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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이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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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노세민
댓글 0건 조회 5,992회 작성일 20-11-01 20: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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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이유 - 김영하


사람은 뭐든지 한번에 하려고한다. 가령 두 손으로 들 수 없는 쓰레기를 한번에 버리고자 시도한다던지, 외우는것과 이해하는 것을, 또는 무언갈 쓰고자하면서 버릴 준비를 한다던지. 이 모든 것은 여유의 부재에서 온다. 나 또한 이러한 것의 부재 속에서 내 자신의 것을 갈취하다가 지쳤던 적이 있다. 더 이상 나는 견디지 못했고, 무언가 필요했다. 부족한 여유와 안정을 찾기 위해 내가 결심했던 건 여행이었다. 나의 삶에 가장 근접했던 경험은 일본이었고, 그 이상은 나아가지도 못했고 그저 남들의 평범한 방학기간의 일상속에서 언젠가는 이루어볼 꿈이었다. 남에게 평범했던걸 이루고자 하루에 3개의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마침내 유럽이라는 땅에 내 발을 딛는 그러한 현실을 마주하는 준비를 했다. 이러한 나에게 여행이란 무엇있었을까. 말 그대로 여유이자 흔한 노래 제목속에 등장할 수 있는 단어인 힐링이었다. 그저 나의 생활 반경속에서 최대한 떨어지고 싶었고 계획한 한달 조금 넘는 남짓한 시간속에서 생각을 정리하고 나의 미래를 헤쳐나가는 무뎌진 칼을 다시 갈 수 있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 나라의 문화와 경치를 딱히 느끼고 감상하고 싶었던 건 아니다. 그저 최대한 멀리, 내가 속해있는 대한민국과 최대한 멀리.

 

작가의 말처럼, 여행에서 나는 '추구의 플롯'을 경험했다. 그저 쉬러간 여행속에서 나의 여유와 안정보다 중요한 사람들을 만났다. 지루한 학부시절속에서 내 주변은 술과 공학, 수학들로 가득찼고 특별한 대외 활동을 하지 않는 나에게는 모두가 비슷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프라하에서의 그들은 말 그대로 나와는 '다른' 사람들이었고, 국어 선생님을 목표로하는 사람과 사진작가를 꿈꾸는 사람 등 나에게 많은 대인관계적 경험과 생각을 전달해주었다. 어느새 내 여행은 안정과 여유의 목표와는 달리, 더 다양한 사람들과 그 사람들의 색다른 생각들이 궁금해졌다. 흔한 프라하의 공원속을 헤집는 고슴도치를 보면서 떠올리는 생각이 사람마다 천차만별인걸 새삼스럽게 느끼면서, 때론 감성이 때론 이성이라는 흑백논리보다 모든게 융합된 사람들의 말과 생각을 들으면서 내가 생각치 못한 여행의 목표를 이루었다. 아직도 이 여행은 나에게 강렬한 인상으로 남겨져 있고, 내가 묻었던 시간속에 가장 의미있고 언제든지 쉽게 떠올릴 수 있는 시간이었다.

 

그렇다면 내가 여행에서 가장 여유를 느끼는 순간은 언제일까. 해가 제대로 중천에 걸리기도 전에 리에그로비사디에서 풍경을 느끼며 필스너에 알딸딸한 기분에 취해 열심히 출근하는 현지인 들을 보며 Somebody가 아닌 이 나라에서 만큼은 Nobody로 Somebody를 지켜볼 때이다. 마치 1인칭에서 벗어나, 대충 비슷한 생활을 살아가는 나를 3인칭으로 바라볼 때가 나의 여유가 풍족해지는 시간일 것이다. 물론 프라하같이 살기 좋은 나라에선 가끔은 나의 거추장스러운 힙색과 카메라를 숨기며 Somebody가 되고자 종종 노력하기도 한다. 마치 한달도 안된 시간을 통해 우리는 local이라며 농담따먹기 식이더라도 그저 일주일도 안되는 시간들을 보내고 가는 일반 여행자와는 다른 소속감을 나타내고 느껴보려고.

 

섬바디가 되고자했던 순간은 숙소에서도 이어졌다. 지금의 여자친구와 나에게 사진을 가르쳐준 친구는 게스트하우스의 스태프였고 나는 그저 스태프만큼 오래 머무르는 장기숙박 손님이었다. 하지만 그 숙소에서의 노바디로써의 시간이 지루해졌고, 오히려 남는 시간동안 잠시 지나쳐가는 사람들에 비하면 섬바디가 되고싶었다. 그래도 나름, 한달 남짓한 시간동안 프라하에 익숙해지면서 옆침대를 거쳐간 수많은 도미토리 사람들의 여행가이드가 되면서 보람을 느꼇던 것 같다. 평소 이런 단체생활속에서 나서지 않은데, 그렇게까지 섬바디가 되고 싶었던게 참으로 신기하기도 하면서 여행이란 미묘하다는걸 다시 한번 더 느끼게 된다. 다행히, 오디세우스와는 달리 낯선곳에서 누군가 되려고 하는게 나에게 독이되지는 않았다. 운이 좋았던 걸까 약간은 섬바디가 되어 더 다양한 사람들과 문화를 느낄 수 잇었고, 단골 술집을 만들어 마치 현지인이 된 것 마냥 웨이터와 맥주도 한잔 기울일 수 잇었다.


또한 여행이란 것에서 중요한건 여행지 뿐만 아니라, 원점도 있을 것이다. 작가가 말하듯, 우리는 항상 돌아올곳은 정해져 있는채로 여행을 떠난다. 보통은 나아가고자 하는 곳들이 우리의 여행지인 반면 어느정도 시간이 흐르면 오히려 돌아올 곳이 여행지처럼 어색하고 낯설게 된다. 분명 봄날씨에 떠났던 곳을 38도를 웃도는 무더운 여름을 마주하며 귀국했던 그 당시는 오히려 나의 거주지가 나를 노바디로 만들었다. 수많은 사람들과 교류하며, 밥 한끼 맥주 한잔 같이 부딪히며 먹었던 곳을 떠나오니 막상 나의 원점은 보다 삭막했고 시차라는 변명하게 나의 잠을 갈취했다. 항상 여행이란 무언가 후유증을 남기는 편이다. 보통의 떠나는 이유는 더이상 견딜 수 없고, 나 자신을 구하기위해 떠나는 것인데 막상 돌아오게되면 더 큰 허무함과 상실감을 주는게 참으로 아이러니하다 라는 생각을 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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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 여행을 떠나자. 그저 머나먼 곳이 아니어도 된다. 그저 나에게 허락된 시간을 통해서 떠나면 된다. 어디로든, 그저 나의 미래를 책임져주는 이 공간과 나의 잠과 휴식을 애매하게 제공해주는 이 공간을 떠나면 되는것이다. 이 아시아 대륙을 떠나지 않더라도, 멀리 나아가지 않더라도 우리에겐 나갈 곳은 많다. 그곳에서 한번은 섬바디로, 한번은 노바디로 살아보면서 우리이게 맞는 여유를 즐기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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