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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온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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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의준
댓글 0건 조회 5,669회 작성일 20-10-12 02: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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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어의 온도


이기주 저


"원래 그런 거라니까!"

학창시절은 물론이고 졸업 후 사회생활을 시작하면서 귀에 딱지가 않도록 듣는 말이다.

신통한 문장이다. 마법의 지팡이 같은 이 한마디가 모든 상황을 단번에 정리한다. 상태가 아무리 얼토당토않은 궤변을 쏟아내도 웬만해선 토를 달 수 없다.

"그게 아닌 것 같은데요?" 하고 이의를 제기하는 순간 자칫 엉뚱하고 삐딱한 사람을 인식되거나, 항명 파동을 일으킨 장본인으로 낙인찍힐 수 있기 때문이다.



 "원래 그런 거라니까!" 학교 다니면서 제일 많이 들었던 말 중 하나인 것 같다. 어떤 것에 대해서 이해가 되지 않아서 선생님께 여쭤볼 테면 "그건 원래 그런 거니까 그런 거야"라는 말을 많이 들어왔었다. 흔히들 말하는 주입식 교육을 대표하는 말이라고 할 수 있다. 초등학교 때까지는 그냥 받아들였다. 선생님께서 가르쳐주시면 그것을 수동적으로 배우곤 했다. 그러다가 미국에 가서 한국의 교육과는 사뭇 다른 방식의 교육을 받게 되었다. 그리고 이 주입식 교육이 한국 특유의교육 방식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미국에서 일 년 반 정도 거주하면서 원어민 친구들과 학교생활을 했던 적이 있다. 놀랐던 것은 그들의 수업 분위기였다. 선생님은 학생들에게 끊임없이 질문을 던져주셨다. 그리고 그 질문에 대해서 같이 토의하는 방식으로 수업이 진행되었다. 학생들의 수업 태도에도 놀랐다. 그들은 스스럼없이 선생님께 질문하였으며 선생님은 그런 질문을 하나하나 성실히 답해주셨던 기억이 있다. 그렇게 미국에서의 생활을 마치고 한국에 왔다. 미국에서의 생활이 몸에 배었는지 나 스스로가 수업을 대하는 태도가 많이 달라져 있었다. 중간에 모르는 것이 있으면 선생님께 여쭤봤고, 수업 중간에 질문하는 것에 대해서 거리낌이 없었다. 초반에는 선생님이 질문을 잘 받아주셨지만, 어느 순간부터 나에게 "지금은 진도를 나가야 되니 끝나고 질문을 했으면 좋겠네."라며 질문을 덜 했으면 하는 눈빛을 보내주셨다. 그리고 학생들도 질문을 많이 하는 나에게 조금씩 눈치를 주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나는 점차 질문 하는 것을 줄여서 전형적인 주입식 교육을 받는 학생이 되어갔다. 선생님께서 지식을 알려주시면 그것이 왜 그러는지 이유를 몰라도 우선 꼼꼼히 필기해서 암기하는 그래서 좋은 성적을 받는 그런 학생으로 말이다. 그렇게 생활을 해서 대학교 때까지는 크게 문제가 없었다. 특목고를 졸업하고 학부는 SKY를 졸업했다. 나는 어쩌면 주입식 교육에서 살아남았다고 볼 수 있을 것 같다.


 문제는 대학원을 들어와 서부터였다. 여태껏 주어진 지식을 단순 암기했던 나는 주입식 교육의 폐해를 연구하면서 몸소 느낄 수 있었다. 지식을 암기하기보다는 이해해야만 새로운 결과에 대한 아이디어를 도출할 수 있는 것이 연구인데 주입식 교육에 물들어 있었던 나는 원리를 이해하는 공부방식에 익숙지 않았다. 또한, 내가 적극적으로 알려고 하기보다는 누군가 알려준 것을 수동적으로 받아들이는 것에 익숙했던 것도 연구하는데 큰 걸림돌이었다. 이러한 소극적이고 무관심한 자세는 연구뿐만 아니라 나의 전반적인 삶에 깊게 자리 잡았다. 나 하나 사회에 관심 가진다고 바뀔 것도 아닌데 굳이 우리 사회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알아야 하나? 라는 생각을 가슴 속에 품고 살아왔다. 간혹 내 주위 친구 중에 정치나 세상 돌아가는 것에 관심이 많은 친구가 우리나라 사회에 대해 비관적인 얘기를 할 때면 "왜 굳이 우리 사회가 돌아가는 것을 알아서 스스로 스트레스를 받을까?"하고 생각해왔다. 그냥 관심 두지 않으면 편하게 살 수 있는데 말이다.


 나는 주변 친구들로부터 성격이 좋다는 얘기를 많이 듣는다. 내 입으로 직접 얘기해서 쑥스럽지만, 성격이 모나지 않고 그 누구와도 잘 어울릴만한 성격이다고들 말한다. 살면서 회장 같은 리더지 역할을 많이 했고, 주위에 친구들이 나에 대해 좋게 얘기하는 것을 보면 나 자신도 내가 성격이 긍정적이고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성격을 지니는 것 같다. 그런데 구체적으로 나의 어떤 면 때문에 내가 주위 사람들로부터 성격이 좋다는 얘기를 들을까? 하고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나는 사람들을 바라볼 때 쉽게 평가하지 않는다. 어떤 친구가 상식선에서 벗어나는 행동이나 말을 할 때 그것이 범죄(?)만 아니라면 나는 `세상은 넓고 다양한 사람들이 있으므로 그럴 수도 있지.`라는 생각을 한다. 또 하나 나의 장점이라고 생각되는 것은 사람들과의 불화를 원하지 않는다. 물론 누가 원하겠느냐마는 가령 이런 것이다. 친구들과 만나서 사회 돌아가는 것에 대해 이야기를 하게 되면 특히 정치 얘기를 하게 되면 분명 친구들 간에 의견 차이가 생기게 된다. 본인의 의견에 대해 피력하다가 언성이 높아지고 심하면 다툼이 일어나기도 한다. 그런데 나는 그 누구와 얘기해도 상대방의 의견을 존중해주고 내 입장을 얘기하지 않는다. 엄밀히 말하면 얘기하지 못한다. 내 입장이 없기 때문이다. 사회 돌아가는 것에 대해서 잘 모르는데 입장이 없는 것이 당연할지도 모르겠다. 그래서 정치적 성향이 짙은 친구들을 만나도 의견 차이로 인한 충돌이 일어나지 않게 된다. 나는 이런 것이 좋은 것으로 생각했다. 서로 기분 상할 일이 없기 때문이다. 그래서 아이러니하게 더욱더 세상 돌아가는 것에 관해 관심을 끊었던 것 같다. 세상 돌아가는 것에 대해 알게 되면 나만의 입장이 생기게 되고 그렇게 되면 그런 얘기를 할 때 나도 모르게 내 입장을 피력할 수도 있다고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어떻게 보면 참, 말 같지도 않은 생각이다. 그래도 나는 이게 맞는다고 생각하고 그렇게 살아왔다.


 그런데 요즘 이런 나의 가치관이 흔들리고 있다. 사회에 관심을 두지 않는 나의 태도가 다른 곳에도 유지되기 때문이다. 습관이 참 무서운 것 같다. "무관심한" 태도가 나의 주 업무인 연구를 할 때도 나타나니 말이다. 연구주제에 대해서 하나라도 더 알아보고 깊게 사색하고 결과를 내기 위해 어떻게 할지 생각하지 않는 나 자신을 보고 있으면 여태껏 "무관심함이 좋은 것이다"라는 내 가치관이 맞는 것인지 회의감이 든다. 사실 아직도 나는 왜 사회에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잘 이해가 되지 않는다. 현재 부정적인 측면들이 많은 우리 사회에 관심을 두다 보면 나 스스로 스트레스만 받을 텐데 왜 굳이 가져야 하지라는 생각도 들 때가 많다. 하지만 조금씩 관심을 가지려고 하고 있다. 논리적인 사고나 어떤 것에 대해 깊이 사고하는 것은 갑자기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평소 생활태도부터 그러한 것들을 지향해야지 자연스럽게 다른 곳에도 발현되지 않을까 생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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