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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스와 로저몬드(Phyllis and Rosamond) – 버지니아 울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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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이규섭
댓글 0건 조회 8,946회 작성일 20-12-01 20:3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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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리스와 로저몬드(Phyllis and Rosamond) – 버지니아 울프

이규섭

 

 “우리는 여기 있어야 돼. 다른 데 있을 곳이 없어.”

 

인공지능 시대의 도래니, 초연결사회니 떠들어도 불과 몇십 년 전까지만 해도 여성의 삶이란 제약투성이였다. 그 틀을 부수고 나온 몇몇이 언제나 있기 마련이지만, 시대의 여성상은 한 세대 위만 하더라도 여전히 ‘좋은 남자를 만나는 것’에서 크게 다르지 않았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필리스와 로저몬드의 삶은 그런 시대의 전형 안에 갇혀 있어, 사실 그다지 들여다보고 싶은 매력을 느끼기 어렵다. 허버트 가의 다른 자매들이 그러하듯, ‘선천적으로 강건하고 도전적인’ 사람들은 두뇌를 계발하여 대학에 진학하는 삶을 선택할 수도 있었다. 하지만 작가는 이들의 삶의 모습은 남자들의 모습과 매우 흡사하여 오히려 특별히 살펴볼 이유가 없다고 말한다. 역으로 필리스와 로저몬드처럼 ‘경박하고 가정적이며 예민한’ 계집아이의 전형이야말로 흥미로운 관찰 대상이라며, 그들의 하루를 집중 조명한다.

어떤 인간군상의 전형이라 칭하면 내심 그 대상을 하찮게 보는 경향이 있다. 희소성이 곧 가치인 세상에서 ‘전형적인’이라는 수식어야말로 가장 모멸스러운 단어일지 모른다. 그 와중에도 ‘계집아이’의 전형이라면. 필리스와 로저몬드는 그네들의 말마따나 결혼을 위해 교육을 받은, 그것만이 삶의 목표인 여성들이다. 현명함과 똑똑함은 다른 영역의 이야기라 고등 교육만이 인간의 지성을 깨우는 유일한 방편은 아닐 것이다. 하지만 우리는 진즉에 이런 계집아이들이 비록 책을 읽을 수 있어도, 다양한 지식을 가지고 있어도 그것이 허울뿐이며, 대화를 위한 얄팍한 지식과 경험이라 여긴다. 그리고 그렇기에 쉽사리 그들의 사유와 통찰력 또한 얄팍한 것이라 여긴다.

필리스와로저몬드의 삶은 비극적이다. 그것은 그들의 삶 자체가 비극적이어서가 아니다. 비록 허버트 여사가 엄격한 편이긴 해도, 당시 시대상에 맞추어 보면 보편적인 중산층 가정의 화목함을 지니고 있었다. 수시로 연회를 방문할 정도의 여유는 있었으며, 필리스가 스물 여덟 살이 되도록 결혼을 미루어도 될 정도의 여유는 있었다. 필리스와로저몬드 “역시 자세히 살펴보면 예쁜 곳은 없지만, 옷과 품행 때문에 언뜻 보면 예쁘게 보일” 정도는 되었다. 그러니 당시의 인류를 통틀어 보면 그들만큼 평화로운 삶을 보장받는 경우는 드물 것이다.

배부른 돼지는 자신이 돼지라는 사실을 자각하지 못한다. 그러니 배가 부르면 행복할 수 있다. 행복을 추구하는 관점에서는 그렇다. 하지만 배부른 돼지의 잠재의식 속에 소크라테스가 깨어나기 시작하면, 현실과 이상의 괴리가 시작되면, 삶 속의 서로 다른 두 요소 사이의 간극이 벌어지는 순간 비극이 시작된다. 그녀들은 자신들의 삶에 만족하지 못하고, 자유를 갈망한다. 하지만 동시에 깨어난 지성은 자신들의 삶에 대해서도 절실히 이해한다. 그들에게 자신의 삶을 온전히 거부할 용기는 없다. 하지만 배부른 것만으로 만족하지 못하기 시작하면서 그녀들은 사회가 자신에게 건 목줄에 고통을 느낀다.

 

“그 사람하고 결혼할 수 있겠어?”

“마님이 하라고 한다면.”      

“하긴 그것도 해결책이라면 해결책일 수 있지.”

…

“문제는, 또 한 해 동안 노예생활을 하면서 더 좋은 남자를 기다릴 만한 가치가 있냐는 거야. 다음에는 또 누구야? 심프슨? 로저스? 레스터?”

 

트리스트럼 가를 방문하는 장면에서 그들의 감정은 고조된다. 트리스트럼 가는 그들에게는 이상향과 같은 곳이다. 필리스와 로저몬드는 스스로 ‘다른 사람들과 똑같이 추하게 살도록 길들여지는 삶’을 산다고 생각했고, 트리스트럼 가가 위치한 낡은 주택이 모인 그곳이 진정한 여유와 자유가 있는 곳이라 여겼다. 트리스트럼 가에서는 온갖 주제에 대해 자유로운 토론이 열렸고, 필리스와 로저몬드는 내심 그 안에서 자아를 찾기를 원했다. 하지만 그곳에서 그녀들은 겉돌 뿐이었다. 그녀들은 멍청하지 않았지만, 자유로운 그들과의 대화에 끼어들 만큼 깊이가 있지 않았고, 그것이 비록 그동안 살아온 방식의 차이에서 기인하였을지 모름에도 그녀들의 자존심을 무너뜨렸다. 무엇보다 그녀들의 삶과 트리스트럼 가 사람들의 삶 사이에는 너무나 큰 간극이 있었다. 서로를 이해할 수 없을 만큼. 트리스트럼 가의 작은 딸이 건넨 통상적인 질문에 필리스는 흥분하고 만다.

 

하지만 그들은 이 새로운 시각을 받아들일 수 가 없었다. 게다가 그들의 경험은 전혀 성질이 다른 것이었다. 그들에게 사랑은 계산된 행동에 의한 것이었다. 무도회나 음악회에서 부채를 살랑거리며 눈길을 주고받다가 더듬거리며 암시적으로 표현하는 것이 사랑이었다. 그러나 여기서 사랑은 백주에 적나라하게 까발려지고 파헤쳐지는 것이었다. … 그들은 가슴속에서 끓어오르는 젊음의 혈기를 느끼며 스스로를 맹렬하게 비난했다. 자유를 쟁취하려는 모든 노력이 헛수고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랫동안 갇혀 산 탓에 몸과 마음이 타락해버렸다고 생각했다.

 

결혼. 그리고 그것에서 파생되는 사랑은 필리스와 로저몬드에게 마지막 남은 ‘전문 분야’ 였음에도 자신들의 삶이 택한 방향보다 그들이 제시하는 사랑에 더 마음이 끌리는 것을 인정할 수 없었을 것이다.

 

“그게 내 직업이에요, 나도 싫지만! 정말이에요, 트리스트럼 양. 젊은 여자들은 거의 다 노예잖아요. 당신이 자유로운 몸이라고 해서 나를 모욕하지는 마세요.

… 우리가 어떻게 사는지 아세요? 저녁이 되면 야회에 가서 듣기 좋은 말만 늘어놓고, 적당한 상대가 나타나면 결혼하죠. 물론 가고 싶었으면 대학에도 갈 수 있었어요. 하지만 대학에 안다녔어도 교양은 있어요.

… 당신과 당신 언니가 진짜고, 우리는 가짜에요. 적어도 나는. 이래도 모르겠어요? 당신들의 삶이 이상적인 삶이라는 걸?”

“당신들은 왜 우리처럼 하고 싶은대로 할 수 없는 거죠? 이해가 안 가요.”

…

"우리는 결혼을 그런 식으로 생각할 수가 없어요. 원하는게 너무 많기 때문에 결혼의 진정한 의미를 모르는 거죠. 결혼은 여러가지 것들과 뒤얽혀 있어요. 자유, 친구들, 내 집, 그리고 당신들이 가지고 있는 것들 모두! 어때요? 무섭죠? 돈밖에 모르는 것 같죠?”

“무섭다는 생각은 들지만, 돈밖에 모른다는 생각은 안드네요. 내가 당신이라면 글을 쓰겠어요.”

“또 그런 말을 하는 군요 트리스트럼 양! … 몇 번이나 말해야 알겠어요? 우리는 머리가 없어요. 그리고 머리가 있다 해도 쓸 줄 모르고. 자비로운 주님이 우리를 우리 처지에 맞게 만드신 거예요. 로저먼드는 뭔가 할 수 있었을지도 몰라요. 지금은 나이가 너무 많지만.

… 당신이 우리 입장이라면 그럴수도 있겠지만, 당신은 우리 입장이 될 수가 없어요. 절대로.

… 이런게 우리 삶이에요. 그리고 우리는 이런 삶을 최대한으로 이용할 수밖에 없어요. 내가 당신에게 바라는 건, 우리가 왜 여기와서 이렇게 말없이 앉아 있는지 이해해달라는 것뿐이에요. 우리도 당신들처럼 이렇게 살고 싶지만, 과연 그럴 수 있을지 의심스러워요.

…우리를 멋부리는 것밖에 모르는 말괄량이들로 생각하죠. 그래요. 그렇다고 할 수 있어요. 하지만 우리도 더 훌륭한 사람이 될 수 있었어요. 불쌍하지 않아요?”

 

필리스의 외침은 분명 변명이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녀들은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 있고, 그것을 포기하는 것에 대해서는 고민해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그녀들이 바라는 자유는 낡은 주택가에 있음에도 그러한 삶의 요소를 고려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녀들은 남들이 가지지 못한 안락한 삶을 가진 것에 감사하지 못하고, 자신들이 가지지 못한 것에 불만만을 늘어놓는, 그 와중에 변화할 생각조차 가지지 못하는 ‘말괄량이’임이 분명하다. 그녀 자신 조차 인정하고 있으니.

하지만 분노의 원인에는, 그러한 자신의 삶이 이렇게 되어버린 것에 대한 선택지조차 없었다는 것에 있지는 않았을까. 사람들은 건설적인 조언을 해주는 것에 더 익숙하지만, 답답해하기 이전에 한번쯤 그들의 내면을 들여다볼 필요가 있다. 과연 그토록 건설적이고 현명한 당신들이 그녀들의 삶으로 들어갔을 때 변명만 늘어놓지 않고 변화를 꾀할 수 있을까? 누군가는 가능하겠지만 대다수는 그렇지 못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락함의 늪에 빠진 채 그곳에서 벗어나야만 행복할 수 있는 삶이란 다른 의미로 고통스러운 것이다. 그렇게 벗어난 안락함이 나중에 절실해지고, 얻어낸 자유 속의 자아가 또 다른 전형에 갇혀 버릴 것을 미리 안다면 선택은 더 어려워지겠지. 그렇게 너무나 잘 알기에, 필리스는 결국 자신의 변명에 우울해졌을 것이다. 그리고 기존의 안락한 삶으로 그녀가 너무나도 싫어했던 안락한 삶으로 도피하고 만다. 작은 비극이 다시금 반복된다.

 

… 사실 그녀는 이 이상한 저녁모임에서 아무것도 얻지 못한 것에 크게 낙담하여 얼굴이 며칠 굶은 사람처럼 핼쑥해 보였다. 하지만, 그들과 같아질 수는 없어도, 적어도 왜 그러지 못하는지 설명할 수는 있었다. 자신이 무력한 데에는 그럴 이유가 있다는 것을 스스로에게 증명하고 싶었다. … 

집으로 돌아가는 마차에서 필리스는 자신이 그렇게 폭발한 것이 좀 놀라웠다. 하지만 기분이 좋았다. 자매는 둘 다 좀 흥분되어 있었다. 왜 마음이 불편한지 알고 싶었다. 전날 밤 같은 시각에 집에 돌아갈 때에는, 기분은 오늘보다 우울했지만 만족감은 더 컸었다. 지겹기는 했지만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 오늘밤에는 지겹지 않았다. 하지만 기회가 왔을 때 잘했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방에 올라가 자기 전에 돌이켜 볼때에도 좀 우울했다. 필리스는 자신의 진정한 자아를 들여다보면서 한기를 느꼈다. 내가 진정으로 원하는 게 뭘까? 나에게 적함한 일은 뭘까? 두 세계 모두를 비판하면서 어느 쪽도 그녀가 필요로 하는 것을 줄 수 없다고 느끼는 것? 우울했다. 동생에게 말하고 싶지 않았다. 발작하듯이 갑자기 모든 것을 솔직하게 털어놓고 보니. 역시 이야기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었다. 뭔가 할 수 있다면 혼자 스스로 해야 한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허버트 여사가 그들을 위해 내일 하루동안의 일정을 짜놓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적어도 골치아픈 생각을 하지 않아도 되니까. 그리고 강변에서의 파티는 재미있으니까.

 

그런 삶들이 많이 있다. 행복하지 않은 선택지 만이 주어진 삶. 타인은 그들의 삶을 계산기에 두드려서 그 정도면 네 수준에 적절하다고, 그러니 주어진 것에 감사하라 말할 것이다. 그 안에서 얼마든지 네 소망을 위해 쟁취해내라고, 그러기 위해 무언가를 포기할 줄도 알아야 한다고 말할 것이다. 원하는 것을 다 얻을 수는 없는 법이다. 그러나 누구나 마음속에 욕심쟁이가 곁들어 있다. 그것을 얼마나 고상하게 표현하는지에 차이가 있을 뿐. 타인에 대해 왈가왈부할 자격이 있는 사람이 얼마나 있는지 의심스럽다. 인간은 완벽하지 않고, 세상엔 성인 군자만 있는 것이 아니다. 결국 선택해야 하면서도, 그 앞에서 망설이고 마는 것. 세상이란게 원래 그런 것임을 알면서도 세상 앞에 무의미한 분노를 표출하고 마는 것. 많은 이들이 그러할 것이다. 탐탁치 않을수도 있고, 한심해 보일수도 있지만 자연스러운 일이다. 나는 나에게만 엄격하면 된다. 그러니까 그런 이들의 삶, 그녀들의 삶을 조금 이해해 줄 수는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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