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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가 그들을 비난할 수 있을까 -가버나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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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희태
댓글 0건 조회 5,800회 작성일 20-11-10 2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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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현대 자본주의에는 빈부격차라는 아픈 새끼 손가락이 존재한다. 우리는 물질적 풍요 위에서 이 전까지 상상할 수 없는 안락한 삶을 그리고 있지만, 생활고로 인해 치매에 걸린 부모님을 살해한 뒤 자살한 청년이나, 차가운 단칸방 안에서 아기와 함께 굶어 죽어가는 어머니와 같이, 사회의 어두운 면은 분명하게 우리 주변에 존재한다. 이러한 빈부 격차를 사회에 표현하는 방법은 다양하나, 그 중 가장 확실하고도 효과적인 방법은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방법이다. 지난해 개봉한 “기생충”, “조커”와 같이, 묵직하고 있는 그대로를 보여주는 방식은 아픈 치부를 직접적으로 드러낸다는 점에서 처음에는 불쾌하게 받아들여질 수도 있으나, 그만큼 강한 호소력을 가지고 있다.



“가버나움”은 이러한 리얼리즘 위에서, 레바논 빈민층의 암울한 현실을 있는 그대로 담아내고 있다. 주인공 소년인 “가인”이 살고 있는 마을은 당장이라도 쓰러질 듯한 건물과 누가 봐도 비위생적인, 아이를 키우기에 적절하지 않은 환경이다. 이러한 불쾌함 안에서 가인은 약에 절인 주스와 옷을 파는 일을 한다. 어머니와 아버지는 가인을 자식으로 보기 보다는 단지 돈을 벌어주는 다른 도구로 생각한다. 다른 일을 하고 싶지만, 부모가 출생신고를 하지 않아 일을 구하기도 쉽지 않다. 이러한 무대 배경이 더욱 호소력 있게 다가오는 이유는, 분명 이러한 장소는 지금 존재하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실제 사회에서 벌어지고 있는 일을 필터 없이 직접적으로 받아들이는 과정에서, 관객은 그들이 처한 상황에 대한 동정감과 동시에 그들이 살고 있는 생활 방식에서 불쾌함을 느끼게 된다.


 영화 내에서 주인공 “자인”은 과연 마냥 동정할 만한 대상인 것인가? 지난해 “조커”와 “기생충”이 관객 및 평론가 모두에게 극찬을 받은 이유는, 사회적 약자를 그저 단지 동정할 만한 대상으로 그리지 않고, 평범한 사람으로 그려 나갔기 때문이다. 분명 자인은 힘든 상황에 처해있으며, 그를 동정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지만, 사람을 칼로 찌른 살인 미수범이다. 돈을 벌기 위해 악착같이 살아왔으나, 대부분 그 일은 불법적인 것 이였다. 반대로, “가버나움”에 등장하는 다른 모든 등장인물이 행한 행동들 또한 그들이 살기 위해 한 것이다.


여기서, 한가지 의문점이 생긴다. 과연 이 영화에서 “선인”과 “악인”을 구별 지을 수 있을까? 그리고 우리는 과연 그들이 행한 악행에 비난을 할 수 있을까? “조커”의 아서 플렉과 “기생충”의 기택이 사람을 칼로 찌를 때, 대부분의 관객은 그들이 행한 악행에 혐오감을 느끼기 보다는 그들이 행한 행동에 대해 대리만족을 느낀다. 그들이 어떻게 이러한 결정을 내렸는지에 대한 이유들이 영화 전반에 깔려 있으며, 그 이유들은 매우 납득할 만하여 우리는 차마 그들을 비난할 수 없다. “가버나움”에서 자인과 그 주변 인물들이 처한 현실은, 단지 도덕적 가치관 아래 그들을 판단하기에는 매우 많은 사회적 부조리들이 바탕에 깔려 있다.


 그렇다고 본 인물들의 행동이 결코 정의롭지는 못하다. “가버나움”, “조커”, “기생충”의 감독은 과연 우리가 이러한 현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지, 현실성 짙은 배경을 통해 관객에게 질문을 던진다. 우리는 그들의 행동에 대해 결코 비난할 수 없다. 우리가 만든 사회가, 그들을 그렇게 만들었기 때문이다. 현재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부는 그들의 희생이 바탕이 된 것이다.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 했던 것들은, 그들에게는-영화의 말을 직접 인용하자면- 신의 선물이다. “사회적 피해자”가 된 그들에게 우리가 할 수 있는 최선의 행동은, 현재 사회의 문제점이 있다는 점을 분명히 인지하고 그것을 점차 고쳐 나가, 결국 제 2의 기택, 자인, 아서 플렉이 나오지 않게 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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