다고 주장하는 '성경무오설'을 지지하지 않는다. 일부 근본주의자들은 경전에 적힌 내용을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며 경전을 제외한 다른 모든 지식을 거부하는 배타적인 성향을 보여준다. 이는 신이라는 초월적인 존재를 경전의 논리에 가두는 행위이며, 신학의 발전을 저해하고 스스로 자가당착에 빠지게 만드는 걸림돌이다. 그래서 나는 성경에 적힌 모든 내용은 문자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단, 오히려 성경비평학을 통해 시대상과 저자의 의도를 파악하고, 현재 나에게 주어진 상황과 환경에 맞게 적용하는 것이 알맞은 종교인의 자세라 생각한다.


 그런 의미에서 요세푸스의 기록은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는 매우 귀중한 사료이다. 성경비평학을 토대로 성경을 공부하면서 기독교인들은 역사학자 요세푸스의 기록을 참조하여 고대 팔레스타인 지역의 문화와 역사를 이해하였고, 이를 기초로 성경의 사건들을 해석하였다. 그러나 일반 기독교 성도들은 요세푸스의 기록을 통해 말씀을 해석하면서도, 막상 요세푸스가 어떤 사람이었고 어떤 시대적 배경을 가진 인물인지에 관한 충분한 공부가 없었다. 역사학자로서 최대한 객관적인 저서를 작성하려 노력했던 요세푸스지만 그의 기록도 주관적인 의견과 자의적인 해석으로부터 온전히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에, 요세푸스의 저서를 인용하기에 앞서 그의 인생과 철학에 대한 충분한 이해가 뒷받침되어야 한다.


 요세푸스는 그의 아버지는 유대인 중 엘리트 제사장 가문이었고, 어머니는 하스몬 왕족 가문 출신으로 요즘 말로 하면 금수저 집안이었다. 그는 어린 시절부터 뛰어난 학식으로 정평이 났으며, 16세에 유대교의 3대 종파인 바리새파, 사두개파, 에세네파가 요구하는 모든 과정을 마치고 바누스라는 금욕주의자 밑에서 3년간 광야 생활을 하였다. 성인이 된 후 예루살렘에는 반로마 운동이 일기 시작했다. 전쟁을 반대했던 요세푸스는 상류층의 일원으로서 그의 의지와는 상관없이 어쩔 수 없이 저항군 지휘관으로 추대되었고, 로마인과의 전투에서 패배 후 포위된 상황에서 로마인의 손에 죽을 수 없다며 자결하는 동료들을 두고 스스로 로마에 투항해버린다. 갈릴리 총독 베스파시아누스 앞에 끌려간 요세푸스는 베스파시아누스가 로마의 황제가 될 것이라 예언하여 베스파시아누스의 마음을 사게 되고, 실제 베스파시아누스가 황제가 되면서 요세푸스는 로마 황제의 총애를 받는 사람으로 특권을 누리게 된다.


 로마 황제라는 든든한 후원자를 얻게 된 요세푸스는 외적으로는 평안한 삶을 얻었지만, 심적으로는 상당히 고통스러웠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자신이 유대인 동족들을 배신한 것에 대한 죄책감에 시달렸으며, 자신의 동족들이 로마인들에게 차별받지 않고, 유대의 문화와 전통이 잊히지 않도록 유대의 역사를 기록하는 일에 매진하였다. 요세푸스는 "유대고대사"와 "유대전쟁사", "요세푸스 자서전" 등을 남기며 현대인들에게 고대 유대인들의 문화와 역사, 종교적인 전통과 예식들, 기원후 1세기의 팔레스타인 지역과 로마의 정서와 상황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을 준다. 그러나 요세푸스의 기록을 읽을 때 정보의 객관성을 유지하기 위해 3가지 주의해야 할 점이 있다.


 첫째는 요세푸스가 자신의 기록을 통해 로마인들에게 유대인들을 변호하려 했다는 점이다. 그는 70년경에 있었던 제1차 유대-로마 전쟁의 참상을 목격했고, 끈질기게 저항했던 유대인들에 대한 로마인들의 반감이 거셌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그는 유대인들이 로마의 문화와 종교를 거부하고 자신들의 순수성을 지키려 하는 역사적 배경과 유대교 속에 있는 인본주의-헬레니즘 적인 요소를 강조하여 로마인들이 유대인들에 대해 가지고 있던 오해를 불식시키고 유대인들을 친숙하게 보이게 만들려 노력했다. 일례로 요세푸스는 세례 요한을 설명할 때 그가 외쳤던 종말론적인 메시지나 메시아에 대한 내용을 제외하고, 요한이 베풀었던 세례의 의미도 영적인 속죄가 아닌 육체의 정결만을 위한 것으로 축약했다. 요세푸스는 이를 통해 세례요한이 그리스의 철학자들과 같은 선상에 있는 철학자였으며, 유대교적인 색채가 뚜렷한 예언자가 아닌 보편적인 선을 추구하는 사상가로 묘사한다. 이러한 예를 통해 요세푸스는 세례요한과 그에 동조했던 백성들의 움직임을 단순히 도덕적인 가치를 추구하는 윤리 정화 운동의 성격으로 제한하여 로마인들에게 유대인들의 모습을 친숙하게 포장하려는 모습을 보인다.


 둘째로는 요세푸스가 그의 저서에 로마를 향한 민중 봉기의 끝에는 파멸이 있음을 경고하는 메시지를 담아 유대인을 포함한 로마 내 소수 민족의 정치적인 움직임을 제한하려고 시도했다는 점이다. 요세푸스는 본인 스스로가 로마 친화적인 인물이었고, 제1차 유대-로마 전쟁의 지도자 격으로서 그 전쟁의 참상을 보았기 때문에, 이러한 형태의 반란의 움직임이 다시 유대에서 일어나기를 원치 않았다. 요세푸스는 애초에 자신을 구해주고 황제가 된 베스파시아누스가 메시아적인 인물이라 믿고 있었고, 유대인들이 로마 밑에서 순복하는 것이 종교적으로도 옳은 일이라 믿었다. 이러한 그의 주장을 강조하기 위해 요세푸스는 세려요한의 사역과 예수의 사역, 드다의 운동 등이 지도자 격 인물의 죽음으로 끝난 이유를 그들이 군중을 이끌고 정치적인 움직임으로 오해를 살 행위를 했었기 때문이라 주장하였고, 이러한 형태의 운동이 지속하지 않도록 권고하였다.


 마지막으로 요세푸스가 수집한 정보의 출처가 객관적인가를 확신할 수 없다. 요세푸스는 저서를 기록하는 과정에서 자신이 직접 경험하지 않은 사건에 대해서는 외부로부터 정보를 수집하였고, 이 과정에서 객관성이 훼손되는 일도 있었다. 일례로 요세푸스가 예수에 대해 기록한 내용 중 일부는 성경 중 누가복음과 사도행전의 저자인 누가가 사용하는 단어와 문체가 자주 사용되는 것을 볼 수 있다. 물론 누가 또한 의사로서 당대 고등교육을 받았던 사람이기 때문에 요세푸스와 사용하는 단어의 수준이 비슷할 수는 있다. 하지만 '끌어드리다'나 '지혜로운 사람'을 묘사하는 헬라어와 같이 일반적인 저서에 흔히 사용되지 않는 많은 단어를 누가와 요세푸스는 공유하고 있다. 이를 통해 요세푸스가 예수에 대한 정보를 누가 공동체를 통해 얻었을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기독교인의 관점에서 작성된 4 복음서와 비교할 수 있는 객관적인 사료를 찾고 있는 신학자들에게 이러한 사실은 다소 치명적일 수 있다. 그 때문에 누가와 요세푸스만이 공유하고 있는 사건에 대해 객관성을 가지기 위해서는 다른 역사가의 저서를 참고할 필요가 생긴다.


 글은 사람이 작성하고, 사람은 그 자신이 가진 세계관을 바탕으로 글을 쓰기 때문에 글은 온전히 객관적일 수 없다. 언론, 과학, 역사, 종교에서 다양한 정보 출처를 가지지 않고 편향적인 출처를 통해 정보를 모으면 그 사람은 편향된 시각으로 세상을 바라보기 십상이다. 인터넷을 통해 공유되는 데이터의 양이 많고 데이터를 찾는 것보다 데이터를 선별하는 것이 더 중요해진 정보 과부하 시대에는 정보의 객관성을 확보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우리가 만약 인터넷상에서 정보의 객관성을 확보하는 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자연스레 우리와 생각이 일치하는 정보 위주로 받아들이게 되고, 결국 폐쇄적인 커뮤니티를 형성하고 무리를 지어 서로 반목하는 행태를 부리게 된다. 인터넷에서 보이는 다양한 폐쇄적인 커뮤니티들은 정치, 경제 정책, 성차별, 지역갈등, 재산 분배, 종교적 신념 등 다양한 정보에 대해 편협한 시각을 공유하고, 자신들이 인정하지 않는 정보는 모두 가짜뉴스로 치부한다. 이러한 소모적인 무리짖기와 갈등을 멈추고, 생산적으로 생각과 사상을 공유하기 위해 우리는 다양한 시각으로 정보를 바라보는 방법을 배워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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