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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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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용준
댓글 0건 조회 5,792회 작성일 20-10-05 14: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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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에 대한 예의

권석천 저




  나는 아직 많이 부족하다. 어디가 부족한지조차 모를 만큼. 앞으로 배워나가야 할 것들의 양에 비하면 내가 이제껏 배운 것들은 얼마나 적은 걸지 가늠조차 가지 않는다. 잘 아는 것만 얘기하라 누가 이르면 그 누구 앞에서 과연 몇 분이나 그럴듯한 말을 내뱉을 수 있을지 모르겠다. 가만히 앉아서 눈을 감고 그리는 내 모습은 이러하다. 깨나 의기소침하고 대화에 주저함이 많다. 좌절만 하지 않는다면 이런 감정은 나를 더욱더 앞으로 그리고 동시에 높게 나아갈 수 있게 한다. 하지만 나는 가끔 내 목구멍을 따라 흘러나오는, 소음에 지나지 않을 말들에 깜짝 놀랄 때가 있다. 청자의 기대를 등에 업고 분위기에 취해 나불대는 내 자신을 집으로 돌아와 찬 물로 몸을 적시며 곱씹어보면 찼던 몸이 이상하게 화끈거릴 때가 종종 있다.

 

  이 비극은 나는 남들과 다르다고 믿는데서 출발하는 듯하다. 나는 그럭저럭 예의를 지키며, 사회정의에 대해서도 깊이 생각해보는 편이고, 선입견 없이 공평하게 사람을 바라볼 수 있다는 자신감에 쌓여있을지도 모른다. 무의식적으로 나는 또래의 다른 사람들과는 다르다고 믿어온 것일 수 있다. 저자는 책을 통해 ‘소심한 성격을 착한 것으로 착각하고, 무책임함을 너그러움으로 포장하며, 무관심을 배려로, 간섭을 친절로 기만하지 않았는지’ 나에게 물었다. 우리 인간은 생활에 유용하다는 이유로 나와 ‘다름’에 주목해 그들을 나누고 차별한다. 거대한 관계라는 그물 속에서 위태롭게 살아가는 나를 주시할 필요가 있음을 느낀다.

 

  사실 이를 깨닫는 나를 포함한 대부분의 사람들은 저자에게 어쩔 수 없었다 말할 것이다. 작금의 아름다운 현실은 그저 사람답게 사는 것조차 힘들게 한다. 사람은 못되더라도 괴물은 되지 말자는 영화 속 대사를 나지막이 읊조리는 내 자신을 언젠가 뒤늦게 발견할 지도 모른다는 불안감마저 든다. 여러 매체를 통해 속속들이 비춰지는 남루한 인간 면모들이 어린 아이들의 몽실한 뇌 어딘가에 깊숙이 자리를 잡을까 걱정이다. 그래서 더욱이 이 책의 제목 '사람에 대한 예의'는 내 가슴을 뭉클하게 한 걸까. 예의 바른 인간으로 남기를 바라는 결연한 의지로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 이곳을 조심스럽게 그러나 올바르게 바라본다.

 

  매일 같이 쏟아져 나오는 뉴스들은 눈을 의심케 하는 일들로 가득하다. 대체 본인은 인간이길 바라면서 다른 사람들은 인간으로 대하지 않는 이들의 이기심은 어디에서 비롯되는 걸까. 왜 사회는 살기 좋은 쪽으로 변화하려 애쓰는데, 인간의 가치는 퇴보하는 듯 하는 걸까. 사람에 대한 예의는 어디로 사라져 버리고 왜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는 법은 잘 살고자 하는 욕심과 상충하는 것일까. 이 책은 극단적인 대립, 각자도생의 한국 사회를 통과하며 우리가 놓쳐버린 가치들을 되돌아보게 한다. 나는 남들과 다르다는 믿음은 얼마나 위험한지에 대한 저자의 충고는 그럭저럭 괜찮게 살고 있다고 생각했던 나로 하여금 걸어왔던 길을 흠칫 돌아보게 만들었다.

 

...

나치가 공산주의자들을 잡으러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공산주의자가 아니었으므로.

그들이 사회주의자들을 잡으러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사회주의자가 아니었으므로.

그들이 노동조합원을 잡으러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노동조합원이 아니었으므로.

그들이 유태인원을 잡으러 왔을 때 나는 침묵했다 나는 유태인이 아니었으므로.

그들이 나를 잡으러 왔을 때 나를 위해 말해줄 사람은 아무도 남아있지 않았다.

...

 

  저자는 독자들에게 우리가 당연하다고 생각했던 것들, 혹은 놓치거나 소홀히 한 것들, 그리고 온갖 이유를 갖다 대며 자기 합리화 했던 것들은 없는지 묻는다. 특히 그는 ‘너를 위해’ 이데올로기는 위험하다고 말한다. 진심으로 너를 위한 것일지라도 자칫 너에게 무슨 일이든 할 수 있다는 의미로 변질되기 쉽다. 자식에 대한 관심이 집착과 학대로, 사랑이 스토킹으로 변하는 건 순간이다. 너를 위한다는 마음으로 얼마든지 무례해지고 잔인해 질 수 있는 게 인간이기 때문이다. 자신의 부끄러움과 위선의 민낯을 스스럼없이 내보이는 그의 글을 읽어가면서, 나는 어떤 반칙을 하면서 살아왔고 얼마나 무례했는지를 생각해본다. 분명 누군가에게는 너를 위한다는 명목으로 잔인하도록 무례하지 않았는지, 조직을 위한다는 생각으로 성공의 노예가 되지 않았는지, 분노해야 될 때에도 침묵과 방관으로 나의 안위를 생각하지 않았는지.

 

  사람에 대한 예의라는 것이 나에게 무엇을 의미했을까. 스스로도 불완전한 인간이라고 말하는 저자는 정의는 늘 불완전하고 삐걱거리지만, 불완전한 인간이기에 불완전한 정의를 추구하게 되는 것이라며 사람에 대한 예의 또한 마찬가지라고 말한다. 우리가 ‘해야 한다’라고 결론내리기 앞서 ‘필요한 것’이라고 스스로 체화해야 하는 것이 바로 사람에 대한 예의가 아닐까 싶다. 나는 남들과 다르다는 믿음이 나도 별 수 없었구나 하는 깨달음으로 변해가는 과정에서 낯선 나를 바라보며 새삼 사람에 대한 예의를 생각해본다. 누군가 나와 다름을 발견했을 때 지금의 나는 과거의 나와는 달리 어떠한 현명한 반응을 내보일지, 나조차도 궁금하고 설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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