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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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이 형용할 수 없는 비극, 이러한 비극은 독자로 하여금 문학적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소설 속 주인공이 서사적으로 비극적일수록 그리고 구조적으로 비극적일수록 해당 작품에 대한 기억은 독작의 뇌리에 알게 모르게 자리 잡는다.
1984 소설 속 주인공은 지금 맞닥뜨린 사회의 모순에서 출발하여, 사랑으로 부조리한 사회를 도피해보고, 마지막으로는 사회의 모순에 맞선다. 하지만 결말은 전형적인 해피엔딩과는 거리가 있어 보인다. 오랜 시간에 걸쳐 자신의 투쟁 속에서 승리를 하였다고 할 수 있을까 라는 생각이 들 것 같은 마치 정신이 반쯤 나가 있는 것 모습으로 카페에 앉아 빅브라더를 사랑한다. 어떤 이유에서 인지 모르겠지만 저번에 읽은 동물농장의 결말과 같이 마음 한켠에 생기는 의문감은 무엇일까? 조지 오웰의 모든 소설이 마지막에는 이와 같은 그림으로 여운을 던져주는 것 인지는 모르겠지만 동물농장에서 돼지와 인간이 뒤엉켜 누가 돼지인지 인식이 되지 않는 상황에서 주는 감정은 1984의 마지막 장면에서 생기는 의구심과 유사하다. 그렇다면 여기서 가지는 의의는 무엇이 있을까? 우선 자신가의 투쟁을 시작했다는 것, 그리고 결론을 내렸다는 것. 결과가 아닌 과정에 주목한다면 결과가 전부라고 단언할 수 있을까.
위선적인 선전과 달콤한 유혹, 또 어찌 할 수 없이 폭력적인 빅브라더, 그는 비단 소설 속에서만 존재할 뿐 아닌 이미 우리 사회 깊숙이 침투해 있다 생각한다. 사실 빅브라더라는 클리셰는 수도 없이 재생산되어 우리 눈앞에 나타난다. 많은 영화 속에서 빅브라더를 등장 시켰고, 많은 문학에서도 흔한 소재가 되었다. 그렇기에 은연중 초 권력에 대한 위험으로 생각하는 사람이 많다. 가령 미국 트럼프가 대통령으로 당선 후 미디어에 대한 장악하는 모습, ‘한 가지 사항에 대하여 판단 할 때, 판단하는 사람에 따라 시각에 따라 사안이 달라진다.’라는 말을 하며 고의적으로 통계자료를 바꾸는 모습에 트럼프를 빅브라더로 비유하여 비꼬았던 기사를 봤던 기억이 있다.
현대 사회에서의 권력 관계에서 발생하는 빅브라더는 필연적이라고는 생각 하지 않지만, 나는 이런 빅브라더가 한국 미디어에서 존재 한다고 생각하다. 이는 한 인물을 가정하는 것이 아니다. 또 소설 속 빅브라더 또한 실존 하지 않았다. 내가 말하고 싶은 것은 빅브라더의 속성들이 한국 미디어에서 너무 잘 나타난다고 생각 한다. 우리나라 다른 나라에 비하여 SNS로부터 받는 영향이 매우 크다. 이번 시즌에는 어떠한 컬러가 유행 할 것이며 어떠한 스타일이 유행할지 틀이 잡힌다면, SNS와 같은 미디어를 통하여 쉴새 없이 우리의 뇌를 자극하여 지갑을 열게끔 유도하고, 그 결과 도심 한 복판에는 클론이라고 불리는 똑같은 스타일이 가득 차있다. 획일적이라는 이야기다. 하지만 다행이도 과잉 현실을 유도하여 소비자는 구매의 늪에서 스스로 빠져나오게 한다. 그럼에도 기업은 소비자에게 좋은 품질의 제품보다는 그때의 유행에 맞추어 소비재를 생산하며 제품 자체가 아닌 이미지에 의한 가격형성을 한다. 이런 미디어의 위선적, 달콤한 마켓팅은 ‘뒤쳐진다’는 폭력을 만들어 냈고, 늪에서 빠져나올 수 있을 만큼 성숙하지 못한 미디어에 취약한 청소년, 아이들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끼치고 있다. 즉 미디어는 소설 속 빅브라더처럼 개인의 취향, 사상을 말살하며 이끌어 나가고 있다고 생각한다. 흔히 찾아 볼 수 있는 빅브라더의 정의를 실존하지만 시대를 지배하는 가치, 혹은 힘이라고 생각해 보았을 때 사실 빅 브라더는 역사적으로 지속적으로 존재했을지도 모른다. 한 시대에는 종교의 형태로 한 시대에는 권력이라는 모습으로 이제는 미디어라는 모습으로 존재하지 않을까.
또 이런 빅 브라더의 존재는 부정적이지만은 않다. 어쩌면 당연하게 인간의 한계에서 파생되는 것일 수 있다. 힘의 논리에 대해서 말이다. 우리의 과제는 어떤 것을 따를 것인가와 만들것인가에 대한 이야기로 넘어온다. 이 과제는 동물 농장에서 말했던 것 같다. 기회를 나의 것으로 만들어 체제를 뒤집은 나플레옹, 스노우가 되어 빅브라더를 만들어 낼것인가. 아님 나귀처럼 현실에 관조하며 살것인가.
내가 생각한 개인의 최선은 현 가치에 의문을 제시하는 사람일 것이다. 그것에 대한 결론은 내려줄 필요도 누군가의 눈치를 볼 필요가 없다. 우리는 모두 각자의 삶을 주도해 나가고 있기 때문이다. 분명 어떤 시대에도 그리고 앞으로도 빅브라더는 존재 할 것이다. 그렇다면 그것에 대한 투쟁은 모두가 해보야 하는 것이며, 그것에 대한 결론 역시 각자의 못이다. 그 과정 또한 각자의 몫이라고 생각한다.
각자의 투쟁을 응원해 보자. 결론은 보다 가치 있는 과정을 응원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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