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의 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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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의 속성
김승호 저
1929년 6월의 어느 날, 존.F.케네디 대통령의 아버지이자 월스트리트에서 뛰어난 투자자로서 평가 받던 조 케네디는 길거리에서 오늘도 열심히 호객 행위 중인 구두닦이 소년을 봤다. 글로벌 호황이 찾아왔기 때문일까. 그의 구두는 이리저리 치여 기품 있던 본 모습을 잃은 지 오래였다. 조 케네디는 곧장 그 소년에게 달려가 팁을 넉넉히 주며 빠르게, 하지만 완벽하게 닦아 달라고 부탁했다. 그 소년은 어딘가 모르게 신이 나 있었다. 오늘 첫 손님을 받아서 그런 것 같지는 않았다. 소년은 이윽고 입을 뗐다. “아저씨, 혹시 주식 하세요? 최근에 OO모직 상장한 거 아시죠? 좀 담아보세요. 제가 보기엔 거기 무조건 따상 갑니다. 진짜예요. 두고 보세요.” 조 케네디는 흠칫하며 닦던 구두를 도로 뺐다. 곧장 사무실로 돌아간 그는 담당 증권 거래인에게 전화하여 승승장구 중이던 증권 계좌를 모두 청산(현금화)할 것을 요청했다. 증권거래인은 의아했다. 두 번이고 세 번이고 재차 물었지만, 그는 완강했다. 그해 늦가을, 미국발 경제 대공황은 전 세계를 휩쓸었다. 하지만 야수의 심장을 가진 조 케네디는 공포를 다시 한번 더 역이용하는 데 성공했고 훗날 존 케네디의 대선 활동에 재정적으로 크게 이바지할 수 있었다고 한다.
그날 구두닦이 소년의 말을 어찌 내가 정확히 알 수 있겠는가. 하지만 맥락은 비슷했을 거다. 왜냐하면 지금의 나조차 하루에도 몇 번 씩이나 이른바 ‘구두닦이 소년 신호(shoeshine boy signal)’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레이 달리오, 앙드레 코스톨라니, 버나드 바루치를 비롯한 많은 뛰어난 투자자나 증권거래인들은 하나 같이 입을 모아 이 사태를 조심하라 당부한다. 저녁 식사 중, 파티 중, 심지어 대중교통 좌석에 앉아 있는 중 등 모든 곳에서 주식투자에 관해서만 이야기할 때, 주식투자가 장안의 화젯거리가 되는 바로 그때, 투자자들은 무조건 하차해야 한다고 말한다. 공포에 사서 탐욕에 팔라는 말이다. 사실 그리 어려운 것은 아니다. 심지어 이미 많은 사람이 알고 있는 사실이다.
사실 나는 잘 모르겠다. 물론 공포 지수(VIX)가 있긴 하지만 그게 인간의 정서를 정확하게 반영을 하고 있을 리 없다. 또한 공포는 재무적 전환(턴어라운드)을 성공해낸 기업처럼 저점에서 일 순간에 박차고 일어나는 것이 아니다. 워런 버핏도 이번 코로나 사태의 1차 파동 이후 항공 관련주의 전환을 예측했지만 실패하고 쓰디쓴 실패를 맛보지 않았는가. 저점을 완벽히 파악 못 하면 물리는 것은 한 종목의 예측에서나, 투자자들의 정서를 반영한 증권 시장 동향 예측에서나 같다고 생각한다. 더 슬픈 것은 그들은 실패해도 다시 일어날 수 있지만 우리는 실패를 반복할 힘이 현저히 부족하다. 우리는 그들보다 몇 배 더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증권 시장의 무서움을 조금이라도 인지한 사람들도 조심하는 와중에 공포의 저점을 놓치고 탐욕의 고점을 지나치는 불상사가 생긴다.
세상 모든 사람을 두 가지로 분류하자면, ‘모르는 사람’과 ‘모르는 것을 모르는 사람’으로 나눌 수 있다고 경제학자 존 갤브레이스는 말한다. 돈은 모름지기 하나의 인격체와 같아서 우리가 타인의 속을 완벽히 이해하기란 불가능하듯이 돈도 완벽하게 알기 힘들다. 자본의 속내를 ‘모르는’ 사람은 함부로 미래를 예측하려 들지 않는다. 그 이유는 두렵기 때문이다. 섣부른 예측은 그릇된 선택을 낳기 마련이다. 그들은 오로지 대응에 몰두한다. 누군가 말했다. 투자는 예측이 아닌 대응이라고. 하지만 본인이 돈의 속성에 대해 ‘무지하단 사실을 모르는’ 사람들은 미래를 예측한다. 그들은 돈을 받고 대중 앞에 서서 종목을 찍어주고 환율을 예측하며 심지어 자신은 모두가 부자가 되길 바라기에 천기 누설의 죄를 범하는 중이라 말한다. 이것은 마치 소 뒷걸음에 쥐 잡는 격이란 걸 모르는 사람들은 그들의 말에 열광한다. 나도 100번 예측해서 정확하게 얻어 걸린 10개만 추려서 포트폴리오를 구성하고 대중에게 선보인다면 이들과 같이 투자의 귀재라 불릴 수 있지 않을까. 지금이 그렇다.
우리는 모르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 우리는 반드시 모른다는 것을 잘 아는 사람이 되어야만 한다. 경제 성장의 혁신을 가져온 주식 거래소가 인류에게 생긴 지 어언 400년이 되었지만, 아직도 시장 예측이 가능한 이론은 나오지 않고 있다. 다만 투자 세계에서 불변의 진리는 존재한다. 경제는 예측할 수 없다는 것과 확신의 대가는 꽤나 엄청나다는 것이다.
색(色), 수(受), 상(想), 행(行), 식(識)의 오온(五蘊)의 가합(假合)인 나는 공(空)이다.
『반야심경 오온설 중』
나는 만물과 정신을 구성하는 오온의 일시적 결합에 불과하기에 결국 공(空)이다. 이 뜻은 결국 ‘나는 아무것도 모른다’라는 것으로 귀결될 수 있다. 무지함을 숨기기보다 드러낼 때 오히려 위기에서 벗어나기 용이하다. 예측이 틀렸을 때 무지함을 숨기는 사람은 단순히 이번엔 운이 나빴다 생각하지만, 모르면, 모른다고 생각하면 사람은 조심하고 경계하고 만약을 대비하려 하게 된다. 알 수 없다는 것을 인지하고 있을 때 우리는 투자 대상에 관해 깊이 탐구하고 정보를 모을 수 있게 된다. 사람들이 아직 보지 못한 것을 보고 기록하고 추적하는 과정에서 일 순간의 가격 변동은 더 이상 그들에게 위협적이지 않다. 나아감과 물러섬 모두 그들에게는 계획된 대응에 불과한 것이지 모험이 아니기 때문이다.
슬프게도 나는 최근에서야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아니, 내가 아무것도 모른다는 자세를 가져야만 한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준비된 자에게 기회가 찾아 온다고들 하지만 인생은 유한하고 에너지는 한정적이다. 수많은 잡음 속에서도 흔들리지 않고 의연히 본인만의 대응 철학을 가지고 걸어가야만 남들보다 짧은 시간 내에 특별한 준비를 할 수 있다. 성공은 하늘에서 떨어진 동아줄을 잡는 것이 아니라 차곡차곡 적립한 통장 속 포인트를 확인하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바심 대신 의연함을 가진다는 것은 쉽지 않다. 지속된 지적, 정서적 단련으로 의연함을 얻을 수 있을 때 비로소 우리는 남들과 다른 시야를 얻게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그렇기에 때론 흔들리지 않는 강인함을 때론 무지의 세계에 대해 두려워할 줄 아는 ‘가변 강성의 자세’가 꼭 필요하다. 이젠 더는 귀가 얇다는 것을 마치 귀여움의 표현이라 생각지 말자. 모르는 사람이 되어 준비하자. 모르는 걸 모르는 것은 최악이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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