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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예보의 첼리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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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민주
댓글 0건 조회 6,255회 작성일 20-11-29 16: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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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라예보의 첼리스트 - 스티븐 갤러웨이

 

1992년 4월 5일 보스니아 사라예보, 세르비아인들로 구성된 민병대들이 도시를 둘러싼 언덕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목적은 보스니아에 대한 선제공격이었다. 민병대 중에서는 전 국가대표 출신 여자 사격 선수인 ‘스트리옐라’가 포함되어 있었다. 세르비아 민병대의 목적은 단 하나.

 

“사라예보에 살아 숨 쉬는 모든 것”

 

매일 300여개가 넘는 포탄이 사라예보를 향하여 쏟아지고, 언덕 곳곳에 배치된 저격수들은 노인과 어린아이를 가리지 않고 저격을 하기 시작했다. 사라예보를 관통하는 대로는 이제 저격수의 거리가 되어, 식량을 구하기 위하여 숨어 다니는 민간인들과 이들을 잡아내려는 세르비아 저격수들의 목숨을 건 숨바꼭질이 벌어지고 있었다. 스트리옐라는 사라예보의 모든 사람들을 저격하는 임무를 받았다. 명령에 따라 기계적으로 보이는 모든 것을 저격하던 그녀의 시야에 어느 날 한 사내가 포착되었다. 1992년 5월 28일, 전날 포격으로 희생된 22명의 사람들을 추모하기 위하여 첼로를 들고 나타난 사내의 이름은 베드란 스마일로비치.

 

한달이 넘는 포위전에서, 시민들은 굶주리지 않기 위하여 하루를 연명할 빵 한조각이라도 얻고자 위험천만한 사라예보 거리를 돌아다니고 있었다. 5월 27일에 어느 빵가게에서 빵을 판다는 소식을 들은 시민들은 빵을 사기 위하여 삼삼오오 모여들었고, 가족들에게 나누어줄 빵을 받을 기대감에 부풀어 있었다. 100여명이 넘는 사람들이 빵가게 앞에 모인 그 때, 포탄이 그들을 덮쳤다. 22명의 사람들이 그 자리에서 사망하고, 수십명이 넘는 사람들이 중상을 입었다. 빵을 구하기 위하여 기다리던 사람들의 안도감과 희망으로 가득차던 거리는 아비규환의 지옥이 되어있었다. 하지만, 죽음이 넘치던 사라예보에 살던 사람들에게는 22명이 희생된 것은 특별한 일이 아니었다. 오늘은 살아남았지만, 내일은 자신이 희생자가 될 수 있음을 알고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그저 숫자로만 느껴졌을 뿐.

  

빵가게 앞의 포격이 있던 다음날, 베드란은 남루한 자신의 검은 연주복을 입고 첼로를 들어 부서진 거리로 나왔다. 사라예보 필하모닉의 연주자인 베드란은 내전이 시작되면서 연주를 하지 못하고 다른 시민들처럼 하루하루를 연명하던 처지였다. 빵을 구하기 위하여 동분서주하던 그가 22명이 희생당한 그 순간을 보았고, 자신이 해야 할 일이 무엇인지를 깨달았다. 죽은 22명의 사람들을 위하여 22일동안 첼로 연주를 하는 것, 자초토에 의한 알비노니 주제곡의 아다지오 G단조.


스트리옐라의 시야에 베드란이 보였다. 무감각하게 사람들을 죽여가던 그녀에게 작게 들리는 첼로소리와 지옥과도 같던 사라예보에서 평온한 표정으로 첼로 연주를 하는 그의 모습이 방아쇠를 당기는 것을 망설이게 하였다. 그건 다른 저격수들도 마찬가지였으리라. 스트리옐라에게는 이처럼 아름다운 광경을 본 적이 없었다. 첼로 연주가 계속되는 몇분 동안 스트리옐라는 조준기를 통해 다른 저격수들을 감시하면서 거리에 흐르는 음악을 듣고 있었다. 고약하고 최악의 느낌이지만, 마음이 무거워지고 울고 싶어진다. 왜 그녀 자신이 첼리스트에게 총을 쏘지 않았음을 깨닫고, 자신을 포함한 언덕위의 저들이 사라예보의 시민들에게 이런 잔혹한 짓을 저지를 권리는 없다는 것을 생각했다.

 

“그는 누굴 위하여 연주하고 있을까?”

 

8일을 넘어 22일동안 22명의 희생자를 위한 첼로 연주가 사라예보의 한 거리에서 조용히 울려퍼졌다. 자기자신을 위하여 연주했을까? 폐허속의 연주를 통하여 무엇인가를 이루어 내려고 했을까? 몇 달 전만해도 친근하게 지내던 이웃들이 세르비아 민병대가 되고, 보스니아 정규군이 되어 서로를 죽이고 있었다. 종교가 무엇이고, 민족이 무엇이며, 이념이 또 무엇이길래 이런 참혹한 상황이 닥쳐왔을까?

 

22일의 진혼곡이 끝나고도 베드란은 사라예보 곳곳을 누비며 말없이 연주를 하고 이듬해 보스니아를 떠나 북아일랜드로 갔다고 한다. 자신의 한줄기 음악이 사람들에게 희망을 주고 인류의 광기를 치유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민족주의 광풍은 오랜 세월 발칸 반도의 여러 사람들에게 지울 수 없는 아픔을 남겨주었고, 인류에게 많은 생각을 불러일으켰다.

 

허나, 사라예보에서 일어남 참상은 여전히 다른 곳에서 되풀이 된다. 시리아는 정부군과 반군 사이의 내전으로 수많은 난민들이 고향을 등지고 정처 없이 떠돌아야 했으며, 리비아는 독재자 카다피를 권좌에서 끌어내렸지만, 부족들 간의 내전을 수습하지 못하고 수렁으로 빠지고 있다. 미얀마 민주화 운동의 상징인 아웅산 수치는 로힝야족에 대한 조직적인 제노사이드를 방관하고 있고, 유럽 곳곳에서는 이슬람 극단주의에 의한 각종 테러가 일어나고 있으며, 신장 위구르에서는 중국 공산당에 의한 국가적인 차원의 위구르인 말살이 자행되고 있다. 세계대전과 갖은 전쟁을 겪고도 인류는 민족이라는 허구의 개념에 경도되어 똑같은 실수를 저지르는 것이다. 민족주의가 극단으로 치달으며 나타난 것이 게르만주의와 대동아공영권을 내세우며 전 세계를 전쟁의 소용돌이로 내몰은 나치 독일과 일본 제국이었다. 민족이라는 허울로 포장되는 전체주의는 우리나라도 피할 수 없다. 죽창가를 부르짖으며 일본에 대한 무조건적인 배척과, 북한에 대한 무조건적인 구애는 진보라는 거짓된 껍질을 뒤집어쓰며 사람들을 선동하고 있다. 국가와 민족을 뛰어넘은 인류의 보편적인 가치인 노동, 복지, 인권에 초점이 맞춰진 것이 아니다. 지옥으로 변한 사라예보의 거리에서 홀로 첼로 연주를 하며 광기에 직면한 인류에게 애도와 찬가를 보낸 베드란 스마일로비치 같은 사람이 다시는 나오지 않는 세상은 올수나 있을까? 부디 우리에게 그런 일이 오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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