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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무드 - 이동민옮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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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민수
댓글 0건 조회 6,034회 작성일 20-11-09 00: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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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탈무드는 현재에 와서는 누구나 한번쯤을 들어본 유대인들의 경전으로 유대인의 종교적 지도자인 '랍비'의 언행, 율법, 전통등을 기록한 책으로 고대부터 계속 차곡차곡 쌓여온, 어떻게 보면 유대인의 입장에서 본 명언집 혹은 율법서이다. 인디북에서 출판한 탈무드는 실제 탈무드의 내용중에 대중적으로 잘 알려진, 혹은 의미 있을 만한 가르침을 주는 내용들을 추려서 엮은 책으로, '탈무드의 교훈', '탈무드의 지혜', '탈무드의 명언', '탈무드란 무엇일까' 라는 네 챕터로 이루어져 있다.


 책의 내용은 한번쯤 들어봤을 만한 이야기와, 고금에서 현재에 이르기까지 우리가 옳다고 생각했던 이야기들이 나열식으로 배열되어 있다. 어찌보면 당연한 이야길일 수도 있고, 진부한 내용일 수도 있지만, 언제나 보편적인 진리는 시간의 흐름을 관통하여 우리에게 공감과 가르침을 주기 마련이고, 가끔씩은 우리가 잊고 있었던 진리를 다시한번 일깨워 주기도 한다. 이 <탈무드>는 그러한 오랜시간동안 인류가 가져온 보편적 진리에 대한 선조들의 지혜를 담은 책이다. 물론 현대의 시대는 그때와는 다르고, 과거의 진리가 현대의 진리가 되지 못하는 부분도 있지만, 그 또한 현대의 시대를 곱씹어 봄으로써 다시 하나의 깨달음이 될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한다. 예를 들어보면 '그 사람이 몇 해를 살다 갔는가가 중요한 것이 아니라 얼마만클 업적을 남겨는가가 중요한 것이다' 라는 문구는 현대에서 통용되기에 충분한 말이기도 하지만, 개인의 삶과 행복의 중요성이 더욱 강조되는 시대이다보니, 개인의 삶을 단순한 업적을 얼마나 이루었냐라고 재단하는 건 현대의 가치관에는 부합하지 않을 것이다. 그렇지만, 인류 공동체의 미래를 생각한다면 개인의 삶의 업적 하나하나가 전체 인류가 가야할 기반이 될 것이기에 단순히 고리타분한 말로 치부하는 것은 무리일 것이다. 


 사실 이러한 탈무드의 명언들을 보고 있자니, 탈무드가 주는 명언의 지혜가 마음에 와 닿는 것과 동시에 오래전 부터 이어져 내려오는 이러한 보편적 진리, 혹은 과거시대의 옳음의 잣대가 현대에 와서는 어떤 의미를 가지고, 현대에, 후대에 영향을 주는가 하는 부분을 다시한번 생각해보게 되었다. 언제나 세대간의 갈등이 발생하고 표출되는것은 과거의 옳다고 여겨진 가치관이 현대에 와서는 부정되는 과정을 통해 일어나기 마련이고, 우리나라는 특히 다른 나라대비 변화의 속도가 너무나 빨랐고, 빠르기에 세대간의 갈등또한 극명하게 나타나는 경우가 많았다. 근래에 와서는 어떤 이유에서 인지 이분법적인 흑백논리속에 진영싸움이 팽배하고 있고, 내 편이 아니면 남의 편, 혹은 내용의 올바름을 떠나 일단 상대편의 말이기에 부정하고 깎아내리는 것부터 시작하는 공격성이 사회 전반에 걸쳐 여러 문제를 야기하고 있다. 


 이러한 상대방에 대한 무조건적인 공격을 야기하는 이분법적 사회분위기가 언제부터 시작이었는 지, 의구심이 드는 시점이지만, 이성적 판단과 상식선을 넘어서 음모론과 가짜뉴스 판치고, 여러 정책과, 판단에 대한 무조건적인 비판만하다보니, 무엇을 위해 우리가 나아가고 있고, 무엇을 하고 있는 것인지에 대한 근본적인 회의감이 드는 것도 사실이다. 정부의 어떠한 정책의 결정을 하게 되면, 그 정책을 결정하기 위한 전문가의 의견이 가장 중요할 것인데, 정작 전문가의 의견보다는 어떠한 정치적 집단에 의하여 결정되고 그것을 반대하는 쪽은 논리와 무관한게 나쁜X이라는 논리로 공격을 함으로써 실리적 결정이아닌, 정치적, 이념적 결정이 우리 사회를 한 방향으로 밀어내고 있다. 사견으로는 이러한 대표적인 최근의 결정이 원전폐기였다고 생각하는데, 한 나라의 에너지 대책과 원자력 발전의 효용석, 기술력에 대한 전문적인 판단이 아닌, 일반 시만 500명을 모아놓고, 발생할 가능성이 매우 작지만 있을 수도 있는 극단의 경우를 토대로 감성적, 이념적 결정을 내린 원전폐기 정책은 정말 공감하기 힘든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과학에 바탕을 둔 하나의 고도의 기술 산업이 과학적인 판단을 배제한체 이념적, 정치적 결정을 한다는 것은 조선시대의 실학사상 이전에 성리학을 바탕으로 이념만으로만 나라의 정책을 이끌어가는 구시대적 모습을 보는 것 같아 매우 씁쓸했던 기억이다. 박근혜정부의 세월호 사태때, 갑자기 해경을 없애겠다. 라고 했던 뜬금없는 대책과 무엇이 달랐나? 원전의 부작용, 우려사항에 대한 여러 대책을 위한 방법을 연구하고, 현재 대안이 부족한 상황에서 장기적은 전력 대책을 마련하면서 서서히 전력 방향을 변화시키던 지 하는 그러한 방법이 훨씬 합리적이지 않았을까? 국가의 경영과 기업의 경영이 다르겠지만, 일반 사기업에서 프로젝트의 향방을 결정한다면, 아무런 근거 데이터도 없이, Back PLAN도 없이 어떠한 결정을 내릴 것인가? 새삼 느끼지만, 어떠한 리더를 결정할때 이념적인 부분도 중요하지만, 이념적인 부분, 사람이 좋다라는 부분이 조직의 미래에 큰 도움이 되지는 않는다는 진리를 새삼깨닫게 되는 시점이다.


 <탈무드>에 나온 M.P.카토의 명언으로 마무리한다. '현자가 어리석은 자로부터 배우는 것은, 어리석은 자가 현자에게 배우는 것보다 많다. 왜냐하면 현자는 어리석은 자의 실책을 보고 이를 피할 수 있지만, 어리석은 자는 현자의 행위를 보고서도 아무 얻는 바가 없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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