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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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로니카 죽기로 결심하다
파울로 코엘료 저
베로니카는 왜 죽기로 결심하였을까? 이 소설은 베로니카가 목숨을 끊을 시간이 왔다고 생각하는 것부터 시작한다. 그녀는 준비된 수면제 네 통을 (으깨어 물에 타서 단번에 삼킬 수 있지만 자살 중간에 마음이 바뀔 수 있기 때문에) 한 알 한 알 삼킨다. 그녀는 자신이 자살하는 이유도 알리고 싶지 않아 슬로베니아의 기원에 대한 글을 유서로 쓰기 시작한다. 그것이 마치 죽음의 이유인 것처럼 생각 되도록 말이다. 사실 그녀가 생을 끊기로 결심한 이유는 그녀의 삶이 너무 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지금은 젊고 안정된 직장을 가졌지만 젊음이 떠나가는 순간이 오면 그 다음엔 내리막길이다. 그 뒤엔 얻을 것이 아무것도 없었다.
그런 그녀의 시도도 결국 실패로 마치게 된다. 그녀가 다시 눈을 떴을 땐 빌레트 정신병원이었다. 그리고 의사 이고르에게 수면제로 인해 심장에 돌이킬 수 없는 손상을 입어서 일주일 뒤엔 심장이 멈추게 될 거라는 진단을 받게 된다. 결국 그녀의 시도는 실패한 것이 아니었다. 일주일의 쓸모 없는 시간이 더 생겼을 뿐!
그녀는 남은 생애 일주일을 그 병원에서 다른 환자들과 관계를 맺게 된다. 제드카는 평범한 결혼생활을 해 왔지만 그녀 마음 한 켠에는 첫사랑에 대한 그리움이 우울증으로 크게 자리잡고 있었다. 베로니카는 그녀랑 이야기하면서 ‘미쳤다’고 이야기하는게 무엇인지 알게 된다. 다른 사람들과 생각이 다른 것을 사람들은 미쳤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사실 누구나 어느 정도는 미쳐 있음을 깨닫게 된다.
에뒤아르는 교통사고 후 화가가 되려고 하지만 외교관인 부모의 밑에서 외교관 코스를 밟아 나가야한다는 강요로 정신분열증을 일으키게 된다. 베로니카는 밤마다 본인의 피아노연주를 들어주는, 자신의 유일한 청중 에뒤아르와 사랑에 빠지게 된다.
그녀는 본인 삶에서 하지 못했던 것을 빌레트에서 해나가기 시작했다. 모든 것을 증오하기 시작했고, 증오했기 때문에 오는 사랑을 받아들였다. 어머니는 피아노를 배우게 했지만 피아니스트가 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그녀에게 안정적인 직업인 도서관 사서를 권했고 그 이후로 피아노를 그만두었다. 하지만 베로니카는 빌레트에서는 원없이 피아노를 칠 수 있었다. 누구도 삶이 얼마 남지 않은 베로니카가 하는 행동을 말리지 않았다.
그 이유였을까, 병원에서 시간이 지나면 지날수록 베로니카는 점점 삶에 대한 애착이 강해졌다. 그녀는 처음 자살을 시도할 때와 다르게 더 오래 살아있고 싶어했다.
반전을 짐작할 수 있겠지만 사실 베로니카의 심장은 건강했다. 이고르 의사는 자살에 실패한 사람들은 조만간 다시 자살을 시도한다는 경향을 알고 있었다. 그래서 그녀에게 약을 주사하여 심장 발작을 일으키고 남은 생이 일주일밖에 남지 않았다고 거짓 진단을 내렸다. 그럼으로써 그의 논문 ‘죽음에 대한 자각은 우리를 더 치열하게 살도록 자극한다’를 입증하길 원했다. 결국 베로니카는 에뒤아르와 빌레트를 탈출하면서 그의 주장을 입증했다.
삶이 우울하고 지루하다고 느끼는 순간이 있다. 좋아하는 일만 하면서 살수 없고 대체로 반복되는 삶 속에서 큰 의미를 발견하지 못하는 순간들도 있다. 이런 감정들은 가끔 내가 날 잘 돌보지 않았을 때 마치 감기처럼 나를 찾아온다. 한번쯤 그런 생각을 해본 누군가에게 베로니카의 지루하고 우울한 삶을 극복하는 방법은 의미가 있고 생각한다.
내가 나에 대해 알기 위해서는 무언가를 통해서 아는 것이 효과적이다. (그게 책이 될 수도 있고 영화가 될 수도 있고 다른 타인이 될 수도 있지만.) 내가 나에 대해 아는데 무언가를 통해 알아야 한다는 게 어불성설처럼 들릴 수 있겠지만 오히려 나에 대해 한 꺼풀 벗겨내고 마주할 수 있는 기회가 된다. 나에게는 베로니카가 그랬다.
책의 스토리가 명확하고 반전이 있는 내용이어서 재미있게 읽혔다. 하지만 스토리보다는 인물 내면의 묘사가 더 좋았다. 특히 처음엔 무력하다가 삶에 대한 애착이 점점 드러나다가, 베로니카가 뭘 하고 싶은지 선명해지는 순간에서.
“여기서 나가 밖에서 죽고 싶어요.
항상 내 눈앞에 있었지만, 단 한번도 가까이 다가가려는 호기심을 가져본 적 없었던 류블라나 성에 가보고 싶어요.
겨울에는 군밤을, 봄에는 꽃을 파는 아줌마에게 할말이 있어요. 수없이 마주쳤는데 단 한번도 어떻게 지내냐고 물어본 적이 없거든요.
외투를 벗고 눈 속을 걷고 싶어요. 그 지독한 추위를 느끼고 싶어요-난 감기 걸리는 게 두려워 언제나 옷을 두둑이 입고 다녔거든요.
마지막으로 이고르 박사님, 난 내 얼굴 위로 흐르는 빗물을 느껴보고 싶어요. 내
마음에 드는 남자에게 미소를 보내고, 그들이 권하는 커피를 모두 마시고 싶어요.
늘 존재했지만 애써 감추어 왔던 내 감정들을 아무런 부끄러움 없이 있는 그대로 드러내면서
엄마에게 뽀뽀를 하고, 사랑한다고 말하고, 그 품 안에서 울고 싶어요.
아마 성당에도 들어가, 내게 아무 말도 해주지 않던 그 이미지들을 바라볼 거예요. 이번엔 뭔가 말해줄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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