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만든 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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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만든 신
팀 켈러
약 400여년간 이집트에서 파라오의 노예 생활을 하던 이스라엘 민족은, 모세라는 민족의 지도자가 나타나면서 민족 전부가 이집트에서 나오는 데 성공한다. 그 이후 약속의 땅인 가나안으로 들어가는 과정은 수많은 고난의 연속이었다. 이집트 병사의 추격이나 가나안으로 가는 길에 부딪혀야 하는 여러 나라들 과의 충돌도 충돌이었지만 이스라엘 민족에게 가장 힘들었던 싸움은 자기 자신과의 싸움이었다. 다시 말하면,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시고 길을 인도하시는 하나님만을 온전하게 믿고 의지하느냐 혹은 다른 신을 만들어 섬기거나 자기 자신의 생각을 의지하느냐에 대한 갈등의 연속이었다. 이러한 갈등은 시내산에서 모세가 십계명을 받으러 올라갔을 때 극명하게 나타난다. 계명을 받으러 산 꼭대기로 올라간 모세가 시간이 지나도록 내려오지 않자, 산 아래에 있던 이스라엘 민족은 금덩이를 모아 금송아지를 만들어 자신들의 신이라고 숭배하기 시작한다. 이러한 행동의 결과는 참혹했다. 하나님은 진노하셨고 우상을 범한 이스라엘 백성들 가운데서 죄악의 싹을 도려내시고 회개하도록 만드셨다.
시내산 꼭대기에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내리신 열 가지 계명의 처음은 다음과 같다.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다른 신을 두지 않는 것,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명령하신 첫 번째 계명이다. 아이러니하게도 계명을 내린 바로 그 순간에 하나님을 지속적으로 상기시켜줄 지도자를 잃어버린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송아지라는 우상을 창조해냈다. 끊임없이 숭배하고 의지할 만한 것을 찾는 인간의 습성을 하나님께서는 누구보다 잘 아신 것이다. 하지만, 인간이 만들어내는 그 어떤 것도 신이 될 수는 없다. 이후 이스라엘 민족의 역사는 하나님을 향한 끊임없는 배신과 징벌, 그리고 회개와 용서의 순환으로 이루어 진다. 이는 가나안 땅에 입성해서도 마찬가지이다. 조금이라도 불평할 것이 있거나 혹은 너무 편안해 지기라도 하면, 그들은 새로운 우상을 만들어내기에 바빴다. 신상이나 타 종교의 신상들을 숭배하는 것 뿐만이 아니라 재물이 그들의 우상이 되었고, 권력이나 혹은 자기 스스로가 우상이 되었다.
초자연적인 현상을 바라며 어떤 물체나 신상에 비는 행위는 현대에 와서는 점점 보기 힘들어 지고 있다. 그렇다고 현대의 기독교인들이 ‘다른 신을 두는 행위’를 금지하는 1계명을 잘 지키고 있는가?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기독교인들이 그렇지 않다고 본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만들어 자신들의 안위를 위해 빌던 행위들이 이제는 훨씬 더 교묘하게 일상에 숨어 우상화 되었다. 간절히 원하던 평생 소원이 내가 만든 신이 되기도 하며, 사랑이라는 추상적 개념에 바른 신앙을 불살라 버리기도 하고, 목표했던 일을 성취하는 것 자체가 일생의 목표가 되기도 한다. 또한 권력에 맛을 들이면 권력을 유지하는 것 자체가 우상이 되어 버린다. 부와 재물을 향한 갈망 역시 빠지기 쉬운 우상 중 하나이다.
이렇게 어렵지 않게 눈에 띄는 우상과 함께, 우리에게 영향을 미치면서도 더 깊이 숨어 있는 우상은 바로 문화와 종교의 우상이다. 오늘날 의미에 대한 욕구는 개인의 자아와 관계될 뿐 그보다 더 중요한 것과는 모두 무관하다. 누구나 자기가 원하는 대로 될 자유가 있다는 것이다. 이렇듯 최근의 문화는 개인의 자유를 우상화하는데 이는 가정의 붕괴, 물질만능주의, 출세주의, 로맨틱한 사랑과 미모와 수익의 우상화로 이어진다. 종교의 경우도 비슷하다. 하나님 앞에서의 신분을 하나님의 은혜에 의존하기 보다는 교리의 정확성에 의존하면 교리 자체가 우상이 된다. 자기 자신을 은혜로 구원받는 죄인으로 보지 않고 자기 견해가 옳다고 믿는 사람은 스스로의 우월감에 빠지며 남을 판단하는 잠언의 “거만한 자”가 된다.
이러한 것들을 하나님보다 우선순위에 놓을 때, 결국에는 좌절과 파멸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언급된 그 어떤 것도 결국에는 인생의 궁극적인 목표가 될 수 없이 때문이다. 오히려 더 가질 수록 더 갈급하고, 쫓기게 되며, 너무 집착한 나머지 파멸에 이르거나 심각한 허무감을 느끼게 되는 경우도 어렵지 않게 볼 수 있다. 또한, 기독교인이라고 소개하고 다니는 사람들조차 자신이 쫓고 있는 우상을 가지기 위해 하나님의 이름을 이용하는 경우도 쉽게 볼 수 있다. 이러한 사람들이 너무 많기 때문에, 공공연하게 이뤄지는 기독교라는 종교에 대한 원색적인 비판 역시 이해가 되는 부분이다.
그렇다고 해서 앞에 열거한 것들을 모두 죄악으로 치부하고 속세를 벗어나 모두 산속에 들어가 살라는 것은 아니다. 십계명의 제 일 계명은 ‘예배 이외에는 아무 것도 하지 말라’ 가 아니라 ‘나 외에 다른 신을 두지 않는 것’ 이다. 우리는 제물을 모을 수 있고, 어떤 목표를 정해 놓고 그것을 달성함으로써 성취감을 느낄 수 있으며 탁월한 능력을 가지고 사회의 높은 위치에 오를 수도 있다. 하지만 우리의 목표는 부 그 자체가 아니며, 성취감이나 권력 역시 우리의 목표가 아니다. 단지 우리가 크리스찬으로써 해야 할 일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 처해 있던, 어떤 직업을 가지고 있던, 얼마나 풍족하던지 간에 하나님을 우선순위로 높으며, ‘나의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것’이다. 사실 기독교인이라고 드러내면서 살고 있는 현재와 과거의 내 자신을 볼 때 이러한 글을 쓰는 것조차 얼굴을 제대로 들 수 없을 만큼 부끄럽지만, 지금부터라도 그렇게 살려고 몸부림치며 끊임없이 내가 만들고 있는 신들을 내려놓는 삶을 살아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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