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덕적 인간은 왜 나쁜 사회를 만드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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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약성경의 창세기에서 등장하는 카인과 아벨 이야기는 매우 유명하다. 카인과 아벨은 아담과 이브의 두 아들로서, 성경에 따르면 카인은 사람이 낳은 최초의 아들이고, 반면 아벨은 최초로 사망한 사람으로 알려져 있다. 농부였던 카인은 자신의 수확물은 주님께 바쳤고, 목동이었던 아벨은 자신이 기르던 것 중 가장 품질이 좋은 가축을 골라서 주님께 바쳤다. 그러나 그분께서는 아벨의 제물을 기쁘게 받으신 반면, 카인의 제물은 눈길도 주지 않았다. 이에 질투심을 이기지 못하고 카인은 아벨을 죽이고 만다. 그리고 카인은 그 벌로 추방당해 기약 없는 유랑 생활을 해야 하는 신세가 되고 만다. (당시 정착하지 못하고 떠돈다는 것은, 곧 죽음을 의미하는 것이었다고 한다.)
카인이 아벨을 죽이게 된 심리적 요인으로 여기지는 것 중 하나로, 그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던 ‘짐승’에 사로잡혀 아벨을 죽이고 말았다는 것이 있다. 이 해석은 사실, 자세히 읽어보면 역사가 깊은 하나의 선입견을 안고 있다. 그것은 바로 인간만이 여러 생명 중에 도덕적인 행동이나 규범을 따를 수 있다는 것이다. 불과 수 십년 전만 해도, “도덕은 인간에게만 있는가?”라는 질문을 하는 사람에게 돌아오는 것은 ‘말도 안되는 질문이다’라는 반응과 손가락질 뿐이었다. 오늘날, 최소한 어느 정도 책을 읽고 사는 사람에게 이러한 논지는 다소 생소하게 느껴질 수도 있겠다. 당장 내 논문 알림 메일을 보더라도, <사이언스>, <네이쳐> 등의 뉴스레터를 조금만 뒤져보면 “보노보의 이타주의”, “원숭이의 부정행위에 대한 반감” 등의 제목을 찾아볼 수 있으니 말이다.
책에 따르면, 이러한 태도가 위험한 이유는 바로 인간이 자기 동족들을 자신과 근본적으로 분리해서 심판하는 데에 이러한 범주를 이용한다는 데에 있다. 동물 보호 등의 논지를 떠나서, 인간만이 도덕적으로 우월하다는 생각은 인간집단이 ‘동물화’될 때 비극을 부른다. 일본 731부대는 군기 확립을 명분으로 병사들에게 수용자 중에 가장 병약하거나 통제가 어려운 수용자를 몽둥이로 죽음에 이르기까지 때리게 강요하였다. 이는 수용자들을 인간이 아니라 짐승이라는 인식을 심어주기 위함과 동시에, 자신들 또한 공범이라는 사실을 주지시켜 감히 조직을 배반할 생각을 못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또한, 나치 정권의 흉악한 유대인 탄압 정책의 결정체인 아우슈비츠 수용소에서 독일 군인들은 의외로 유대인들에게 손을 대지 않았다. 이는 유대인들을 짐승 같은 존재라 여겨 자신의 신체가 일부라도 닿는 것 조차도 불쾌하게 여겼기 때문이었다. 대신 이들은 유대인 수용자 중 흉악한 전과가 있는 자를 가려내어 ‘카포’로 임명한 뒤, 그들에겐 전기가 들어오는 독방과 식사를 제공하고 대신 수용자들에게 폭력을 행사하도록 갈궈댔다. 결국 이들은 자신들의 얄량한 삶을 유지하기 위해서 자신들의 동족을 구타하고 밀고하며 그 얄량한 삶을 유지해나갈 수 밖에 없었다.
신소재공학부 재학 시절, 나는 바이오/생체 재료 연구실에서 2년 동안 학부연구생 생활을 했던 경험이 있다. 내가 바이오 쪽의 길을 가지 않은 여러 계기 중 가장 결정적인 계기가 동물실험에 대한 부담이었다. 특히 내가 연구하던 ‘백신 전달체’ 분야에서 논문을 쓰기 위해서는 결국 실험용 쥐에서 BMDC (Bone Marrow Dendritic Cell: 골수 수지상세포)를 추출하는, 면역학 연구실에서는 일상적으로 하는 실험을 수행해야 했다. 너무 감성적이라고 여기는 사람도 있겠지만, 그때 나는 정말 그런 생각을 했다. 쓰일지 안 쓰일지 모르는 연구를 위해 하루에 수 십 마리의 생명을 아무렇지도 않게 죽일 수 있는 자격이, 과연 내게 있는 것일까, 하는. 주기적으로 지내는 위령제 따위, 죽은 생명들에게는 아무런 위로조차 되지 않을 터인데. 그러나 한편, 바이오 분야를 연구하면서 동물 실험을 하지 않는다는 것은 불가능한 일이다. 이는 마치, CMOS를 연구하는 학생에게 불산이나 황산을 쓰지 말라는 것과 다름이 없는 일이다.
“그렇다면, 나는 과연 이 분야에서 최소한, 희생당한 생명들의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 정도의, 의미 있는 성과를 낼 수 있을까?”
나는 이 질문에는 결국 긍정적인 대답을 내놓지 못한 채 4학년 1학기를 마지막으로 연구실과 작별을 고했다. 그러나 한 편으로는, 내가 너무 쓸데없이 감정 이입을 했던 것은 아닌지에 대한 찝찝함이 남아있었다. 그런 의미에서 나는 이 책의 저자에게 매우 고맙다는 말을 전하고 싶다. 적어도, 학부 시절 내가 했던 고민을 포함해서 동물과 인간을 구분하는 사고 방식이, 때로는 이렇게 위험하다는 것을 새롭게 조명해주었고, 당시 내가 했던 고민이 충분히 가치가 있는 일이었다는 확신을 얻게 해 주었기 때문이다.
모든 생명은, 다른 생명으로부터 양분을 얻어 살아가도록 창조된 존재이기에 다른 동물을 죽이지 않고 살아간다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그러나 그것과는 별개로 인간과 동물을 분리해서 사고하는 방식의 위험성을, 한 번쯤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을 것이다. 지금 이 순간에도 지구 어딘가에서는, 특정 집단을 ‘짐승’으로 규정하여 학대하는 일이 일어나고 있을 것이기에 더욱 그렇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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