페스트 - 알베르 카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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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스트
알베르 카뮈 저
알베르 카뮈의 페스트를 다시 읽었다. 2016년에 서태지의 노래로 만든 뮤지컬 페스트가 개막했었다. 카뮈의 페스트를 기본 줄거리로 만들고 거기에 서태지의 노래들을 붙였다. 반응은 그다지 좋지 않았지만 나는 아주 재미있게 본 뮤지컬이었다. 이 책은 뮤지컬을 보고 나서 원작도 읽어보려고 산 책이었고 그때 한 번 읽었는데 위대한 세계 명작인 이 책이 읽는 게 쉽지는 않았다. 지금 다시 읽으니 그때보다 좀 더 집중력 있게 읽을 수 있었다.
페스트는 당시 프랑스령이었던 알제리의 실제 도시 오랑을 무대로 한다. 그 도시에 페스트가 번져 외부로부터 폐쇄된 상황에서 주인공인 의사 리외를 비롯한 시민들이 페스트에 대처하는 모습을 그렸다. 좋았던 것은 이 소설이 그리고 있는 것은 어떤 인물이 아니라 하나의 도시라는 것이었다. 어떠한 사회나 문화를 드러낼 때 그것을 인물에게 내재시켜 말과 행동으로 표현되는 소설을 주로 보아왔다. 이 소설에서는 그런 부분도 있으나 대부분의 묘사에서 주인공은 도시 오랑이다. 오랑과 그 도시에 살고 있는 이름 없는 시민들의 모습. 공동체의 분위기, 사람들 사이의 뜬 소문, 그곳 특유의 날씨와 기후에서 느껴지는 감정들을 세심하게 서술해놓았다. 이 작품을 읽으며 실제로 오랑에 있는 듯한 느낌이 생생했다. 도시 전체를 조명하면서 순간순간 리외와 그 주변 사람들을 클로즈업하듯 다가가는데, 페스트에 대처하는 사람들의 모습을 비춰주며 그 커다란 재난이 각각의 사람들에게 미치는 영향을 극명하게 드러냈다. 그 점에서 이 작품은 재난 영화의 시초이며 공동체와 공동체 속 인간에 대해 묻는 철학을 담고 있는 소설이기도 하다.
이전에 읽었을 때보다 지금 더 흥미롭게 읽었던 것은 페스트 속 모습이 현실의 모습과 무척 닮아 있기 때문이었다. 실제로 코로나19가 유행하는 지금, 서점에서 이 책의 판매량이 눈에 띄게 늘었다고 했다. 작품 속에서도 사람들의 심리가 선명하게 표현되어 있어 읽으면서도 가슴을 선득하게 하는 부분이 많았다. 레인코트, 박하사탕, 포도주 등이 차례로 페스트를 막는 데 도움을 준다며 인기를 끄는 것이나 신작들을 들여오지 못하는 영화관에서 이전 영화들이 상영되는 것도 그랬다. 페스트로 죽은 시체들을 처리하는 부분에서는 그 차가운 묘사에 소름이 끼쳤고, 그 시체를 묻는 일을 하는 사람들이 위험성을 충분히 알고 있으면서도 끊이지 않고 보충되었다는 것 또한 그랬다. 페스트가 무섭지만 그보다 당장의 실직이 더 무서운 사람들이 당연히 있기 마련이다. 시민들이 페스트를 외면하고 즐거운 일을 하려는 심리와 페스트와 폐쇄가 길어지면서 사람들의 무기력함 또한 올해 재택근무가 길어졌을 때 사람들이 많이 호소하던 감정이었다.
과거에 이 책을 읽었을 때는 페스트라는 질병을 태풍이나 홍수처럼 자연재해로 생각하고 읽었던 것 같다. 그런 경험이 없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것들이 일시적이었다면. 이렇게 오래 지속되는 재난을 겪는 중에, 실제로 생활의 많은 부분이 바뀐 후에 이 소설을 보는 감정은 다를 수밖에 없다.
개인적으로 나는 좀 더 예민해졌다. 기침이나 재채기, 피로감, 발열 등 내 몸이 나에게 보내는 신호에 더 철저히 대비했다. 예방 수칙을 지키지 않는 사람들을 비난하다가도 나 역시도 다른 사람을 전염시킬 수 있다는 것을 느끼고 그것이 제일 무서웠다. 원래 사람을 만나 이야기하고 맛있는 것을 먹으러 다니는 것을 즐거워하는 나는 사회적 거리 두기 기간이 길어지면서 사람들과의 대화와 식사가 무척이나 그리워졌다. 사람이 결코 다른 사람들을 떠나 공동체 밖에서 혼자 살 수 없음을 강하게 느꼈던 것이다.
소설 속 오랑에서 자율적으로 자율봉사대를 조직해 페스트 퇴치에 앞장선 사람들을 현실에서도 보았다. 대가 없이도 꾸준히 일을 계속해왔던 사람들을 이 소설에서는 영웅이라 말했다. 또한 굳이 사례를 들지 않아도, 특정 집단의 부주의와 기만이 공동체 전체에 큰 영향을 끼친다는 것을 알았다. 지금만큼 공동체 속에서 살아가는 것이 인간이며 우리 모두가 연결되어 있다는 것이 확실한 때를 본 적이 없다. 책 마지막 즈음 서술자이자 오랑의 의사로서 이 사태를 처음부터 모두 보아온 리외에게 등장인물 중 하나인 타루가 이야기한다.
295쪽
"(전략) 사람은 저마다 자신 속에 페스트를 지니고 있다는 거예요. 왜냐하면 이 세상 그 누구도 페스트 앞에서 무사하지 않으니까요. 그리고
자칫 방심한 순간에 남의 얼굴에 입김을 뿜어서 전염시키지 않도록 끊임없이 조심해야 한다는 것도 알고 있어요. 병균은
자연스러운 것이고, 그 외의 것들, 이렇게 말해도 괜찮다면
건강, 청렴결백함, 순결함 등은 의지의 소산이에요. 결코 중단되어서는 안될 의지 말이에요. 정직한 사람, 거의 아무도 감염시키지 않는 사람이란 가능한 한 방심하지 않는 사람을 뜻해요.
절대 방심하지 않기 위해서는 그만한 의지와 긴장이 필요한 법이죠! 그래요, 리외. 페스트 환자가 되는 것은 피곤한 일이지만, 페스트 환자가 되지 않으려는 것은 더욱 피곤한 일이에요. 그래서
모든 사람이 피곤해 보이는 거예요. 오늘날에는 누구나 어느 정도는 페스트 환자거든요. 그리고 바로 그런 이유 때문에 몇몇 사람들이 페스트 환자 상태에서 벗어나려고 하면서 죽음이 아니면 빠져나갈
수 없는 극도의 피로감을 느끼는 거고요."
타루는 공동체 속에서 사람들이 어떤 신념을 갖고 어떻게 살아나가야 하는지를 비유해서 말하고 있지만 지금 현시점에서 이 구절이 너무나 깊게 다가오는 것을 어쩔 수 없었다. 소설 마지막에서 오랑에서는 페스트가 점점 물러간다. 리외는 이 도시를 휩쓴 질병이 페스트라는 것을 처음 깨달았던 것처럼 지금 물러간 페스트가 언제든 다시 올 수 있음을 드러낸다. 우리는 아직도 이 상황 속에 있지만, 이 질병이 물러간 후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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