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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만을 극복하기 - 플로이드 맥클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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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자 김성호
댓글 0건 조회 6,135회 작성일 20-09-04 01: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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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과의 친밀감 - 교만을 극복하기

플로이드 맥클랑


 태생적으로 대화하는 것을 좋아하는 나는, 아직 30년이 채 되지 않은 짧은 생애 동안 가능한 다양한 사람들을 만나고 다양한 언어로 대화를 나눠왔다. 대화의 주제와 상대방의 화술에 따라 대화가 재미있어질 때도, 혹은 지루해질 때도 있었지만, 어떤 대화든 그 속에는 배울 점이 있기에, 나는 늘 대화를 즐겨왔다. 또 대화는 마치 마음의 거울과 같아서, 나의 이야기를 나누는 것을 통해 자신의 생각을 돌이켜보고, 다른 사람의 피드백을 통해 나 자신을 객관화하는 기능도 가지고 있다. 하지만 가끔 정말 대화가 되지 않는 부류가 있다. 상대방의 의견을 무시하고 자기 자신만 옳다고 여기며, 남의 이야기를 들을 생각은 없으면서 자기 이야기만 내뱉으려는 사람. 우리는 이런 사람을 '교만한 사람'이라고 부른다.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거만한 마음은 넘어짐의 앞잡이니라" (잠언 16장 18절). 이 구절은 어릴 때부터 교회를 다니면서 성경 공부나 설교를 통해 자주 들어 매우 친숙한 성경 말씀이다. 교회를 다니고 성경을 읽다 보면, 우리가 경계해야 할 죄악이 여럿 있지만, 유독 교만이라는 죄를 중하게 여긴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독교의 일곱 개의 대죄 혹은 칠죄종으로 불리는 일곱 가지 중한 죄악 중에 가장 첫 번째로 뽑히는 것이 교만인 것도 이를 뒷받침한다. 중세의 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는 교만이 단순히 패망의 '단면'이 아닌 '선봉'이 되는 이유를 '교만은 모든 죄의 어머니'이기 때문이라 말하였다. 즉, 사람이 교만하기 시작하면 다른 죄악들이 필연적으로 뒤따라 온다는 뜻이다.


 하지만 우리는 교만이 무엇인가에 대해 정확히 알지 못한다. 교만은 단순히 자신이 재능을 겉으로 드러내거나 자신의 가족과 자녀의 잘됨을 자랑하는 것이 아니다. 재능이 있으면 당당히 펼칠 수 있고, 자랑스럽고 기쁜 소식을 나누는 일은 문제 될 것이 없지 않은가? 사전적인 의미로 교만이란 자신이 남보다 뛰어나다고 여기며 혼자 잘난 체하는 주제넘은 감정을 말한다. 성경에서 말하는 교만은 거기서 조금 더 나아가, 자신이 하나님보다 뛰어나다고 여기며 하나님의 뜻을 무시하고, 자신의 행실과 생각만을 믿으며 사는 것을 의미한다. 결국 교만한 사람은 자신이 자기 자신의 신이 되어 모든 선악과 가치를 판단하게 된다. 교만한 사람은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고집불통이 되고, 자신과 생각이 다른 사람들을 비난하고 다니며, 있는 곳곳마다 분란과 분쟁을 일으킨다. 교만한 사람의 귀에는 조언도 질책도 들어가지 않는다. 오직 입바른 소리 만이 그의 귀를 만족시킬 수 있다.


 그래서 기독교인은 결코 교만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을 믿고 그분을 닮아가기 위해 부단히 애쓰는 기독교인의 마음에 교만이 뿌리를 박으면, 그는 더는 하나님을 찾지 않고, 찾을 필요도 없어진다. 교만한 영혼은 자신이 이미 신이 되었기 때문에 그에게 하나님을 향한 믿음은 사라져버리고, 오직 기독교라는 종교의 '형식'과 '문화'만이 남을 뿐이다. 하나님이 아닌 나 자신을 높이기 위해 찬양하고, 하나님의 뜻이 아닌 자기 뜻을 전하기 위해 설교하고, 하나님의 긍휼하심이 아닌 자신의 욕심을 위해 헌금을 걷는, 믿음이 없어진 기독교라는 종교의 틀은 세상 그 어떤 것보다 매스껍고 더러운 것이 돼버린다.


 교회는 늘 교만 때문에 분열했고 교만 때문에 무너졌다. 그리고 정말 안타깝게도 우리나라의 많은 교회가 아직도 이 교만의 죄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뉴스에서 인터넷에서 교회가 욕을 먹는 상황이 생길 때면, 늘 교만한 사람들이 문제가 되었다. 자신들의 믿음만 맞고 자신들의 교회만 맞다고 말하는 사람들. 다른 사람들을 배려하지 않고 종교활동 하는 사람들. 사회가 정한 규범을 어기며 교회를 통해 정치적인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목사. 만약 예수님께서 2020년 한국에 다시 오신다면, 교회로 들어가 이런 모습들을 다 때려 부숴 버리시지 않을까 생각한다. "세상의 재판장이시여, 일어나셔서 교만한 자에게 마땅히 받아야 할 형벌을 주소서" (시편 94편 2절).


 교만이 기독교인의 가장 큰 죄라면, 반대로 겸손은 기독교인의 가장 큰 미덕이다. 독일의 종교개혁가 마틴 루터는 그리스도인의 가장 큰 덕목이 무엇이냐 질문 받았을 때, 첫 번째도 겸손, 두 번째도 겸손, 세 번째도 겸손이라고 답하였다. 사람이 실수를 할 수도 있고, 아직 미숙하고 연약한 부분이 있을 수 있다. 하지만 그 겸손한 마음을 가지고 있다면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충분히 돌이키고 성장할 기회가 있다. 겸손은 내려놓는 것이고, 비우는 것이다. 마음속 가득 차 있는 교만을 버리고 비워낸 겸손한 마음에 진리의 빛이 깃든다. 교만은 내가 보기에 내가 신이 되는 것이라면, 겸손은 남이 보기에 내가 예수님을 닮은 사람이 되는 것이다.


 책을 읽으면서 저자는 끊임없이 나의 교만한 마음을 들추어냈다. 남을 배려하지 못하던 순간, 조언을 듣고 불쾌해하던 감정, 내 주장을 굽히지 않는 고집스러운 행동 등, 나의 교만했던 삶의 기억들이 베일을 벗고 드러나는 기분이었다. 하지만 나의 교만했던 모습을 직면하고, 나의 잘못했던 과오를 인정하는 것이 겸손의 시작이라는 생각이 든다. 아직은 미약하지만, 교만했던 마음을 비워내고, 오직 겸손한 자세로 조금씩 조금씩 예수님을 닮아가는 사람이 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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